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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천국에는 아이들이 중심이다!(창세기 2:7, 8, 2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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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품절. 중고서적에서

 

천국에는 아이들이 중심이다!

창세기 2장 7, 8, 25절

서론

오늘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에 하나님의 은총이 자녀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 어린이주일에 자녀들을 바로 키우자! 믿음의 대물림을 하는 자녀들로 키워내자~ 수없이 들었습니다. 들었던 것만큼 노력했고, 그럼에도 자녀들이 교회 나오지 않아 대물림이 끊긴 분들은 속상하고 섭섭하고 죄송한 것이 어린이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는 자녀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이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 ’, 그럼에도 어린이가 되지 못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어른의 부끄러운 심정으로 살아가는 내 삶을 돌아봅니다.

 

고대인들은 아이들을 사람숫자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아직 영혼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유대인들은 유아가 천국시민으로서는 자격이 미흡하다 판단했습니다. 제자들도 부모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자녀들을 데려왔는데 쫓아낸 것입니다. 유아들은 아직 천국에 합당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자 성인 13세가 되어야만 율법의 아들’, 즉 성인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끼지 말라고 막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아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14).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하신 말씀이 하나님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성경에서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제자 너희들 절대로 아이들과 나 사이에 끼어서 방해하지 마라. 천국의 삶에는 이 아이들이 중심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중심에 어린이들이 있다는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의 중심! 교회의 중심이 되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듭남을 요구하는 예수님에게 니고데모처럼 물어볼 수밖에 없지요! 요한복음 3 4,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어머니 태()속으로 들어갔다 나와야 거듭남이다? 상당히 과학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 역시 과학적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에게 그렇게 묻겠지요!


천국은 아이들이 중심이라는데 우리가 어찌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어머니의 태로 들어가서 다시 아이로 시작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에덴동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첫 사람 아담부부가 불순종으로 추방당하지 않았다면 에덴에 천국에 내려왔던지 에덴이 천국화, 지상의 파라다이스가 되었겠지요. 그러나 지금 에덴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에덴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에덴은 어린이들만 사는데 아담과 하와가 어른의 자의식이 되었기에 에덴에 적합하지 못해 추방당하고 말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담은 몇 살로 창조되었을까요? 누구나 태어나면 한 살! 아담이 1살 아기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아기로 태어난 아담은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아담은 창조 직후, 성년의 신체적 능력과 언어능력, 시각능력, 지각능력을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동물을 보고 그들 특징에 맞는 이름을 지었으며, 동물 분류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인류사에 유일하게 어린시절이 없던 아담부부! 노아가 500세에도 출산할 정도였으니( 5:32) 나이 연대표가 지금과는 달라요! 학자들은 대략 70, 요즘 나이로는 20~30세 정도로 봅니다. 그럼에도 그 나이는 신체적 기능과는 달리 어린아이 동심입니다. 25절이 근거입니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집에서 누가 벌거벗고 삽니까? 아기들밖에 없습니다. 벌거벗고 살아도 야하지 않고 무식하지 않고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악의 개념이 없기에 순수함 그 자체입니다.

작은 꼬마가 동네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형하고 나하고 누가 형이에요?” “네 형이 형이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입니다.

 

아담부부는 육체는 20 30세이지만 마음은 2,3세 정도의 순진무구한 아이들입니다. ()을 모르고 남자의 명예욕이나 여인의 시기와 질투가 없습니다. 아담이 늦게 들어올 때마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를 헤아려 보거나(어디 다른 곳에 또 하나의 여인을 창조해 놓았을까봐)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담부부는 어떤 경우에도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워하다. 몰상식한 일을 당해 수치심에 빠지거나 비상적인 상황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모두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성화되어 있었으며 온 인격이 하나님께로만 집중되었기에 어떤 수치심도 틈탈 겨를이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담부부는 생명과를 따먹었습니다! 생명과를 주시고 그새 한 번도 따먹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입니다. 당연히 따먹었겠지요. 생명과 자체가 영생은 아니었으니까!

