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할 일
마태복음 28:16-20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여 일을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 분은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이를 지상명령이라 합니다. 지상명령은 19절,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 명령은 목회자나, 직분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이런 명령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복을 얻을 것이다!"
"건강할 것이다!"
"부자가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라면 사람들은 기를 쓰고 따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전파는 다른 사람을 위한 구원이기에 사람들은 내 구원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그 어떤 것에 못지않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1. 입으로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일차적인 수단은 입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고 의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전해주지 않으면 환자는 못 듣고 몰라서 죽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은 전 세계를 향해 생 중계방송을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조용히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을 전달하는 길은 말이 최우선입니다. 입을 통해 전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들을 때 깨달음이 오고 믿음이 생겨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선전원이 된 것입니다.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주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그래서 그분은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가 되면 얼마나 지지자를 선전합니까? 그 사람이 좋다, 그 사람이 가장 유능하다, 우리나라를 융성케 할 것이다, 확실한 선택이다… 이런 등등의 것들을 열을 올려가며, 내 돈 들여가며 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이런 열정이 없을까요? 주님을 전하는 일에 왜 열의가 없을까요?
주님을 전하는 일에 왜 열의가 없을까요?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세상, 구원, 영생을 전해야 합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주님을 우리들에게 입을 주신 것입니다.
혁명가이며 소련 연방을 창시한 트로츠키가 청년 시절, 시베리아 강제노동 캠프를 탈출해서 뉴욕에 와 기자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기독교만이 인류의 구원과 희망이라고 말하는 미국인들이지만 내가 뉴욕이 4년을 있는 동안 교회 나가자고 권면하거나 기독교의 내용을 설명하는 자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기독교의 천국사상을 믿지 않거나 자신이 없다는 증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초대교회 시절의 기독교인을 관찰한 요셉프스는 "기독교인은 전체가 기독교의 선전원이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신바람 건강법'으로 제2의 이상구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황수관 박사는 그야말로 `전도사'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태신앙입니다.
그의 할아버지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과거를 보러 한양 갔다가 외국선교사를 만나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아버지가 물으셨습니다.
"과거는 잘 보았느냐?"
"천국 과거를 보았습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매를 엄청 맞았습니다. 얼마나 맞았던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약을 달인다, 무당을 부른다… 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입만 떼면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
3년이 지났을 때 청년은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예수 믿으셔야 합니다"
일부러 벙어리 노릇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모들도 선교사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수관아,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의 전도사로 쓰시겠구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대강 대강 다니다가 어느 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는 복음에 빚진자임을 알았습니다. 전도했습니다. 전철에서도 전도했습니다.
경북의대 교수 시절, 춘천에 학술회의에 다녀오다가 앞쪽에 앉아있는 노교수를 보았습니다. 그에게 전도를 했더니 그가 실토입니다.
"제가 명색이 교회 집사이다. 부끄럽다"
그게 인연이 되어 연세대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전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충분히 보상도 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께 병을 고침 받았던 사람들이 한 40여명이 나옵니다. 그중 34명이 친구나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나왔습니다. 자기 힘으로 나온 이는 겨우 여섯 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전에도 주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중간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입을 열어 주님을 전하는 중간 역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의 입은 정결해야 합니다. 그 입에는 할 수만 있으면 궤사가 없어야 합니다.
"질이 좋지 않은 혀는 질이 좋지 않은 손보다 더 못하다"(탈무드)
요즘처럼 믿는 사람들의 입이 부도수표가 많은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 사용내역을 이제는 따지며 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입을 열어 주님을 찬송하고 입을 열어 주님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2. 행동으로 전해야 합니다.
교육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달의 방법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달방법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랍니다. 1백 마디를 들었으면 일곱 마디 밖에 기억 못한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여줄 때 71%의 효과가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하도 좋은 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배고파 죽은 사람은 있어도 말못해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요즈음 새로운 전도방법이 나옵니다. 길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 한두 명이 나올 것입니다. 그 효과만 보면 안 됩니다. 그런 전도방법으로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예수를 몰랐을 때 쓰는 충격적인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 인격에 감동을 받는 것이지 말에 감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행동하는 믿음, 실천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 이후 완전히 변화된 행동양식을 보였습니다.
*베드로, 그는 말이 헤픈 사람이었으나 과묵한 사람이 되었다.
*편협함이 사라졌다.
*세상 지위를 초월했다.
*한결같이 순교했다.
순교 그 자체가 가장 확실한 부활의 증거입니다. 그들은 살아있던 예수도 다 버리고 갔던 사람입니다. 만약 부활을 보지 못했다면 그들이 왜 아까운 목숨을 버렸겠습니까? 그들의 생명 내건 전파 앞에 세상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을 듣는 자들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거의 기독교를 압니다. 이제는 본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다시 회생할 있습니다.
신학자 반 하우스는, 자폐증 증상을 가진 크리스천이 너무 많음을 한탄했습니다. 자폐증은 표현하지 않는 증세입니다. 반 하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듣습니다. 오고 갑니다. 그들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폐증 아이를 가진 부모는 얼마나 슬프고 안타깝습니까? 마찬가지로 자폐증 크리스천을 둔 하늘 아버지도 몹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빌리그레함 집회에서 50대의 남자가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오래간만에 교회에 출석했다. 뜻밖에도 존경하는 선배가 그 교회의 장로였다. 어째서 당신은 나에게 주님을 전하지 않았는가? 당신이 크리스천임을 알았다면 나는 더 일찍이 교회에 나왔을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예수를 안 믿어도 된다는 벽(壁)이 되었다"
3. 사상으로 전해야 합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입으로 부지런히 전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입으로 전하는 전도였습니다. 그 전도 앞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서로의 것을 나눠가졌고 희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행적을 보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행동 자체가 구원을 일으켰습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책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책은 사상이요, 후세까지 전달이 되는 좋은 전도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깊은 생각과 좋은 사상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책을 쓰고 제자 양성을 통하여 사상이 계속 이어져 가야 합니다.
사상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일본 그리스도교는 매우 미미하지만 그들 속에 생각이 있고 사상이 있기에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뜨거움이 있고 열심이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자질입니까? 그 자질로 열심하고 전도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식적으로만 받아들였다면 우리도 일본교회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교인들이 차분하게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지 못했기에 기독교사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문화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말로만 해서는 영향력이 없습니다.
기독교사상, 기독교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사상을 만들어 내고 문화를 만들어 내고 차분하게 그리스도의 세계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밀러 박사는 <아스팔트에서의 낚시질>이란 책을 썼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평균 6천 번 설교, 8천 번 기도, 2만 번의 설교를 듣지만 믿지 않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소개하고 전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습니다.
결론
오래 전에 뉴욕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용감했던 소방대원들에게 표창 매달을 달아주고 시가행진을 계획했습니다. 시장은 시민들에게 광고를 했습니다.
"이번 대화재에서 용감한 소방대원들 때문에 구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가행진에 참가하시오"
그랬더니 1만 2천명의 시민이 선두에 섰다고 합니다.
천국에서 나의 소개로 주님을 알았다는 사람들을 세운다면 몇 명이나 될까요? 다니엘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단12:3)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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