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사도행전 10장 1~8절
서론
오늘은 가정주일입니다.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가정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강한 가정인가, 아니면 역기능적인 가정인가, 살피면서 카센터가 아니라 갓센터에 들어와 있는 심정으로 교회와 가정을 점검해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생활도 성공하고⋯ 가정생활도 성공하고⋯ 그래야 행복한데 이게 잘 안 됩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이 두 생활간의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생활은 잘 하는데 가정에서의 자기 역할을 못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불행합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교회에서 여유가 없습니다. 좀 공격적입니다. 가정에서는 잘 하는데 교회생활을 등한시 하는 분들, 믿음이 성장되지 않습니다. ‘히끄무리’(?)해요!
우리가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성공하려면 오늘 제목처럼, 가정은 교회로 만들고, 교회는 가정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성공이고 믿음성공입니다.
1. 가정 같은 교회
교회의 원조,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였나요? 건물이 없었지요! 시스템이나 위원회⋯ 등등 조직이 없었어요! 어느 집에 모여 애찬을 나누고 성찬하고 예배하며 찬양하며 내 것을 나눴어요! 교회 안의 계급 같은 직분들⋯ 이런 조직이 없고 사도와 평신도그룹입니다. 그러니 모두 평등했고 한 가족이었습니다. 교단냄새가 없이 그냥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한 가족입니다.
가족(家族)이란 뭔가요, 그건 관계, 그냥 관계가 아니라 남다른 관계, 특별한 관계입니다.
혈연(血緣) 관계:부모-자녀관계를 기본으로 수직적 혈연, 부모를 공유하는 수평적 형제관계.
인연(姻緣) 관계:부부관계를 기본으로 고부관계 장서관계⋯ 등.
법적(法的) 관계:입양을 통해 사회적인 자녀관계를 맺은 것.
이해(理解) 관계: 조폭이나 깡패집단도 저들끼리는 패밀리(families), 가족이라고 합니다.
초등학생들에게 가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 했더니 엄마아빠 동생 그리고 강아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으로 인정 못 받습니다. 세뱃돈이나 주고 용돈이나 주는 친척 할아버지 친척할머니 정도로 아이들의 의식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가족-친척개념이 변형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종교로 맺어진 가족관계입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수평적으로는 교인들 간의 영적인 혈연가족입니다. 이런 관계는 우열이 없고 한 형제입니다. 가족관계를 이루는 최우선 요소는 혈통입니다. 혈통은 피입니다. 같은 피를 공유하는 이들이 일차적으로 가족입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 할 때는 혈통을 말합니다.
우리가 왜 가족입니까? 피가 같아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구속하려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는 그 피로 죄사함 받고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그 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O형 A형 B형⋯ 등의 혈액형이 있지만 영적으로는 Jesus, J혈액형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구성원은 가족개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형교회는 옳다, 그르다, 를 떠나서 성경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성경적 교회는 가족개념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가정의 개념, 예배당종교가 아니라 고백공동체, 형제공동체입니다. 특별한 직분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형제여 자매여~ 얼마나 좋은 혈연관계입니까?
그러던 초대교회가 주후 313년 콘스탄틴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392년 국교가 됩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주류종교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종교로 신전중심이요 직분위주입니다. 로마기독교가 신전이 탐나 바벨론 종교와 빅딜을 합니다. 신전을 접수해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대신에 교황제도 사제, 수녀라는 직제들을 받아들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없던 직제들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교단조직을 만들어 내고⋯ 명예와 권력, 이해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어때요? 교회가 회사 성격으로 변질되어 목사를 청빙할 때 교세를 얼마나 더 확장시킬 수 있느냐, 최소한 현재의 교세를 위축시키지 않고 유지할 수 있겠느냐를 우선시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건 기업체가 CEO를 채용하는 기준은 될 수 있어도, 담임목사 청빙 기준은 아닙니다.
담임목사는 교인의 증가 혹은 감소와는 상관없이, 교회를 하나님의 이끄심만 쫓는 가족공동체로 이끌어 갈 수 있느냐? 그래서 교회가 웃음이 흘러나오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믿음을 세워나갈 수 있느냐? 이런 것이 청빙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회사가 아니라 가정이요 교회의 구성원은 사원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의 가정! 그의 집은 가정이면서 교회였습니다.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비록 집에서 하는 종교생활이지만 이게 교회입니다. 여기에는 가족만이 아니라 백부장이었기에 유대교를 믿거나 관심이 있는 장교, 사병들, 이방인 유대신자들이 모여 예배했겠지요.