에덴에서는 부부간의 성적 관계는 하지 않았을 거라, 추론해 봅니다. 신체는 컸지만 정신적으로는 순수했기에 성기(性器)가 대소변을 해결하는 용도로 알았지 자녀 생산의 용도요 남녀 간의 즐거움의 용도라는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에 대해 가르쳐 준 사람이 없고 보여준 바가 없습니다. 사랑은 고백했지만 남매지간에 성적욕구가 없는 것처럼 에덴의 부부는 다정하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말이 부부이지 정서적인 감정은 오누이입니다. 신체도 그런 정도입니다. 그러니 서로간의 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죄에 대해 순진무구한 아담부부가 에덴의 중심입니다. 오만가지 욕심으로 차 있는 어른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중심이 아니라 성()을 가졌지만 성()의 용도조차 사용할 줄 모르는 그 순진무구함이 에덴의 아담하와입니다. 그러기에 에덴의 천국은 순수함으로 충만합니다.

 

그런데, 아담부부는 불순종으로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17, 선악과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지혜가 아니라 악에게 유혹 당하고 끌리고 죄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순수했던 동심 아담부부에게 어린이성이 제거되고 어른성품이 들어옵니다. 그들은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3장입니다.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8,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10,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여기서부터 부부간에 핑계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나옵니다.

11,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인간은 벌거벗은 신체가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짐승들, 암컷들이 아담의 성기를 바라보는 눈길, 수컷 짐승들이 하와의 성기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짐승들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데 지례 그들이 위협을 느낍니다.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12,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누구의 책임? 장인 장모 책임? 하나님 책임! 내 뼈요 살이라던 사랑의 고백이 여자

 

하와:13,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순수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린이의 깨끗함을 상실한 이런 사람들은 에덴동산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쫓아내야 합니다.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사람은 물론 아담 관리 하에 있던 피조물도 다 추방당합니다. 지금 에덴에는 누가 있을까요? 사람이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천사들만이 하늘나라를 만들어 거닐고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어른들은 어떤 상태입니까?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죄에 오염된 어른입니다. 에덴동산의 천진한 어린이가 삭제된 어른, 순수한 동심이 사라진 어른, 부부로 살면서도 오누이처럼 수치와 부끄러움이 없었던 그 정결함이 제거되어 버린, 추방된 어른들, 그 어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불순한 마음으로 하늘나라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공동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천국은 절대 그런 불순한 곳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덴에 회귀하려면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가진 자들만이 갈 수 있다!”

 

누가 순수함을 갖춘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대할 때 바로 에덴에서 타락하기 전의 아담처럼 순수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빌립, 요한복음 1:45~,

 

빌립: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 “와서 보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말합니다.

 

47,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메시지> 성경은 거짓된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해석합니다.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참 천국 백성이 누구인가?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카레트. 히브리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입니다. 카레트는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단어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파문은 최악의 불행이자 형벌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의 파문은 수치요,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에서 떨어지는 것이 큰 불행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카레트, 그것은 벌 중의 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유대인들은 죄인이라고 합니다. 세리는 민족의 정신을 팔아 카레트가 되고 창기들은 육신의 정조를 팔아,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 카레트가 됩니다.

 

유대인에게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죄악(罪惡) 36가지입니다.  36가지 악을 총칭하는 것이 카레트입니다. 36개의 카레트 목록 중의 세 번째가 간사함, 교활입니다.

 

하와가 이 교활한 존재에게 넘어가 어린아이의 순수함 성적 순수함을 삭제당합니다.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간교하니라. ‘영리하고 신중한 것’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것’, 이중성입니다. 뱀은 영특하게 피조되었으나 사단의 도구가 되자 사악한 지혜로 변질되고 맙니다. 뱀이 얼마나 간사해요?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직접 듣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말씀을 들은 하와를 공략합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남들을 꾀고 타락하게 만드는 뱀, 세상은 이것을 능력이라 실력이라 때로는 스펙이라 하여 이런 것들로 이력서들을 채워놓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카레트-간사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지배권, 기득권, 종교권에는 온갖 카레트, 간사함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선민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것이라 합니다. 그건 제자들도 같은 부류입니다.

