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의 암소
사무엘상 6장 10-16절
서론
금년은 소의 해입니다. 여러 시대를 거쳐 인간들과 동고동락해온 짐승 중에 첫째를 들라면 소일 것입니다.
소의 가축화는 기원전 4,500년으로 추정되는 데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처음 사육하였고 스위스에서는 벌써 이때부터 소젖을 짜서 먹었다고 합니다. 소는 이처럼 여러 세대를 거쳐 사람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로 살아온 짐승입니다.
금년 한 해, 소의 좋은 특성을 살려 좋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 소는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절,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죽고 두 아들 제사장은 전사했습니다. 법궤는 빼앗기고… 그래서 비느하스의 아내, 엘리의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이가봇!"이라고 외쳤습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시대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역시 법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계속해서 변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의 신 다곤이 고꾸라지고
*성읍 사람들에게 독종이 임하고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5:12).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법궤를 돌려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보내면 재앙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금쥐 다섯과 금독종 다섯의 형상을 만들어 수레에 싣고 두 암소로 하여금 끌고 가도록 했습니다.
두 암소는 어지간히도 재수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로 죽음의 길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인간들의 잘못으로 두 소가 그 멍에를 메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두 소는 수레를 끌고 묵묵히 벧세메스로 올라갔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생각하니 소도 울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시키기에 복종하느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울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짐승 중에 소처럼 우직한 것도 드뭅니다. 소는 꾀를 부릴 줄을 모릅니다. 그저 우직한 심정으로 주인을 위해 충성을 하고 새끼소에게 무조건 주인에게 충성하도록 가르쳐 놓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쁜 뜻으로 하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만 좋은 뜻으로 해석을 한다면 소들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갑니다. 주변의 이런 저런 소리에 정도(正道)에서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에만 하더라도 소들은 주변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남편 황소의 말도, 송아지의 눈물도, 그리고 달아나라는 주변 소들의 말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암소는 아무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직하게 주인들이 곤경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을 위해서 자신들은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묵묵히 그리로 걸어간 것입니다.
우리도 소처럼 과묵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송아지로 인해 울면서도 자기의 길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요란을 떨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좀 더 참아주고 지켜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은 데 도와준다고, 편을 들어준다고 하다가 피차가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소가 수레를 끌면서 가고 있습니다. 수레가 툴툴거리며 불평을 했습니다. 주인이 짐을 너무 많이 실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소가 한 마디 했습니다.
"힘든 것은 나다. 힘들어도 내가 힘들고 소리를 질러도 내가 소리를 질러야 하는 데 어찌 네가 더 요란을 떠느냐?"
그렇습니다. 당사자가 괴로워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 데 옆의 사람들이 더 호들갑을 떨고 돕는다고 하다가 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입을 다물어 주는 것만도 개인을 돕는 길이요, 교회를 돕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위가 한 개인데 비해 소는 위가 네 개 있습니다. 소는 씹기 전에 일단 삼킵니다. 소는 먹이를 일단 급하게 삼키기 때문에 잡다한 많은 덩어리를 함께 삼킵니다. 함께 삼킨 잡다한 것들 중에는 옷단추, 열쇠, 호주머니용칼, 시계, 심지어는 숟가락 같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의사가 소를 수술해 보았더니 이런 것들이 그냥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이러니 소들은 우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조그만 소리에도 꿀꺽 삼키지 못하고 그냥 여러 사람들에게 나팔을 붑니다. 내 입만 다물어버리면 숨겨질 수 있는 말도 삼키지 못하기에 자꾸 말들이 붙어서 엉뚱한 말로 둔갑을 하여 날아다닙니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 우리도 우직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좀 어른스럽게 신앙생활을 합시다. 좀 더 대인이 되어 일들을 합시다. 작은 일 하나 만났다고 우왕좌왕 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대범하게, 듬직한 마음으로 교회생활을 해야합니다.
요즈음 들어서 응석받이로 교인들을 키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자꾸 가져보고 있습니다. 상처를 주지 말라고 늘상 강조했는데 이것이 조그만 소리도 듣지 못하는 연약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좀 더 어른스럽게 묵묵히 참고 견디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2. 소는 주인과 교감이 강합니다.
