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아브라함의 동심영성, 하나님과 벗이 되다(창세기 13:14~1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3.
반응형
품절. 중고서적에서

 

 
 

 

아브라함의 동심영성, 하나님과 벗이 되다

창세기 13장 14~18절 

서론

영성시리즈 설교, 오늘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영성은 동심의 영성입니다. 동심(童心)은 아이동() 마음심() 어린아이 마음입니다. 순수하고 순진하고 맑고 수용성으로 쉽게 잘 믿고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동심입니다. 이런 동심이 영성과 합쳐지면 1급수 호수처럼 믿음이 참 맑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동심 영성입니다. 동심이 곧 천심(天心)이고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동심 속에 당신의 형상을 심어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이외로 평범합니다. 남에게 교훈을 전하거나 기적을 행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없습니다. 신앙 면에서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아저씨 아브라함!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모세에게도 한 적이 없는 호칭! ‘나의 벗이라 부릅니다.

 

이사야 41:8,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야고보서 2:23,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하나님께서 이라 부른 사람은 성경 안팎으로 아브라함 밖에 없습니다. 벗은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親舊)입니다. 한자 벗 우(‘’)는 왼손을 나타내는 ’(글이 없어서)와 오른손을 나타내는 자를 어우른 글자로, 손을 마주잡고 도우며 친하게 지낸다는 뜻입니다. 허물없이 친하게 사귀고, 서먹서먹한 높임말을 쓰지 아니하고 터놓고 정답게 지내는 사이가 벗입니다.

 

하나님과 벗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과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비밀을 공유한 사이! 대단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가 사실 그래요~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숨길게 있겠냐! 친구인데! 벗인데!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향한 불 심판의 비밀을 미리 털어놓고 공유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비밀공유는 굉장한 우정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벗입니다. 깊은 우정을 나누는 벗은 오래도록 생활을 함께 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비밀을 공유합니다. 좋은 벗이 되려면 성향, 성격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성품이 맞았습니다. 그게 동심입니다. 원래 두 존재 사이는 벗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존재, 아브라함은 육체입니다. 우정이 성립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은 천년, 거북이는 만년 장수동물입니다. 고급 식재료로 유명한 랍스터는 노화하지 않는 염색체를 지닙니다. 생물학자들은 랍스터는 장수동물이 아니라 영생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하루살이와 학()이 놀다 헤어지면서 학이 내일 만나!” 인사합니다. 수명이 비슷하면 그래, 내일 만나서 놀자~” 했겠지요. 하루살이는 내일 만나자는 학에게 되묻지요! 내일이 뭔데?

 

왜 이런 문답이 있나요? 존재양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학과 하루살이는 오랜 우정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와 천년학 사이에 우정을 나눌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정은 속성, 성품, 성격, 인생관이 비슷해야 오래가고 부부도 친구처럼 살 수 있습니다. 부부는 세월을 함께 하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됩니다. 그래서 벗 중의 제일은 아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라도 성격이 다르면 어떻게 될까요? 각자 딴 곳을 쳐다보면서 남남처럼 삽니다. 연예인들의 이혼 사유가 성격이 맞지 않아서 벗이 될 수 없어 헤어진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인간을 창조하시며 당신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DNA속성을 심어주셨어요! 하나님에게 있는 속성의 일부를 사람에게 넣어주셨다는 거예요! 거룩 지식 지혜 사랑 공의 진실 선() 주권 등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문명을 발전시키고 도덕심이 있고 시스템을 만들고 창조성이 있고 통치능력이 있는 거예요

 

이제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는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 선자(選者)와 선민, 주인과 종, 임금과 신하, 장수와 병졸, 아버지와 아들, 심지어는 부부관계로까지 당신을 낮추시고 교제하십니다.

