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밭 만들기 설교]
당신의 마음 밭은, 굳은 마음 밭입니까?
마가복음 4장 3~9절
서론
대한민국에서는 대략 36명이 자살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예배드리고 있는 한 시간 동안에도 우리나라 어디선가 1명 이상의 누군가가 자살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신문지상에 나온 자살의 형태는, 공부 못해서 죄송하다며 고2학생이 목매어 죽었고, 52세 난 주부는 쌍꺼풀 수술이 잘못 되었다 비관해서 죽었고 아들의 카드 빚으로 고민하던 40대 부부가 농약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그 앞에는, 생활고에 비관해서 세 아이와 함께 14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젊은 어머니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풍성한 삶은? 행복한 삶, 만족하는 삶, 감사하는 삶, 즐거운 삶입니다.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할까요? 반대로 삶을 비관하다 생애를 마감하는 것입니까? 50세면 철이 들만도 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만 한데 1년 전에 수술한 부위가 가라앉는다고 죽는다면 쌍꺼풀 없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할까요?
왜 이럴까요? 운전사 탓입니다. 자동차에만 운전사가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운전대가 있습니다. 꼬불꼬불한 인생 길 간다고 다 사고나는 게 아니고 위험한 도로 달린다고 사고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운전대를 잡는가? 난폭한 운전사가 내 마음의 운전대를 잡으면 내 인생이 난폭해 집니다. 사람들과 부딪치고 상처 주고 상처받고… 인생이 버겁습니다. 차분하고 즐거운 운전사가 내 마음의 운전대 잡으면 인생은 상황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참고 견디며 소망 가운데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네 가지 마음 밭의 비유는 현대인들의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누가 내 마음의 운전대에 앉아서 운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심리적인 내용입니다.
오늘부터 네 가지 마음 밭, 네 가지의 심리에 대해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밭-길바닥의 마음 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길바닥 마음은 자아중심적 사고입니다.
4절의 “길가에 떨어진 씨”.
길가는 도로가 아니라 지름길 밭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밟아버려서 땅이 굳어버렸고 딱딱해서 싹이 날 수 없는 땅이 된 것입니다.
사람 마음에도 길바닥 마음이 있습니다. 닫히고 굳은 완고한 마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독한 마음. 이런 사람들은 지식도 실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말라버렸습니다.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은 지식과 실력,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감정에서 나옵니다. 감성이 풍성해야 기쁨도 있고 행복을 누릴 줄도 아닙니다. 감정의 기관이 고장나 버린 사람들이 길바닥 같은 마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같은 영화를 보아도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주인공의 눈물에 감동 받고 눈이 빨게도록 웁니다. 감정이 마른 사람은, 왜 갑자기 헤어질 때가 되니까 비가 오는가? 비과학적인 것을 재고 있습니다.
길바닥 마음의 소유자들은 열린 마음이 아니라 폐쇄된 마음, 다른 사람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나 자기 중심의 주장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합니다. 이기적입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완고함! 완고함은 대리석 같은 마음을 뜻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되어야 하고 피어나는 꽃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대리석처럼 되어버렸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습니까?
대리석 같은 마음은 편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편견은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적 편견, 신체적 편견, 성적(性的) 편견. 이런 편견은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게 되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양한 기회를 스스로 차단시켜 버립니다.
대리석 같은 마음은 원만한 부부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 언제 가장 속상합니까? 자기 밖에 모르는 행동을 할 때 가장 밉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성인 아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합니다. 매사를 자기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자기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는 우리 엄마는 이랬다, 저랬다, 여성 경우에는 우리 아버지는 이랬다, 저랬는데… 성인 아이에게 운전대를 맡겨버린 것입니다.
길바닥 마음은 융통성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종교생활을 해도, 말씀을 많이 들어도 공동체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이런 마음의 운전사는 스스로의 인생에 사고를 일으킵니다.
목회는 여러 운전사들 사이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직회 할 때, 당회 할 때, 무엇을 결정할 때 목사는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할 때 있습니다. 저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데… 내가 볼 때는 가벼운 경상인데 본인들에게는 중상으로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서로 잘 타협하면 될 것을 도로 중앙에 차 세워놓고 싸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되다보면 그냥 넘어갈 것도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자기가 상처를 주었는데. 그래서 목사는 교통정리원입니다.
어떤 목사가 행복한 목사인가? 근사한 자동차가 아닙니다! 교인들의 운전대에 난폭한 운전사가 없어야 합니다. 이리 받고 저리 받는 운전사들이 없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이고 목회하기가 좋은 교회입니다.
2. 왜 길바닥 마음이 되는 것입니까?
