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성전이다(8)-발
이사야서 52장 7-10절
서론
‘몸이 성전이다’, ‘몸’시리즈 마지막 설교입니다. 지금까지 몸시리즈는 골반-척추-무릎-어깨-근육-혈관의 순서로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통해 주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에서 우리가 어떤 기능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믿음생활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발에 관한 것입니다. 몸에서 발이 차지하는 면적은 2% 정도입니다. 발은 항상 먼지에 묻어있고 숨겨져 있기에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굴은 수건으로 닦아도 발은 걸레, 아니면 발수건으로 닦습니다. 위치상으로 봐도 머리는 가장 위에 있고 발은 가장 바닥에 있기에 그만큼 발은 비천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발에 대한 대접이 시원치 않습니다.
손이나 얼굴에 상처가 나면 병원을 갑니다. 발은 여간하면 양말이나 신발로 가리고 다닙니다. 굳은살이 박이도록 걸어 다니고 피곤해도 제대로 손이 가지 않는 것이 발입니다.
인류 역사도 발을 천대시했습니다. 내 발 앞에 무릎을 꿇어라, 내 발바닥이나 핥아라~ 이 말은 발이 미천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인들을 비하할 때도 쪽발, ‘쪽바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발은 우리 몸 중에서 가장 수고하면서도 가장 소홀한 대접을 받으니 억울도 할 것입니다. 얼굴과 손, 오장육부들은 엄청 귀하게 여깁니다. 기침이라도 나거나 얼굴에 상처가 나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발에 난 병은 양말과 신발 속에 감추고 삽니다. 발이 자체적으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한다면 상당히 불공평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발이 하는 일을 보면, 발은 가장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준 하인입니다. 그래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 공학상 최대의 걸작이자 최고의 예술품은 발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발에 대한 고마움이 큽니다. 제가 건강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 발로 한라산을 세 번이나 올랐던 발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세계 여러나라를 걸었던 발입니다. 발이 없었으면 어찌 그 많은 곳을 발품 했겠으며 견문을 넓혔겠습니까? 얼마나 고마웁니까?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면 얼굴수건으로 발을 먼저 닦고 얼굴을 닦습니다. 사실 얼굴에 비해 발의 노동력은 대ㅑ단한데 우리는 그 고마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발은 각각 26개의 뼈로, 도합 52개의 뼈로 구성됩니다. 인간 뼈 206개(208개?) 중 25%를 차지합니다. 양쪽 38개 근육과 양쪽 모두 214개의 인대와 수백 개 혈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발의 구조는 크게 앞발 중간 발 뒷발로 이루어져서 체중을 골고루 받쳐주면서 걸을 때 충격을 흡수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발가락들은 운동성이 많습니다. 체중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주는 지렛대 역할과 앞으로 밀고나가는 추진력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걸어가는 단순한 행동 하나에도 수많은 복잡한 인공 공학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발은 걸을 때 몸무게의 3배를 버텨냅니다. 뛸 때는 7배의 무게를 견뎌냅니다. 인간의 발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지구를 세 바퀴 이상 걸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합니다. 평생에 걸쳐 10만km 이상 걸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놀라운 발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사람은 걸으라는 것입니다. 걸으면 건강하고, 걸으면 문명이 발전하고, 걸으면 생산성이 높아 풍성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최고의 발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최고의 승용차 발을 선물로 받았지만 이 발에 족쇄를 채움으로 발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발에 생기는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기울어져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으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3배 이상이 높습니다. 굽 높은 구두나 하이힐, 킬힐을 신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들은 발의 역학구조를 무시하고 여성의 아름다움, 특히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데서 출발합니다.
일설에는, 하이힐은 유럽에서 개똥을 밟고 다니지 않기 위해서 남녀가 모두 신었는데 남성들이 종아리 근육을 뽐내려는 것에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여성들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상업적 전략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고무신을 신은 것보다 모양새는 있지요.
