하나님의 악기가 되라!
로마서 6장 12~14절
서론
우리교회 찬양대가 참 좋습니다. 우리교회 찬양대의 찬양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대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지휘자, 대원들의 수고와 봉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주자의 손끝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는지, 그래서 피아노 치는 여인들, 피아노 치는 남자들은 로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시골교회에서 예배반주를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믿어주세요! 제가 정말 반주를 했습니다. 피아노는 아니고, 풍금입니다. 제대로 배워서 한 것이 아니고 혼자 터득해서 한 것입니다. 서울에서 홍아무개 집사님이라는 분이 오르간을 보내왔는데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독학해 가지고 반주를 했습니다. 4부를 한 게 아니에요! 완전 후루꾸지요! 그래도 제 나이에 찬송을 제법 박자에 맞게 부르는 것은 그때 반주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감히 반주라고~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래도 믿음의 헌신이었기에 감사한 추억입니다.
악기는 그래요!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악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피아노는 거의 2천만 원이 되는 악기입니다. 그런데 내가 치면 학교 종이 땡땡땡! 단음으로 밖에 안 나옵니다. 우리교회 반주자가 치면 그건 너무 아름다운 음악이고 그래서 연주가 됩니다.
피아노는 어느 회사 제품인가, 그 가격이 얼마냐, 품질(品質)이 어떤가, 그 자체로도 평가되지만 사실은 피아노의 가치는 연주자의 손끝으로 평가됩니다. 피아노 건반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 에 따라 아름다운 곡이 연주될 수도 있고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치는 사람에 따라 명품 피아노도 되고 싸구려 피아노도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생애인가, 하는 것은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나를 주관하느냐? 누구의 손에 잡혀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입니다.
바울의 로마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를 전제로 신학적인 전개를 합니다. 이것이 칼빈의 5대 교리 중의 하나인 전적부패, 전적타락입니다. ‘전적부패’는 인간이 100% 타락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원해낼 선한 능력이 없다는, ‘전적무능력’의 교리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교리에서 믿음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오해합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 은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노력으로 점점 쌓여가는 종교심 정도로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니다보면 구원받을 합격선의 믿음점수에 이르게 되고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구원을 받을까요? 구원받을 믿음의 점수, 분량은 어떻게, 누가 측정합니까? 세례 때에 “오늘 죽으면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물으면 대부분, 천국에는 가고 싶은데 아직 그럴 믿음이 없다, 합니다. 구원받을 자격 여부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받을 믿음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경을 1독 이상 했다거나 주일성수 하고 십일조생활을 하고… 그러면 믿음들이 크다는 것입니까? 믿음이 크다고 할 때 그 믿음은 신앙심입니까? 인격입니까? 행위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종교심이 많아도 그 종교심으로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크기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크다 작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꼭 같습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만 갑니다. 이 공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고 그 보혈이 뿌려진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너는 내 것이다, 인(印)쳐주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은 이처럼 부전승입니다. 싸우지도 않고 추첨을 잘 해서 그냥 승자로 올라서는 것이 부전승 아닙니까? 이런 부전승을 내 힘으로, 행위로 구원 얻으려는 것은 기독교의 구원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을 부전승으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책임입니다.
그러면 또 이런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을 주셨으니까, 어차피 행위로 구원을 받을 것은 아니니… 구원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맡겨버리고 맙니다.
이건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도 있지만 내 책임이 더 많습니다. 칭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성화(聖化)는 하나님과 나와의 협동사역입니다. 특히 나의 노력과 애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기독교종교를 믿는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천국티켓을 땄으니 세상은 내 힘으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 때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것, 축복해 주시는 것… 이걸 믿음생활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불의(不義)의 도구로 사는 의인(義人)들이 되고 맙니다. 13절, “불의의 무기”가 됩니다. “무기”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거룩한 일에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일, 즉 불의에 도구로 제공되고 죄의 수하가 되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의인의 신분을 얻기는 했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죄의 성향이 있고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강한 주사약을 막고 죄들이 거의 죽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행했던 일들을 끊었습니다. 술도 좋지 못한 습관들도… 그러니 내 속에 있던 독사가 힘을 못 씁니다. 그런데 계속 밖에서 죄들을 들여옵니다.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짐승이 기운을 차립니다. 입으로 행함으로 폭력으로… 남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다보니 죄의 도구가 됩니다. 폭력언어, 도박과 마약과 쓰레기 예술의 도구가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원래 악인들도 있지만 구원을 받은 신자들이 불의의 무기에 자신을 헌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원수로 살게 됩니다. 불의의 무기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죄의 졸개가 되어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죄는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다 소용가치가 없으면 버립니다. 살인범이 살인하는데 칼을 이용한 다음 기념물로 모셔둡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던져버립니다. 평생 내가 술의 도구가 됩니다. 술주정꾼이 되어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아픔을 주었습니다. 나이가 늙어서 술을 먹을 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생을 어떤 도구로 몸을 맡겨버린 것입니까? 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인 우리가 죄의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예수만 오래 믿고 교회에만 오래 다니면… 직분이나 얻으면 저절로 성화되는 줄로 알고 죄와 자기 성품과 기절과 싸우지 않습니다. 때로는 죄의 도구로 자신을 내줍니다. 나이 들고… 남은 것은 엉터리 예수쟁이, 부끄러운 인격뿐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잡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좋은 사람에게 잡히면 좋은 사람이고 악인에게 잡히면 악인이 됩니다. 술에 잡히면 술주정뱅이요 재물에 잡히면 돈벌레가 됩니다.