소는 큰 몸집과 우둔한 행동에 비해 주인의 소리나 주인의 손끝의 채찍과 고삐에 신호만 가도 분석적인 사고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인 육감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해 낼 정도로 정신작용이 발달했습니다.
즉 직입적(直入的)인 감성이 발달한 짐승입니다.
매사에 침착하며 어미소로부터 이어받은 본래의 감흥과 영감이 다른 동물에 비해 유달리 뛰어납니다.
또한 원시시대부터 집안의 별채에 주인과 동거하며 주인의 기침소리와 함께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동반자 같은 짐승입니다.
소는 주인과의 교감을 여러 방법으로 나눕니다.
*주인의 인기척이 자신의 기상신호이며 일출과 동시에 심호흡의 큰소리와 동시에 동료나 새끼들에게 기상명령을 하듯 "음매!"하고 외칩니다.
*소는 주인이 먹을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집안에 있는 어떤 먹이에도 입을 대지 않습니다.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주인이 밭갈이를 가려는지 논으로 가려는 지 도구를 챙기는 것을 보고 금방 알아차립니다. 밭으로 갈 것 같으면 물을 많이 먹고 논으로 갈 것 같으면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논에 물을 많이 먹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면 주인한테 쉬었다 하자고 머리를 숙여 좌우로 흔들어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낯선 사람이나 도둑이 들어오면 목에 달린 방울소리로 알려줍니다. 또한 화재나 위급한 일이 생길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난동을 부려 고삐를 끊고 집안을 빙빙 돌아 주인에게 가장 먼저 알려줍니다. 도망칠 생각부터 먼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주인이 모르고 잠을 자고 있으면 사력을 다해 문을 부수고 최후로 알립니다.
*들판이나 밭에서 일을 할 때 늑대나 곰, 맹수 등의 기습이 있으면 주인 앞에 비호 같이 달려들어 앞을 가로막고 맹수처럼 씩씩대며 뿔로 방어하며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소는 그 어떤 짐승보다도 주인과 깊은 교감을 나누며 삽니다. 소들은 주인의 뜻을 너무 잘 알아차립니다. 항상 주인을 살피고 주인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리고 새끼소들에게도 그런 교육을 시킵니다.
오늘 본문의 소들도 제 주인의 뜻을 잘 알아차렸습니다. 주인의 집에 재앙이 왔습니다. 자기들은 재앙을 멀리 갖다버리는 사명을 띄고 올라간다는 것을 알았기에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묵묵히 올라갔던 것입니다.
소는 이처럼 제 주인의 소리와 눈치, 채찍, 고삐의 교감의 대화 속에서 살다가는 동물입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깊은 교통을 나누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사모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봉사에만 힘을 쓰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주목하며 신앙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벌써 사람들이 일에 관심을 쏟고 그런 일에 쫓아다니는 것을 볼 때도 역시 안타깝습니다.
금년 한 해는 하나님을 주목하십시오. 그분과의 교감을 통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십시오. 그리고 이 교회에 다니는 우리 가족들은 목사의 심정을 늘 살피며 목사와의 깊은 교감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3. 소는 자기의 것을 모두 줍니다.
소는 우직하고 성실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제 주인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갑니다. 살아서는 평생 주인을 위해 일하고 죽어서는 다시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줍니다. 생골, 등심, 가죽, 갈비, 안심, 족탕, 꼬리탕.... 등등 그냥 버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야 말로 온몸을 제 주인에게, 사람들에게 다 바치는 것입니다.
소는 이처럼 죽어서도 고기와 뼈, 내장까지 사람에게 헌납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벧세메스의 소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블레셋에게 임했던 재앙이 멈추고 이스라엘은 법궤를 되찾았습니다. 모두들 두 암소에게 상을 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잡아 죽임을 당하고 번제로 드려졌습니다(14절). 그래야 하나님의 노여움이 풀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세메스의 소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끝없는 희생이었습니다.
교회는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늘빛교회 역시 여러분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분이야말로 벧세메스의 암소였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시고 골고다의 길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영웅이 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 분은 죽도록 충성하셨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분은 우리들을 쉬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소처럼 묵묵히 일하십시오. 그러다가 힘들면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에게 짐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들에게 쉼과 평화와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결론
*소처럼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주님과의 교감, 목사와의 교감을 통해 항상 순종하며 도우려는 자세를 가집시다.
*죽도록 충성하며 희생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목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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