 

그러나 교제는 있어도 벗() 관계는 아니에요! 누구에게도, 나는 벗이다, 친구다 하지 않았어요! 오직 아브라함에게만 너는 내 친구다! 하셨어요! 하나님의 어떤 성품과 아브라함의 어떤 성품이 상당히 흡사한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점, 바로 동심을 좋아하셨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흠이 많습니다. 살다 힘들어 애굽으로 피신 가고 거짓말이 필요하면 거짓말을 합니다. 목숨 부지를 위해 아내도 버리려 합니다. 여종에게서 아들도 얻습니다. 부인 성화에 여종의 아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추방합니다. 믿음이 더딥니다. 지시하는 땅으로 가면서도 갈지자걸음을 합니다. 하나님과 벗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세상과 벗하고 인간적 계산과 벗하고 왕을 벗 삼아 곤경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 상징물이 롯입니다.

롯은 벗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비를 떠나지 못해 하란에 15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에서 좋은 땅을 주어 떠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처럼 생각했던 롯의 행동에서 상처를 받고 여호와의 동산 같던 요단 지역-소돔과 고모라를 놓치고 낙심합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났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마음대로 애굽으로 피신했던 12:10~13:13까지는 하나님의 동행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음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으셨습니다. 벗이 아닙니다.

 

롯을 떠나보내니까13:14, 하나님께서 다시 등장하시고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으며 여호와와 동행합니다(18). 그렇다고 그날부터 아브라함의 영성이 하나님의 벗이라고 할만큼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후에도 본부인 아들만이 언약의 계승자라 했음에도 여종에게서 자식을 낳습니다.

 

하나님과 친구는커녕 훌륭한 인품을 보인 에녹, 노아, 보아스와 우정을 나눌만한 인격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철없게 행동한 아브라함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벗으로 칭함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던 동심의 믿음, 어린아이 같은 순수성 그 부분이 하나님에게 마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죄가 있음에도 그 안의 동심영성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부분 속성에서 전체속성에 합당한 아브라함으로 평생에 걸쳐 작업하십니다. 당신의 성품을 아브라함에게 내리시고 아브라함의 성품은 하나님께로 끌어올리시는 상향화를 통해 결국은 친구의 지경까지 올리셔서 벗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 날을 계속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회개, 언약에 대한 기다림 이것이 아브라함 안의 영성을 날마다 씻어내고 맑히면서 평범한 삶에 일급수 영성으로 자꾸 맑아지게 했습니다. 영성에 걸림돌이 되는 롯을 떼어냅니다. 유일한 혈육인데 거룩한 영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떼어 내신 것입니다.

어디까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개인적으로 사용하려고 챙겨둔 것을 드렸다! 따로 남겨두었던 것을 드렸다! 그 말입니다. 그걸 드리는 마음은 하나님의 영성과 같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섭리를 알고 얼마나 맑은 영성이면 그걸 알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 비로소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구나! 너는 나의 진정한 친구다! 그런 인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야 네 믿음을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우정관계를 확인시킨 것입니다.

너는 내 친구다! 내가 너를 피조물로 대하지 않고 친구로 우정을 쌓고 있음을 이제 알았지? 우리가 서로 친구 됨을 이제 알았지? 우리는 친구야!”

 

그러나 아브라함은 끝날 까지 인간의 약함을 드러냅니다. 부끄러운 처신을 종종해요! 대표적인 행동이 사랑하는 부인이 죽고 슬퍼하더니 다른 여자를 얻어 6명의 자식들을 줄줄이 낳습니다.

 

25:1, 2,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40세 되던 때에 결혼했으니 140세 이상! 이런 노인이 결혼하다니 이삭이 볼 때 어때요? 내 자식보다 어린 동생이 나오게 되었어요. 그것도 여섯이나. 이거 추태 아닌가요? 훗날 민족의 조상, 믿음의 조상으로도 참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부끄럽다하고 며느리 리브가가 자기보다 조금 나이 많은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을 때 시아버지를 망령 났다 부끄러워서 얼굴 내밀고 다닐 수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올 때도 꼭 그 앞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으로 성경에 16회나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지 정작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아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건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늘빛교회 교인이다, 뉴스에 나면 늘빛교회 목사로 일컬음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제가 크게 실수해서 세상비난이 될 때 늘빛교회 교인으로 일컬음 받음이 크게 부끄러운 일이지요!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행동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영성을 보십니다. 사람들의 평판보다는 어떤 영성인가를 봅니다. 

