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장식의 기술
베드로전서 3장 3~6절
서론
워런 위어스비라는 미국 목사님이 헌 책방에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종교 란에서 종교서적을 고르고 있었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은 책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내부장식의 기술"(번역이 안 되었음)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인에게 책이 잘못 분류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건축서적란에 진열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주인은 웃으며 그건 제 자리에 잘 놓여져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상하다 생각하여 그 책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주인의 말처럼 그 책은 종교서적이 분명했습니다. 그것도 마음을 장식하는 기술, 신앙의 내부를 잘 장식하자는 훌륭한 신앙서적인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요. 우리의 신앙은 구원의 말씀과 교리로부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은사 중심이 되어 방언이나 병 고침이나 환상이나…. 이런 등등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칫 잘못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른 구원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나는 어떻게 구원받는가?"
"교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등등의 것들로 바른 기초를 세워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간디는 구원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위만을 흠모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존경은 했지만 경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2천년이 가까워 오면서 별의별 이단들이 유혹합니다. 이천 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거나 세상이 멸망당한다, 라는 말세론으로 다시 한번 교회가 발칵 뒤집힐 것입니다. 교리가 분명해야 참 성경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초기에 믿음의 기초를 잘 다져놓으면 그때부터 무엇을 힘써야 될 것인가? 바로 삶을 생각해야 하고 예수님과 같은 인격으로 다듬어지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내부장식을 하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안타까운 일이 종종 있는 데 교인들이 지나치게 개인의 종교 경험에 빠져들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심이 있는 나머지 뭔가를 들으려 하고 보려하고 기도생활을 통하여 신비한 현상들을 체험하려고 합니다. 그 순수한 동기는 이해가 갑니다만은 생활을 도외시하고 인격 함양에 힘쓰지 않은 나머지 신비적 체험에 매달리게 되면 오히려 그 믿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질병에 걸린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교리에서 시작되고 성경공부로 시작된 신앙생활은 삶에서 그 신앙이 자라나야 합니다. 삶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기도나 성경공부로만 계속 자라나려고 하면 그 믿음은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게 됩니다.
어떤 교리나 성경에 은혜를 받고 싶어하는 그 열심으로 삶을 통해서 배운 말씀을 적용시키며 살아가려 한다면 하나님은 내 삶을 인정하시며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믿음생활은 내부장식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성요소를 육신과 영혼으로 규정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만을 인정하기에 육신을 즐겁고 화려하게 하는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화장합니다. 화장술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합니다.
화장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 여인들이라고 합니다. 자기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천연두가 유행하던 중세에는 마마자국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진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화장술이 늘어날 수밖에요.
서커스단의 도화사들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화장을 합니다.
아프리카나 뉴기니 원주민들은 전쟁을 할 때 무섭게 보이려고 화장을 합니다.
화장을 왜 하는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왜 화장을 하지 않을까요? 마음은 볼 수가 없고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육신의 모양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영혼의 실재(實在)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영혼을 잘 보여야 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외모가 아름다워지는 것보다는 중심이 아름다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교회에 나올 때에는 할 수만 있으면 아름답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오십시오. 가장 좋은 옷으로 오십시오.
그보다는 영혼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장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평생 우리가 힘써야 할 영적 사업으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또 하나의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의 육신 속에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인격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육체는 변하며 썩고 죽기도 합니다. 이 육체는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실제의 나"는 내 영혼입니다. 우리는 바로 "실제의 나"를 단장하며 장식하는 기술을 획득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실제의 내가 아닌, 잠시 내가 빌려 입고있는 육신을 치장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그것은 썩어버리며 죽습니다.
병원에서 내 머리를 찍은 엑스레이를 찍은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보면 늘 그게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여성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영혼을 인정치 않은 이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해골 위에 화장하고 모양내고 멋 부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름답게 꾸며야 할 실제의 나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내적으로는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영혼은 있으나 그 영혼은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영혼이 죽었기에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영혼을 장식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은 영적인 세계와는 단절이 되어 있습니다.
내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되고 그분을 구원자로 마음속에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내적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모든 벽을 없애시고자 죄값, 즉 죽음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조를 용서받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내적 사람을 영적으로 살아있게 만드십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세상을 살게됩니다.
이것을 중생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우리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영생의 새 생명을 얻으면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내부장식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 사람을 개조해 나갑니다. 하나 하나씩 구습을 버리게 하고 새로운 습관, 행동들을 하게 합니다.