24절,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고넬료 일행은 집에서 예배모임으로 끝나지 않고 종교가족이 되어 돌아보고 기도해주며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도 힘을 모았습니다. 가정교회에 다녀오면 유대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유대전통을 알고 힘을 얻고 행복한 것입니다. 가족처럼 느끼는 가정교회입니다. 그러던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대하고 48절, 세례 받은 후에는 제대로 된 가정교회를 이룹니다.
초대교인들 역시 추방당해 어느 마을에 들어가면 나도 먹고 사는 것이 어렵지만 피신 나온 신자들을 영접하고 한 가족으로 대해주었습니다. 교회 가족이 내 신앙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가 이런 가족기능을 놓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경공부, 제자훈련, 무슨 프로그램이 목적이 되는 종교학원이 되고 있습니다. 형제개념이 아니라 직분으로 관계가 이루어지기에 조직사회요 조직회사입니다. 예배당이지 가정-홈이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싸움이 터지고 비방하고⋯ 흠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이라면 사사건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를 더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요즘은 나홀로~ 시대이기에 서로 간에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고 고아원 분위기입니다. 계급적이고 명예에 급급합니다. 냉랭합니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교세가 무슨 큰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더 따뜻하게 친절하게 서로를 맞아야 합니다. 모든 이들과 가족관계, 신앙 안에서 1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관계들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같은 교회, 우리가 만들어가야합니다!
2. 교회 같은 가정
지금 우리 가정은 그냥 하우스이고 홈이지, 교회로서의 기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은 주중에 교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종교기능이 중지입니다.
고넬료 가정을 보세요!
2절,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어디에서 했습니까? 집에서 한 것입니다. 집은 그냥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가정 식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교회가 되고 있나요? 교회서 기도하고 대표기도 때 기도할 뿐 집에서는 기도와 담을 쌓고 신앙생활은 덮어버린 것이 아닙니까?
윌리암 오그번(Ogburn) 교수는 <현대인의 상실>(번역이 안 된 것 같습니다)에서 가정의 기능을 다섯 개로 말합니다.
㈀ 경제적 기능. 유대인들은 상당히 돈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돈은 가정을 위해 열심히 법니다. 돈은 가장의 책임입니다. 탈무드에는 돈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성경은 빛을 주고 돈은 온기를 준다.”
유대인은 돈을 무시하지 않고 돈을 존경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 1인1기 교육을 받습니다.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기에 어디 가서도 가족들 배고프게는 말라고 기술교육을 의무화합니다.
유대인 별명이 ‘공기 인간’입니다. 공기는 작은 틈만 있어도 들어가서 점령합니다. 유대인도 돈의 틈만 보이면 공기처럼 파고들어가 그 돈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그 곳의 상권(商權)을 쥐는 승부근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돈에 대한 집착력이 공기처럼 강합니다.
유대인, 한국인, 중국인이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중입니다.
중국인 맥주잔속에 파리가 들어갔습니다. 중국인은 건져놓고 마셨습니다.
한국인 맥주잔속으로 파리가 들어 왔습니다. “불결해요. 다른 맥주를 가져와!”
유대인 맥주잔속으로 파리가 들어갔습니다. 유대인이 파리에게 말했습니다.
“맥주잔에서 마신 맥주 토해내! 그거 내가 돈 주고 산거야”
돈에 대한 집착력, 그 돈은 가정을 지켜내려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건재한 것입니다.
㈁ 교육적 기능. 가정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치고 참 사람을 만들어 가는 평생학교입니다. 유대인들은 가정교육을 철저히 합니다. 신명기 6장처럼 교육헌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은 문에 말씀 상자 ‘메주자’를 달아 두고 나갈 때 들어 올 때 입을 맞춥니다. 이마에 말씀상자 ‘메주자’를 달고 다닙니다. 팔에는 ‘테피린’을 맵니다. 말씀 중심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유대인은 유대교육을 학교에 맡기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철저히 성경공부를 시키고 내 아이 내가 책임져서 유대인을 만듭니다. 가정이 그들에게는 예배당 자체입니다.
우리 가정이 교회화가 되어 있나요? 우리 가정에 주일학교가 열리고 있나요?