인류사에서 가장 나쁜 악인이라면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세계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사람을 죽게 했고, 특히 유대인들 6백만 명을 독가스 등으로 죽였습니다. 살인도 그런 살인마가 없습니다. 그가 혼자서 그런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손에 잡힌 무기들, 참모들이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2인자 루돌프 헤쓰, 대중선동의 대가 괴벨스, 게슈타포를 창설한 헤르만 괴링, 나치군 총대장 하인리히 히믈러, 사막의 여우 룸멜 장군… 모두 히틀러의 앞잡이가 되어 당대에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2차대전 전범(戰犯)으로, 유대인 학살자로 사돈에 팔촌까지 은둔과 추적당하는 생애를 살고 있습니다. 인생을 학살자 히틀러에게 잘못 박힌 것입니다.
특히 히틀러의 오른팔로 자처했던 루돌프 헤스는 열렬한 숭배자이며 2인자입니다. 그는 단신으로 영국으로 날아가 체포. 46년 동안 슈퍼 다우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93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히틀러의 오른팔로 일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슈퍼 다우 감옥에서 일생을 마칠 것이다"
그는 히틀러라는 악마의 손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살상했습니다. 악마의 더러운 악기 노릇을 했고 더러운 살인자의 노래를 부르다 간 것입니다. 죄에게 자신을 헌신한 결과입니다.
교회에서도 교회 일을 한다면서 내 성질대로 하게 되면 우리는 죄의 도구, 자아의 도구가 됩니다. 여기에 교회 분란이 일어납니다. 교회를 허는 죄의 도구가 됩니다. 어쩌다 죄의 무기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평생을 예수님 믿으면서도 죄의 도구로 살아선 안 됩니다. 우리 생애를 죄의 무기가 되어 죄의 하수노릇을 하고 사단의 악기가 되어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살지 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같은 13절에서, 불의의 무기로 드리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강력 추천, 그야말로 ‘강추’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사랑의 마음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의 손에 자신을 맡긴다면 거룩한 무기, 아름다운 음악이 됩니다. 문벌이 있든 없든 신체적인 조건이 어떻든 심지어는 죄인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고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연주하시는 음악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쓰임을 받는 인생 중에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자인생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드리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성군 다윗, 출애굽의 영웅 모세, 믿음의 반석 베드로,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됩니다. 심지어는 삭개오마저도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웃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도구는 하나님의 음악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행복했습니까?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사람이지만 송명희라는 분은 자기 힘으로는 한발자국도 뗄 수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집안에 틀어박힌 절망으로 보냈습니다. 그녀는 어두운 사단의 영(靈)에 붙잡혀 지냈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그녀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생애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송명희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악기가 되고 도구가 됩니다. 수많은 찬양시가 샘처럼 터져 나왔고 하나님께서 작곡가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녀의 시는 아름다운 찬양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애창했습니다.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 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하소서“
송명희 씨의 찬양은 그 어떤 설교보다도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술단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 지금은 병중에 있습니다. 비록 뇌성마비 장애인이지만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삶을 살아왔습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런던다리에서 한 노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력이 변변치 못하여 누구도 관심이나 아무도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외국인이 양해를 구하고 바이올린을 받아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모자에는 동전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통행에 방해를 준다고 해산시키려 달려왔던 경찰도 그 음악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누군가가 노신사를 알아보고 소리칩니다.
“파가니니다!”
연주자는 다름 아닌 이탈리아 출신의 위대한 바이올린의 천재 파가니니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인 파가니니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듯한 연주 탓에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묘한 별명을 얻었으며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습니다.
악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명 모인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음악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자에 동전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파가니니가 연주할 때 그 악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바이올린. 누구의 손에 들려졌느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떠났던 나오미!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이방여인 룻과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환영하자, 나를 나오미로 부르지 말라 합니다. 나오미는 ‘감미로운’ ‘은혜로운’ ‘사랑스러운’ 뜻입니다. 대신에 마라라 부르라!~ 마라는 쓰다, 쓰라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며 돌아왔지만 하나님에게 다이얼 맞출 때 룻은 아들을 낳았고 나오미는 행복한 노래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낡고 헌 악기를 연주해 주시니 노래가 나온 것입니다.
악기가 중요하나 악기가 중요하지 않고 무기가 중요하나 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손에 잡혔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칼이라도 의사의 손에 들리면 생명을 살리는 수술 칼로! 주부의 손에 들어간 칼은 맛을 내는 칼로! 장군의 손에 쥐어진 칼은 조국을 지키는 칼로! 정원사의 칼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내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생명을 죽이는 칼이 됩니다. 칼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음식을 망치고 옷감을 망치고 면허증이 없는 사람의 손에 수술 칼이 들려지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내가 피아노를 치지면 형편없는 노래가 나오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가 치면 명품 연주가 되고 명품 악기가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생애를, 실력을, 학벌을, 돈을 사단에게! 세상에! 내주지 마십시오! 사단은 그걸로 사람을 잡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컷 이용을 당하고 버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좋은 무기로 내어드리십시오!
13절 하반절, ‘드리며’ 자원하는 심정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억지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예배도 봉사도, 헌금도 기쁘게 하세요. 자원이 없는 신앙생활, 이게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다윗은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2)라고 말하며 자원하는 심령의 축복을 노래합니다.
“드리라”-이 말은 반복적이며 계속적입니다. 이미 드리고 또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데 자신을 바칠 생각을 하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에게 자신의 삶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형편없는 우리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실 것이며 우리는 좋은 병기로 쓰임을 받는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 결과물들이 우리 늘빛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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