자동차는 수십만 개의 부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대의 자동차인데 그 속에 수십 만개의 부속품이 있습니다. 하나가 잘못되면 멈추거나 사고가 납니다.
비행기는 수백만 개의 부속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컴퓨터 역시 엄청난 부속품이 들어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는 피아노는 어떨까요? 피아노도 중요하지만 누가 피아노를 치는 운전사인가? 그게 더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8만 4천 개의 감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할까요? 그래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하루에도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인간이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감성적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인간으로 행복하고 부유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아담이 하와를 바라보면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과연 원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시인(詩人)의 마음입니다. 시인의 마음은 감성이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길가의 밭처럼 딱딱하고 굳은 마음, 완고한 마음이 되었을까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시인의 마음, 풍성한 감성 지수로 창조되었던 남성들이 “애들은?” “밥 도오!” “자자!” 이런 멋없는 인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을까요? 전혀 융통성이 없는 인생들로 재미없게 ‘자리매김’을 하고 말았을까요?
*어린 시절에 상처받으면 마음이 굳어져 버립니다.
여아(女兒)들이 성적인 상처를 받으면 그때부터 마음의 운전사는 세상 남자들에 대한 편견의 도로로 달려갑니다. 남자들을 짐승으로 봅니다. 결혼생활도 편치 못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남자로 보입니다.
부모나 교사에게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굳어져 버립니다. 나는 쓸모 없는 존재다, 미움덩어리이다… 마음 속의 운전사는 매사에 자신 없는 운전을 하거나 난폭한 운전을 하게 됩니다.
지난 21일 20세 최 모 아가씨가 이모라는 중학교 동창을 칼로 찔러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혔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던 두 여성이 말다툼을 했고 그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때부터 아가씨의 마음에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난폭한 여중생이 운전대를 잡고 만 것입니다. 6년을 배신감으로 치를 떨던 아가씨는 6년 만에 친구를 찾아가서 칼로 찔러댄 것입니다. 그것은 20세 아가씨가 찌른 게 아니라 18세 여중생이 찌른 것입니다.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마음이 굳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의 남성들은 대부분 유교문화권에서 자라났습니다. 유교문화는 체면을 중시합니다. 남자는 가벼워서는 안 된다,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울어서도 안 된다! 이런 전통적 가르침이 한국의 남성들을 목석(木石)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대화의 단절입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배우자와 자녀들은 무뚝뚝한 모습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결국은 본인 자신도 상처를 받습니다. 내 마음을 왜 그렇게 몰라주느냐? 생일 때 꽃 한 송이 안 해 주었다고 그게 뭘 어떠냐? 오히려 속없는 여성이라고 경멸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부간의 마음을 “닫힌 문빗장”으로 만들어 사랑의 꽃이 시들어버리고 열매 없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죄성이 굳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인간의 감성은 부드럽고 활달하고 애정적이고 이해심이 많고 남에 대한 배려가 많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가면 죄의 특성은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마음 문을 닫거니 서로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죄성이 영성을 침투하게 되면 마음은 하나님에 대해 굳어버립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게 되고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이 길바닥이 되어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설교자들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고 냉소적입니다. 죄가 길바닥 같은 마음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숨겨진 죄가 있게되면 괜히 신경질적이고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남에 대해 더 비판적으로 나갑니다.
이런 마음들이 인생으로 풍성한 삶, 열매맺는 아름다운 삶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길바닥 마음의 운전사를 교체하십시오.
길바닥 마음을 부드러운 옥토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바닥이 굳어있으면 누구의 말도,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난폭한 운전사를 빨리 몰아내십시오. 포용과 성숙과 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 잣대로 사고해서는 인생의 사고가 일어납니다. 마음의 운전사를 바꾸십시오. 굳어버린 운전사가 아니라 이해심이 많은, 수용성이 많은 운전사로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의 운전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마음의 운전대, 인생의 운전사로 그 분에게 핸들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의 쟁기로 내 심령을 갈아야 엎어야 합니다. 마음의 병은 수술로도 안 됩니다.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얼마나 내 자아중심적인 죄인이었나,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병의 경우에는 특히 자기 병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치료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가 비단 십계명적인 죄가 아니어도 폐쇄적인 자아중심의 죄가 얼마나 나의 신앙적 열매, 여러 사람들에게 풍성한 맛과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일을 가로막고 있는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해심과 융통성과 관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오면 그 사람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쓸모 있게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소명의식입니다.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고난이 와도 고난을 파도타기로 넘어가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결론
굳어버린 마음 밭을 옥토를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는 인생의 지렁이는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의 경험으로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를 신뢰하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옥토가 되고 많은 인생의 열매들로 가득 채워져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60배의 결실이 아니라 인생 100배의 열매를 맺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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