그런데 이런 족쇄가 병을 유발합니다. 발에서 엄지발가락은 엄지답게 40%의 일을 합니다. 나머지 발가락들은 각각 15% 정도씩 비중을 차지합니다. 굽이 높은 구두나 하이힐을 신으면 끼어서 엄지가 새끼발가락 쪽으로 기울어져 관절염, 무좀, 물집, 신발 안이 습해져서 피부사상균⋯ 등이 생깁니다. 발을 자유롭게 놔두지 않고 멋있게 보이려 족쇄를 채우면서 건강도 위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직립(直立)이고 직립보행(直立步行)입니다. 원숭이와 오랑우탄도 직립보행을 하지만 인간의 직립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반듯하게 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우뚱거리며 걷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같이 흙으로,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 창조는 되었지만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발은 인간을 어느 동물보다 경쟁력이 있게 했고 이동을 통하여 문명을 일으켜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신체를 힘겹게 떠받치면서 한 마디로 불평도 하지 않는 것이 발입니다. 그 발은 고마운 발이요 아름다운 발입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고마운 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인간의 죄악을 나열하면서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3:15), 죄를 짓은 일에 빠른 못된 발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도 한 때는 그런 발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체포해서 대제사장의 재판정 앞에 세우려고 빨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도 좋은 발은 아닙니다. 그도 충신 다윗,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세주의 조상 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달리던 나쁜 발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에 나쁜 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발들이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악인들의 꾀를 쫓아다니는 발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본문에서 아름다운 발이 있다고 했습니다. 발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날씬한 종아리에 있을까요?
1. 가장 못 생긴 발이 가장 아름다운 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발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뒤틀린 발입니다. 강수진은 세계적인 발레단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해, 수석발레리나로 활동하다 지금은 국립발레단 예술 감독으로 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몸매로 토슈즈를 신고 하늘을 나는 그녀의 발레는 천상을 나는 천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발입니다.(ppt로 발을 보여준다)


저 발이 ‘1만시간의 법칙’으로 망가져 버린 발이고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을 만들어 낸 발입니다. 강수진은 1년에 토슈주를 150켤레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루 10시간, 19시간ㄲ지 연습했던 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느라 발은 완전히 뭉개져 버렸습니다.
강수진만 그런가요? 박지성의 발도 못 생겼고 김연아의 발도 못 생겼습니다. 테니스 스타 정현의 발은 물집이 생겨 결국 기권하도록 만들었지만 고통만큼이나 아름다운 발입니다.
발은 아름다워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진정한 발은 자기는 망가지고 자기는 내놓기도 민망한 못 생김으로 그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 사람의 일생을 찬란하게 빛내줍니다.
아름다운 산은 잘 생긴 나무들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잘 생긴 나무들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비싼 값에 옮겨심깁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못 생긴 나무! 돈 한 푼 받을 가치가 없는 볼품없는 나무들이 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 산들로 산들은 명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못 생긴 사람들, 무재주 사람들, 내놓을 것 없는 사람들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봉사하고 또 봉사해서, 믿고 또 믿어 ‘1만 시간의 법칙’을 만들어 좋은 교회, 위대한 교회를 만들고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양말 속에 숨겨지고 운동화 속에 숨겨지고 토슈즈에 숨겨진 못 생긴 발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 희생적인 발이 아름다운 발입니다.
사람들은 강수진의 발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박기성의 발이 아름답다 하지만 제게는 우리 어머니의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장사를 했습니다. 밭떼기로 수박을 사서 트럭에 실고 마을마다 다녔습니다. 보리쌀 수백포대를 배에 실어 목포까지, 감귤을 영등포시장으로 청량리시장으로 보내면서 장사를 했으니 시골에서는 그 당시 드물게 거상(巨商?)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어머니의 발을 보았습니다. 강수진의 발 정도는 아니었지만 완전히 기형입니다. 너무 많이 걸어, 제대로 맞는 신발을 신지 못해 이상한 장애인의 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발은 지금도 제 가슴에 슬픔이고 고마움입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발은 희생하는 발이라는 것을! 모든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얼굴이 아니라 발이요 모든 어머니의 고마운 추억은 그 발에 있는 것입니다. 발은 희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요, 예수님의 발도 볼품없으면서도 선한 일을 많이 하신 발입니다. 사역의 본거지였던 가버나움에서 어린 시절의 고향 나사렛마을까지는 요즘 걸음으로 9시간,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까지는 35시간입니다. 33년, 그 길을 수없이 걸으면서 수많은 사연들을 만났고 상처들을 만났고 병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발은 십자가에서 못에 박혀 상처가 나기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은 살려내려고 일으켜 세우려고 희생시킨 발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발입니다.