마이클 윌킨스 “자녀들을 제자화하는 우선적 책임은 교회에 있지 않다! 그 일은 부모의 몫”
불교 신앙전승율 97%, 이슬람 신앙전승율은 100%, 기독교전승율은 80%? 우리는 성경교육이 없는 가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역시 기독교와 관계없는 한 주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믿음의 대물림이 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2017년 설교)
㈂ 오락적 기능. 가정의 중요한 기능은 오락-즐거움, 웃음입니다. 가정은 즐거워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의 기능은 행복 창조에 있습니다.
유대인은 대부분 종교생활을 가정에서 합니다. 무척 경건하게 보이는 유대인들, 사실은 유머만점입니다. 항상 웃고 삽니다. 대속죄일이나 성전파괴일 외에는 늘 웃습니다. 부모상(喪)을 당해도 한 달 이상 슬픔에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태양처럼 밝고 즐거우신 분이시고, 항상 웃는 분이라는 믿음이 스스로 웃으면서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밖에 나가서 웃음을 찾을 수 없는 비운의 유대인! 가정에서조차 웃음이 없다면 가장 불행한 민족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유대인 가정은 오락을 만들어 내는 곳이고 행복한 공간입니다.
우리 세대가 왜 아버지에게서 애틋한 부정을 느끼지 못했나요? 고생은 더 많이 하셨는데⋯ 웃음이 없는 거예요! 가정의 오락적 면을 무시한 거예요! 밥 먹을 때도 조용~ 아버지가 계실 때도 조용~ 그러면 언제 웃어요? 웃음이 없는 교회 상상이 되나요? 웃음이 없는 가정이라면 그건 그냥 숙소일 뿐입니다. 교회가 웃음이 없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사람들, 친한 식구가 모여 있는 가정에서 웃음이 없다면 역기능 가정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가면 남들 힘들게 합니다. 가정에서 많이 웃어야 합니다. 그게 가정을 교회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 사명적 기능. 가정에는 나름대로 사명이 있습니다. 집안이 지켜내야 할 명예, 이루어야 할 업적⋯ 특히 유대인들은 땅과 조국을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메시아 언약을 간직하고 성취되는 날까지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걸 어디에서 교육하고 강조하고 붙들도록 했는가? 가정입니다. 가정이 사명을 감당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4천년의 정체성이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 종교적 기능. 크리스천 가정의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기능이 종교적인 기능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어디에서 배우는가? 가정에서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종교생활을 어디에서 하는가? 가정에서 합니다. 우리는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이지만 성전이 사라진 그들은 가정이 성전이고 주일학교가 없던 유대인에게는 가정이 주일학교였습니다. 가정에서 성경을 배우고 가치관을 배우고, 믿음을 익히고, 경건한 생활을 몸에 배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보다 가정이 더 거룩한 성소다.”
그래서 히틀러의 착각이 뭐냐? 유대인을 죽이면 유대교가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 자식이 그 자식에게⋯ 유대정신을 가르치며 죽어갔습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토라교육을 하지 못하게 가정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그걸 모른 것입니다. 유대인의 정신이 가정에서 세대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놓친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역사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을 없애려면 유대인을 죽이지 말고 가정을 해체하라~”
젊음 세대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일학교는 더 이상 배움이 자라는 곳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믿음을 배우고 가정에서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정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같은 가정이 되고 이런 행복한 가정들이 교회로 모여 가정 같은 교회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만들고자 하셨던 교회상(像)입니다.
결론
음식의 맛은 가정마다 다릅니다. 가정에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식의 맛이 있습니다. 음식만 아니라 얼굴 모양도 가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말투도 가정에서 만들어지고 성품도 가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믿음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더욱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가정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열고 더 격의 없는 따듯한 눈길로 먼저 웃어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줍시다! 교회는 전도해서 부흥되기도 하지만 따뜻한 내 눈길을 먹으며 교회가 성장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좀 더 교회로 만들어 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기독교육이 있는 예배당으로 만들어 내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성막이 되고 지성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가정에서 성장하는 믿음만이 내 자녀의 믿음이 대물림되는 산 믿음이 됩니다.
가정과 같은 교회~
교회와 같은 가정~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입니다. 이 미션 잘 이루어 땅에서 크게 축복누리고 그 축복을 좌우사방으로 유통시키는 축복의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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