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압살롬 잡아야 영성의 길 간다!
사무엘하 14장 25~27절
서론
저는 여름이 되면 시리즈설교를 해왔습니다. ‘신수성가’ 요셉이야기, ‘신수성화’ 야곱이야기, ‘신수성의’ 욥이야기… 등은 여름시리즈 설교가 낳은 명(名)설교는 아니어도 기억에 남을 설교입니다. 그래서 매년마다 이번 여름에는 어떤 설교를 할까, 일찍부터 고민하며 준비합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 주제는 “다시 초대교회의 영성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영성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입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영성, 기도영성, 찬양영성, 친교영성, 성찬영성, 나눔의 영성⋯으로 채워진 교회요 완전한 교회모형에 가장 근접했던 교회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교회이건 간에 초대교회에 대해 고향과 같은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다시 초대교회 영성으로! 영성은 무엇일까요? 영성은 거듭난 사람에게 들어오는 하나님의 거룩성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거듭날 때 위로부터 오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적성질, 이게 영성입니다. 그래서 영성이 깊을수록, 많을수록 하나님께 예민하게 거룩하게 반응합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영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겼습니다.
거울이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영성을 잃었습니다. 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다보니 내면을 가꾸는 일에 소홀하게 되었고 영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텔레비전이 발명되면서 영성은 변질됩니다. 텔레비전은 영성을 돕는 부분보다는 영성을 흐리게 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점이 많습니다.
인터넷이 발명되면서 영성은 죄성에 오염됩니다. 인터넷의 죄성은 천사나 하늘나라를 동경하던 교회 아이들마저 인터넷에 부유(浮遊)하는 거짓 바이러스에 오염되게 만듭니다.
핸드폰이 발명되면서 영성은 성장을 멈춥니다. 핸드폰의 수많은 문자들, 볼거리 읽을거리들로 영성에 내줄 시간이 없고 영성을 성장시킬 담금질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도 깊이 담금질하고 찬양도 담금질이 필요한데 가톡~ 카톡~ 깊은 담금질이 없으니 성경은 지식이 되고 찬양은 감정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바쁘다 바빠’ 가 영성의 제1호 적(敵)이 됩니다.
이 여름에 영성의 인물들을 살펴봅니다. 그들이 영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존하고 확장시켜 나갔는가⋯, 이번 여름시리즈를 통해 내 영성이 맑아지고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 생활에서 영성이 흘러나오며, 일터에서 영성을 보이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번 타자가 다윗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참 아름다웠던 청년 압살롬에게서는 본받을 ‘벤치마킹’의 영성이 아니라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의 어두운 영성을 봅니다. 영성이 잘못 될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추한 모습, 실패하는 생애가 되는가를 압살롬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압살롬! 죽일 놈! 못살 놈이 내 안에 ‘요놈’으로 살고 있음을 찾아내야 합니다.
1. 압살롬-위장된 영성
압살롬은 다윗의 3남(男), 셋째아들입니다. 성경에서 사울 다윗 요셉과 함께 4대 미남입니다. 사무엘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완벽한 체형이라 합니다. 머리부터 봅시다.
26절,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머리털이 무겁다는 것은 머리숱이 많고 빨리 자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머리털은 힘과 아름다움(美)의 상징이며, 신속하게 자란다는 것은 힘의 왕성함을 뜻합니다.
26절, “⋯연말마다 깎았으며⋯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이스라엘 남성의 머리털이 1년 내내 자랄 수 있는 평균 무게가 약 500g이었는데 압살롬은 이백 세겔, 약 2.3kg입니다. 1kg이 1,000g이니 압살롬의 머리카락의 무게는 2,300g입니다. 그러니 보통사람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머리카락만으로도 사람들의 눈에 매력만점입니다. 요즘이라면 샴푸회사 모델로 나와도 평생 먹고 삽니다. 머리카락만 그랬나요?
25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이거야말로 100% 완벽한 조각 미남이요, 꽃미남입니다.
25절,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이스라엘 남녀들은 이목구비가 수려합니다. 이스라엘 남녀 중에서도 ‘크게’ 칭찬을 받은 왕자입니다. 암논, 길르압을 잇는 왕위계승자 3위였습니다. 얼마나 조건이 좋습니까?