 

예수님께서 청년 나다나엘을 볼 때, 간사(奸詐)함이 없는 사람! 교활이라는 독한 카레트를 적출해 낸 사람으로 봅니다. 카레트를 적출하자 욕망은 엷어지고 탐욕의 중량은 한없이 가벼워진 맑고 투명한 인격을 지참한 사람, 나다나엘!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한 청년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태어나면서 간사함, 카레트가 없는 사람입니까? 참 이스라엘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에게도 어른들의 간사함-탐욕, 자기 의(), 불평, 경쟁심 등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적출합니다.

사람은 처음에는 모두 원석(原石)입니다. 처음부터 세련된 보석은 없습니다. 불순물 찌끼들이 붙어있다 보니 투명하지 않고 불순합니다. 어린이에게서 어른들로 점점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갈수록 순수함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최인호는 수필집 <산중일기>에서 인간의 불행은 완전한 어린아이에서 불완전한 어른으로 뒷걸음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많이 때가 묻고 오염되고 카레트-간사함으로 채워집니다.

 

신앙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자기 자신을 성찰함으로 내 안에 있는 탐욕과 명예욕, 이기심으로 가득 찬 어른의 불순함을 적출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자기 성찰이, 내가 잘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장기이식을 위해 심장을 적출하고 간을 적출하는 것처럼 내가 그것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그 불순물들을 적출하고 암()을 떼어내듯 떼어내고 간사함이 없는 사람들로 성화되어 가야 합니다. 내 안에 어떤 불투명함이 있고 이기심이 도사리고 불평-불만-불안-불순물들이 있는가, 살펴서 그 간사함 카레트를 떼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앎에서 나오는 것이 삶에서 나옵니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기형도 시인은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시()에서 성경에 밑줄을 긋지 말고 생활에 밑줄을 그라고 요청합니다. 하기사, 성경에도 밑줄 그을 시간이 없는 교인들! 생활에 밑줄을 긋는 자기 성찰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다보니 간사한 뱀이 민물에 몇 번 들어갔다 나왔다고 매끈매끈한 장어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주일을 자녀들 신앙만을 돌아보는 주일이 아니라 간사함을 없애고 어린이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나의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에덴동산의 대지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개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가격과 인격의 가치입니다.

땅의 것들은 가격을 말합니다. 토지, 짐승 뿔이 가격이 되고 몸뚱이가 가격이 됩니다, 사람은 가격이 아닙니다. 그의 가격이 얼마냐? 가격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가격이 아니라 인격으로 따집니다. 가격은 물건 값이고 인격은 사람값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20세가 넘은 성인으로 창조되었지만 어린이의 순수함을 견지했어야 하는데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하나님과 동등한 값을 하려다 동물 값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그리해서 지금도 인격을 동물 가격으로 매깁니다. 얼마 버냐? 몇 살이냐? 교회 직분은 뭐냐? 그러다보니 지금 시대는 인격의 불황입니다. 

 

인격의 불황!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고 무서운 시대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인격으로 나가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신격으로 영생해야 하는데 지금 인간 스스로가 인격을 자꾸 할인해 버립니다. 신앙 인격을 스스로 할인해 버립니다. 교회직분을 우리 스스로 할인해 버립니다.

 

그 마음에 간사함-카레트로 채울수록 성공하는 시대에 방송작가 민봄내는 말합니다.

 

시한부 생명보다 무서운 것, 그것은 시한부 인격이다

 

시한부 인격! 우리 인격에 시한부가 선고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아이의 마음-동심-천심을 회복해서 죽어가던 인격들을 살려야 합니다. 간사함들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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