 

아브라함은 가라면 아기처럼 한 길로 가고 야단치면 그냥 듣습니다. 그런 동심이 하나님의 눈에는 당신의 속성과 너무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벗이라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의 친구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연일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만 해도 청소년 선교단체 대표가 과거의 부도덕한 일로 언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무인가신학교 1년 경력의 장애인 목사가 가난과 장애라는 이중고()에도 굴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했다며 교계, 기업체 등에서 희망 전도사로 활동하다 서울대대학원 졸업, 공무원경력이 가짜로 들통 나서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수치감을 주었습니다. 그전에도 목사가 권총살인, 칼부림사건, 재벌장로의 군납비리사건 장로교수가 제자에게 인분 먹이게 한 일 수치스러운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남들 비난할 겨를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역시 잘못된 언행으로, 저게 목사냐? 저 사람 장로 맞아? 집사가 저러니 교회라는 곳이 알만하네 주변이웃들에게 내가 욕을 먹으면 한국교회가 욕을 먹고 한국교회가 욕을 먹으면 그 욕이 하나님에게로 갑니다.

 

우리가 욕먹을 때마다 하나님도 참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교인이랍시고 직분이라 하면서도 잘못된 처신으로 내가 욕을 먹는다! 참 부끄럽다! 너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이 참 부끄럽다! 우리 생각에는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안 그러세요!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1:16)

 

일반인들이 들으면 (미안하지만) 하나님 미쳤어요! 제 정신이 아니에요! 그게 어디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요? 왜 잘못된 그들의 하나님으로 자처하시나요? 그게 하나님의 속성, 측은지심입니다. 너희는 잘나도 내 백성! 못나도 내 백성이니 너희들의 하나님으로 부끄러움 받으심을 개의치 않겠다는 거예요! ? 너희들은 아직 철이 없을 뿐이지 하나님의 눈에는 아까운 존재라는 겁니다.

아들이 두 살인데 마트에서 뭘 훔쳤다 가정해 보세요! 아들이 잘못은 했지만 아들의 아빠로 부끄러운가요? 두 살짜리가 뭘 알아서 훔쳤겠어요? 아이를 훈계하고 주인에게 사과하지만 아들의 아빠라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그게 아브라함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측은지심입니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지금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다 실수했다 해서 너무 쫄지 말아요! 제대로 못 믿는다 해서 쫄지 말아요!

 

그리고요, 오히려 하나님을 부끄럽게 한 일로, 부끄러운 행동으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리라 하신 그 언약은 오히려 이삭과 리브가에게 부끄럽게 보이는 아브라함의 그 행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형들의 구덩이에서 요셉을 애굽으로 데리고 간 자는 미디안부족, 아브라함 후처 자손들입니다.

 

 37:28 “그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아브라함은 동심의 영성으로 이런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하나님! 나타날 때 마다 꼭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죄송하고 송구스럽고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러기에 더 하나님께 매달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으로서 하나님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결과는, 생애 졸업식에 하나님의 벗이라는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네가 잘못은 많이 하지만 네 하나님 됨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믿음에 서툴러도 제대로 살지 못해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좋아하고 동행하는 동심 영성에 하나님도 좋아서 계속 동행하다보니 서로 트고 사는 사이가 되고 벗의 지경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 위대한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결론

영성설교에서 어떤 영성을 기대했나요? 스데반처럼 죽어가면서 예수님 마음으로 용서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던 굉장한 영성을 기대했나요? 아브라함의 영성은 평범한 생활영성입니다. 내가 실패하고 하나님 망신을 시켰어도 넘어진 내게 손을 내미시는 분입니다.

 

너는 내 친구다! 우리가 서로 친구됨을 이제 알았지? 죄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의 벗이 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게

 

이게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십자가로 구원 받은 우리들! 하나님은 친구라 하십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죄인입니다. 예수 믿는 지금도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아시고 손을 내밀며 친구하자, 하십니다. 조금도 네 친구가 됨을 부끄럽지 않다 하십니다. 남들 같지 않는 그 하나님과 우정을 쌓으며 살아가는 동심의 영성가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