압살롬의 매력이 영화배우 장동건 이상입니다. 압살롬의 매력이 머리카락이라면 장동건의 매력은 눈썹입니다. 압살롬은 장동건의 외모에다+왕자님. 최고의 조건입니다. 여기다 최고의 영성 대가 아버지 다윗에게서 좋은 영성까지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호조건입니까? 얼마든지 성공적인 생애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영성 제로입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영성이 없어요. 성경에 압살롬이 등장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기도했거나 하나님에 대한 비전을 품었거나, 신앙적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몸뚱이만 화려한, 요즘 말로 얼짱, 몸짱입니다. 성경은 ‘얼짱의 우상화’를 경고합니다. 외모지상주의는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위험성 때문입니다.
한국에 미인대회가 2백 개가 넘습니다. 그만큼 한국여성들은 미인(美人)을 꿈꿉니다. 한국적 미인이 되려면 키 175cm, 몸무게 45kg, 사이즈가 34-24-34, 일반인들은 꿈속에서도 불가능한 몸매입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미인 측에 끼려는 시도가 성형수술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아름다움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당신이 거하시는 성막은 최고 장인(匠人)들이 만들어 낸 화려하고도 우아한 예술작품입니다. 예루살렘성전도 최고의 아름다움을 갖춥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아름다움입니다.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만큼 내적 아름다움,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면의 진실이 없이 얼굴만 가꾸려는 얼짱 우상화는 사람의 몸을 단지 ‘볼거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지금 그리스도인들조차 외모치장에만 몰두한 채 쥐꼬리영성으로 버티다보니 신앙성장이 안 됩니다. 이런 압살롬이 번듯한 외모로 위장한 채 내 안에 있는 압살롬, 죽일 놈 ‘요놈’입니다.
2. 압살롬-뒤틀린 영성
압살롬은 뒤틀린 불만의 영성입니다. 항상 삐딱 왕자입니다. 언제부터 뒤틀린 삐딱 영성이 되었을까요? 복잡한 집안 구성원에서 비롯되었겠지요. 아버지는 인기남(男)입니다. 일국의 왕이지 얼굴 잘 생겼지 예술성 있지 전쟁 잘하지, 부인이 10명 이상, 자녀들도 20명이 넘습니다. 밧세바가 왕비그룹에 들어오면서 왕위계승문제로 콩가루 집안입니다. 왕비들의 시기와 질투, 암투 속에서 압살롬의 영성은 뒤틀려집니다.
여기에다 동복누이 다말이 이복형 암논에게 강제추행 당하면서 완전 삐딱 선을 탑니다.
13:20,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처량하게 지내니라⋯. ‘황폐한’, ‘다 망가진’이란 뜻입니다. 폐인(廢人)이 되어가는 다말의 비참한 삶을 보여줍니다. 성경이 다말을 ‘다윗의 딸’이라 하지 않고 ‘압살롬의 누이 다말’이라 표현할 만큼 다말은 압살롬에게 누이 이상입니다. 부부의 인연은 아니어도 아름다운 누이를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오라비였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누이 다말은 폐인이 되어갑니다.
13: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소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참을 수 없는 한(恨)과 억울함을 나타내는 히브리 어법입니다. 이런 누이 모습을 바라보는 압살롬의 영성이 거룩한 예배의 영성이 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뒤틀린 어두운 영성입니다.
더군다나 압살롬을 분노하게 한 것은 암몬과 다말을 대하는 아버지 왕의 태도입니다.
13: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아버지 왕은 암논의 범죄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기만 했을 뿐 율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지 않았습니다(레 20:17).
왜 그랬을까요?
-암논이 장자였기에 처단할 수 없었다?(70인역)
-다윗 왕 자신이 불륜을 지은 자로(11:4) 아들을 심판할 자격을 상실했다?(Wycliffe)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약한 마음 때문에?(Lange, Keil).
이상에 비추어 볼 때 다윗은 좋은 왕이기는 했지만 공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우유부단한 처신에 압살롬은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그러나 멋진 외모 속에 숨깁니다.
13:20,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암논에게 복수할 기회가 올 때까지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암논과 절연한 채 2년 동안 기회를 노린 점으로 보아 압살롬의 분노, 복수심이 대단했습니다.
22절,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말하지 아니하니라”
압살롬은 잔인한 복수극을 계획합니다. 아름다운 외모 속에 추악함이 자라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외모 속에 숨어있는 뒤틀린 영성의 독버섯입니다.
외모가 아름다웠던 사람 압살롬, 뒤틀린 영성은 뒤틀린 행동을 낳습니다. 2년 후에, 양털 깎는 날을 D-day로 삼고 기다리다 암논을 쳐 죽입니다.
28절, 부하들에게 “내가 말하거든 암논을 쳐서… 죽여라”
“쳐서”라는 동사 의미는 ‘맨주먹으로 두들겨 패다’, 결국 암논은 칼
에 찔리고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다 죽습니다. 압살롬의 증오를 봅니다.