이처럼 영혼의 장식을 위해 성령님은 평생을 걸쳐 역사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내부를 장식하는 인테리어입니다. 영혼을 메이크업하시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외모에, 외양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도 겉모양만 번지르르 치장하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부장식에 더 신경 써야 하고 속 심령을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가 있고 목사가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여러분들은 목사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내부장식가로서의 목회자들을 원하지 않고 불의 사자, 능력의 사자라는 데에 매달려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수준이 유아기를 지나는 과정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해도 지금은 선교 1백년이 넘고 성년 한국교회가 되었기에 이제는 성숙을 위해 장식하며 단장하는 일에 관심들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2천 년대에 한국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내부장식가입니다.
연예인들은 메이크업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 자매 하나는 손톱 매니큐어 바르는 사람이 되겠다며 배우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영혼을 메이크업하는 사람은 원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는 생명, 생기가 없으셨습니다. 창조된 그 상태였습니다. 해와 달은 그 자리에 있었고 바다와 강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식물들은 정지된 상태였습니다.
성령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면서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창조된 세상을 가장 영화롭게 장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장식가입니다. 아브라함, 베드로, 바울 등을 장식하셨습니다. 그들은 한낱 거친 돌덩이에 불과했습니다. 바울 같은 이는 너무 매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을 거쳐 그들을 장식하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고 그리스도교의 초석을 이루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는 거친 사람입니다. 매력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고기가 잡히면 그 날은 기분이 좋았고 고기가 없으면 그날은 기분이 엉망이었습니다.
그가 제자가 되었습니다. 제자가 되었으나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실수투성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서 엄청난 이적을 행했습니다.
그의 훌륭함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그의 내부에서 아름답게 활동하셨습니다.
그는 말에 조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에 임하는 그는 제일 마지막에 자기의 입장을 말하리만큼 조심스럽고 침착했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그는 내부장식을 잘하는 교인들이 되라고 합니다. 어는새 가정사역자가 되어있습니다. 그의 내부가 장식이 잘 된 것입니다.
이 일을 누가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외부만 아니라 내부를 장식하시며 아름다운 생애를 살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손에 휘어지고 자신을 맡긴 사람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영혼으로 빛났습니다.
3. 내부를 장식하는 해가 됩시다.
집을 건축하신 분들은 외부보다 내부가 얼마나 더 중요한가를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외부가 잘 꾸며졌다 할지라도 내부장식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집은 가치가 없습니다.
내부를 장식하는 것은 더 값진 것으로 고급으로 잘 꾸밉니다. 내부에 더 신경을 쓰고 장식을 합니다. 그러면 값진 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외부적인 단장은 끝냈습니다. 세례를 받았고 교회 안에서 직분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내부를 장식합시다.
1) 속 사람을 강하게 합시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성경을 써서 보내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바울은 속 사람, "실제의 나"인 속 사람이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적 시대는 우리들에게 강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쳐 있습니다.
남자들이 강해야 합니다. 아울러 여자분들이 더욱 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남편들을 격려하고 남편들의 걱정을 덜어줄만큼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 속사람이 부드러운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무어라고 합니까?
3절. "너희 단장은…."
마음에 숨은 사람- 속 사람, "실제의 나"를 온유하게 장식하라고 합니다.
온유는 부드러움입니다. 이해심입니다. 관대함입니다. 따뜻함입니다.
온유함은 "거친 질문에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거칠게 구는 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성녀라고 하는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하나님의 몽당연필"이라고 했습니다.
몽당연필. 그녀의 외모는 영국의 왕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에 비하면 초라한 육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아이의 얼굴처럼 밝았습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어떻게 젊음을 간직할 수 있는가?"
그때 테레사는 대답했습니다.
"어떤 때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기분은 미용사보다 더 기술이 좋답니다."
강함과 부드러움. 우리가 내부의 사람을 두 마음으로 장식할 때 우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화장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화장을 합니다. 학벌, 가문, 지역, 돈, 명예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화장의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것으로 자기의 본성을 가리고 남 앞에 멋진 삶으로 보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화장은 지워집니다. 죽음 앞에서 지워집니다. 죽음 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해도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 철저히 지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분위기에 푹 젖어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종교적인 행위에 익숙했습니다. 그들은 교리에 정통했습니다. 율법이라면 빠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자"
그 말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세리들은 겉모양은 형편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내부장식을 시작하려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빈 쿡은 그의 소설 "감염체"에서 병원에서 감염된 질병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오히려 교회 안에서 질병을 퍼트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내부를 잘 장식하여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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