3. 세상에도 가장 아름다운 발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입니다.
이사야가 7절에서 말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좋은 소식’이 2회 나옵니다. 그건 복된 소식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에게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온 성(城)안의 백성들이 고대하고 원하였던 소식을 소지하고 달려오는 전령을 발견하였을 때 그들의 눈에 비친 전령의 발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처럼 아름다운 발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훔도 아름다운 발을 말합니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발이 산위에 있도다⋯”(나1:15)
바울도 같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
바울에게 좋은 소식은 예수님에 관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 그들에게 무슨 댓가가 있습니까? 무슨 영화를 보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런 발들이 있었기에 130여 년 전에 대한민국에 복음이 들어와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대한민국이 번영을 이룬 것이 아닙니까?
그런 아름다운 발들이 지금도 있기에 세계의 영혼들이 선교사님 통해 구원을 받으며 인생의 가치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고 무거운 짐들을 십자가에 올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신안군 증도면 ‘증도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문준경 전도사님의 발도 아름다운 발입니다. 1891년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난 문준경은 열일곱에 증도로 시집갔으나 첫날밤 소박을 맞고 20년 가까이 모진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목포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던 그녀는 우연히 집에 찾아온 전도부인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됐다. 그리고 이성봉 목사님을 만나 전도사로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자신이 돌보고 있던 교인들이 걱정돼 이 목사 등 주변의 만류에도 다시 증도로 들어갔다가 공산군에 의해 1950년 10월 순교했습니다. 공산군은 전도를 많이 한다는 이유로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며 그를 죽창과 총으로 사살했습니다. 증도에는 문 전도사의 복음 전파로 현재 2200명의 주민 가운데 90% 이상이 신자이고, 11개의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집니다. 증도 주민 가운데 목회자 159명, 장로 81명이 배출됐습니다. 그녀는 1년에 고무신을 아홉 켤레나 바꿔 신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전도로 CCC의 김준곤 목사 정태기 목사, 이만신 목사, 신복윤 목사⋯등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발입니까?
예수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채명수 선교사님의 발이 있어 인도가 구원 받고 최성철 선교사님의 아름다운 발이 있어 원수처럼 여기는 일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를 사함 받고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었다는 기쁜 소식, 그 복된 소식, 복음을 전하는 발들, 복음전령자들의 발은 그리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아름다운 발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내 발들을 복음전령의 발로 내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발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얼굴이 아니라 몸매가 아니라 발을 보여 달라 하실 것입니다. 발은 그의 삶의 흔적이고 수고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천국에 가면 아브라함의 얼굴도 보고 싶고 베드로도 바울도 여러 인물들도 보고 싶습니다. 특히 그들의 발을 보고 싶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더나 수천 리 떨어진 예루살렘까지 걸으면 평생 장막생활을 했던 그 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3천 세계선교여행을 다녔던 바울의 발은 얼마나 뭉개졌을까요?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갚아주신 그 발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결론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장부, 모든 조직들은 어느 하나 필요치 않는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찮은 것 하나라도 아프면 언 몸이 아프고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몸의 하나하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부모의 효를 논하는 <효경>에서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한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뜻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그보다 우리 몸을 더욱 높게 봅니다. 몸은 성전이다, 몸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 몸은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대단한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몸매도 만들고 근육도 만들어 건강하게 사는 것과 함께 몸의 기능과 역할들을 잘 묵상하면서 몸으로 경배하고 몸으로 봉사하면서 아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야 합니다.
귀한 사람은 누구이며 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몸이 귀하고 천한 것을 보여줍니까? 그 사람의 신분과 학벌이 귀하고 천한 것을 보여줍니까? 아닙니다! 천하고 귀함은 그런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귀한 뜻을 품고 살면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천한 뜻을 품고 살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으로 살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미운 생각으로 살면 미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분이나 직위나 몸짱이나 얼짱보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 장수무대 인생보다 더 우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몸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몸시리즈 설교는 이창우 원장님의 ‘바디바이블’을 거의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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