압살롬의 뒤틀린 영성은 끝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반역을 일으키고 아버지 후궁 10명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농락함으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불효자가 됩니다. 불행이지요!
교회 안에 압살롬이 살고 있습니다. 내면의 쓴뿌리를 처리하지 못하면 겉으로는 멀쩡한 채 목사가 되고 장로도 권사도 됩니다. 그러나 곪아 뒤틀려 있는 영성은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숨죽이고 있는 압살롬의 뒤틀린 영성, ‘요놈’ ‘죽일놈’입니다. 이걸 내가 찾아내서 없애야 건강하고 깨끗한 영성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3. 압살롬-거짓된 영성
압살롬은 누구나 넘볼 수 없는 탁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름다운 생애가 아니라 분노하고 뒤틀리고 병든 내면입니다. 압살롬은 왕이 되려는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에 눈이 먼 사람입니다. 순전히 자기 능력이 탁월해지는 것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도 거짓말도 부모에 대한 효도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러면서도 겸손과 정의로움으로 포장하는 거짓 영성가입니다.
15장 3절, 사람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합니다.
4절, 자신만이 공명정대한 재판관으로 자처합니다.
5절, 가룟 유다처럼 거짓 입맞춤으로 비위를 맞춥니다. 결국⋯
6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훔치니라’, 마음도둑질입니다. 백성에게 관심을 보이고(2절),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3절), 약자를 동정하고(4절), 애정을 보이는 척 합니다(5절). 사람들은 그가 정의롭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왕자로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분별력을 잃어 그가 영성가인 줄로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그 행위를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하였다’, 거짓영성이라 폭로합니다. 백성들을 기만하는 술책으로 인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거짓 영성이 낳은 거짓 인기를 폭로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성공 위주의 왜곡된 비전과 왜곡된 성취를 위해 왜곡된 방법을 총동원하며 살아간 거짓 영성가입니다. 압살롬은 평생 영성에 대해, 믿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조국에 대해, 형제 사랑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왕이 된다는, 자기 성취에 빠져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내 모습 아닐까요? 성공과 출세만을 위해, 신분상승에만 매달려 살아오느라 내면의 영성은 돌보지 못해 영성은 뒤틀려지고 성인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요? 거짓된 영성으로 남의 마음을 훔치고 달변으로 남의 마음을 훔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까? 우리도 너무 오랜 세월을 압살롬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압살롬 그 죽일 놈이 내 안에 ‘요놈’으로 있어 교회가 초대교회 영성을 보이지 못합니다. 초대교회 영성으로 돌아가려면 내 안의 위장된 영성, 뒤틀린 영성, 거짓된 영성을 벗어버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성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내 안의 압살롬 잡아야 영성의 길을 갑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양을 낼 수 있고 떠나간 민심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압살롬의 삶은 아버지와 대조적입니다. 두 사람 모두 탁월합니다. 압살롬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탁월했고 다윗은 하나님을 드러내는데 탁월했습니다. 압살롬은 냄새나는 거짓말로 사람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는데 탁월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윗과 압살롬은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치열했고 압살롬은 자기 성취를 위해 치열했습니다. 압살롬은 제 머리에 제 왕관을 씌우기 위해 치열했습니다. 왕이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도 언질도 비전도 없었음에도 스스로 비전을 세우고 열심을 내어 황제의 관을 자기 손으로 올려 쓴 사람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자기부인(否認)과 기다림을 보여준 영성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실 때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 하나님께서 왕관을 벗기신다면 언제라도 왕관을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을 줄 아는 겸손이 아버지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총명했던 청년 압살롬. 아버지에게 반역하여 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 왕관은 하나님께서 씌워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올려 쓴 것입니다. 왕관을 머리에 얹으려 많은 불법, 폭력, 인간적 수단들을 총동원했습니다. 결과는 자기 파멸입니다.
압살롬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아닌 사람이 세우는 비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자기 개척의 길, 하나님의 복주심이 아닌 내 수단으로 이루는 성취가 얼마나 허무한 삶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동생 솔로몬은 이복형의 말로를 보며 이런 시를 지었을까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127:1)
이번 여름에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압살롬을 찾아내십시오! 내면의 진실을 외면하고 외모만 치장하는 위장된 영성, 매사가 불만으로 가득 찬 뒤틀린 영성, 달콤한 거짓말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거짓된 영성! 그 놈이 바로 암살롬, 죽일놈 바로 ‘요놈’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내 생애가 종교의 길이 아니라 영성의 길, 십자가의 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여름에 맑고 순전한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내 마음을 교정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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