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선대를 선대하라
여호수아 2장 8-14절
서론
처음 설교를 준비할 때의 제목은 “믿음으로 허들을 넘자”라고 정했었습니다. 여기서 허들은, 육상경기 장애물 달리기에 쓰는 목제 또는 금속제 패널입니다. 허들은 경기 규칙에 따라 높이가 다릅니다. 실력이 있으면 거뜬히 넘지만 모자라면 허들에 걸려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허들은 꼭 넘어야 하는 장벽입니다. 선수로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도 허들이 있습니다. 집안의 허들, 학벌, 외모, 대학의 허들…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은 허들입니다. 양반 천민으로 차별되던 조선시대엔 곳곳에서 넘으면 나오고… 넘으면 다시 나오고 평생 신분, 출신의 벽으로 수모와 차별과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저에게도 나름대로 넘어야 할 허들들이 있었습니다. 신체적인 허들, 내향적인 성향, 지역적인 허들, 자신감 결여라는 허들, 사별이라는 허들… 걸려 넘어진 허들도 있었지만 잘 넘긴 허들이 있어 무사히 은퇴하고 편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대하니,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 덕분입니다.
다윗도 수 없이 많은 허들을 넘은 사람입니다. 역경과 반전의 사람이지요. 그 많은 허들을 다윗은 어떻게 뛰어넘었을까요? 사울 추격이라는 허들을 뛰어넘고 다윗은 시편 18편 29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담을 뛰어넘나이다. 담을 바로 허들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그 허들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허들을 제대로 넘은 인물이 여리고성의 라합입니다. 무적의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에서 넘어야 할 허들은 직업과 혈통입니다. 라합의 직업은 기생입니다(1절).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성경’에서 기생을 ‘창녀’로 번역합니다. 라합은 학살이 예고된 원주민 혈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후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으로 입성하면서 요단강을 건너 첫 관문 여리고성을 만납니다. 여호수아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두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라합은 오가는 나그네들을 상대하기에 스파이들을 대번에 알아봅니다. 외모만 아니라 그들 민족의 역사, 광야40년 기적의 역사를 알았습니다. 물론 주워들은 정보의 힘입니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 그게 중요합니다. 라합은 제대로 정보를 해석합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것을 내가 아노라…”
10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11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리라…”
라합은 가나안 땅의 이방인 중에서 상천하지의 하나님의 바른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본 첫 사람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들 편에 서기로 한 것이 자기 정보와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2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내게 증표를 내라”
라합이 말하는 '선대(善待)'는 ‘자비’ ‘친절’ ‘은혜 베풂’입니다. 라합은 자기가 먼저 선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너희들도 그 선대에 맞게 선대해 달라는 것입니다. 라합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릅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대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라합에게 선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어떤 이적과 기적의 행진을 했는지, 요단 강은 어떻게 건넌는지 그걸 모르는 여리고성 사람들은 없습니다.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빠졌지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남의 백성들 편에 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믿었고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라합을 선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대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믿음의 선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엡2:8)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구원과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대한 것이 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선대해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라합은 당시만 해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냥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자 정탐꾼에게 자비와 호의를 베풉니다.
정탐꾼을 6절, 지붕의 삼대에 숨겼고… 15절, 창문에 줄을 달아내려 성 밖으로 달아나게 했습니다. 생명을 건 모험으로 발각되면 처형감입니다. 집안이 멸족하고 매국노가 됩니다. 그럼에도 라합은 히브리민족 편에 섰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겉으로는 받아들임이지만 사실은 그들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기생이라는 신분의 허들, 가나안혈통이라는 신분의 허들을 뛰어넘는 순간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영접하도록 라합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라합은,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선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결심으로 신분과 혈통의 허들은 뛰어넘습니다. 이게 전부일까요? 직업과 신분의 허들은 한번으로 되는게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심지어는 몇 대 후손들까지 신분 뿌리, 혈통의 뿌리는 불쑥불쑥 솟아나서 괴롭힙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을 보신 분들은 노비의 아들. 유진 초이가 사대부 영애 고애신을 사랑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그 신분과 혈통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 실감했을 것입니다.
라합이 기생이라는, 가나안 원주민이라는 신분을 벗고 이스라엘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고집불통 히브리부족의 편견에서 겪은 수모, 낙심과 좌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컬럼비아대학교 마이클 모부신 교수의 책 <판단의 버릇>은 판단과 예측에서 버릇처럼 되풀이 하는 인지적 실수들을 말합니다. 판단의 실수는 어리석은 사람보다 똑똑이들이 더 많답니다. 머리에 내재한 소프트웨어의 초기설정이 한 방향만 보도록 설정해 버렸기에 자기 지식으로만 판단해서 똑똑이들이 오히려 그릇된 판단을 할 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닻내림 효과’라 합니다. 닻을 내린 배가 닻을 내린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듯 처음 접한 정보가 기준점이 되어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 현상입니다. 일종의 어림짐작의 기술로, 당연히 편향성을 띄게 됩니다.
히브리인들이 처음 접한 라합의 정보는 무엇일까요? 기생, 창기, 이방 혈통의 가나안인, 동족 배신자, 우리 식으로 말하면 된장녀, 김치녀… 이런 경멸조로 불렸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로 한 날, 이스라엘과 한편 되기로 한 날을 얼마나 후회했을까요? 동족을 저버리고 히브리공동체로 들어온 것이 정말 잘한 결정이었을까? 이런 의심과 절망이 들 때마다 가나안 땅에서 도망가거나 울분만을 삭히며 바짝바짝 말라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위한 인애, 은혜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은혜는 구약의 중심을 이루는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상호 체결한 언약관계에 충실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은혜, 백성들의 인애는, “강한 자가 약한 자들에게 보여주는 자발적인 충성, 사랑”이라고요. 호의, 호혜지요! 라합이 이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12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라합은 호의와 친절로 ‘선대’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 백성에게는 선대가 헤세드,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선대를, 헤세드 은혜로 기억합니다. 시내산에서 막 받은 따끈따끈한 율법은…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 사정을 아느니라”(출 23: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9)
밭에서 곡식 벨 때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는 명령도 있습니다(신24:19)
이것보다 더 큰 헤세드가 있습니다. 이방인이 할례를 통해 언약공동체에 들어오면 그날로 정통 히브리혈통이 됩니다. 신라의 골품제도로 말한다면 성골(聖骨)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더 이상 이방인이니 짝퉁이니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갈렙도 사실은 야곱의 혈통이 아닌 에서, 에돔의 혈통 그나스족속이었지만 할례를 통해 유다지파의 일원으로 지도자까지 됩니다.
라합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헤세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생이요 이방인이지만 라합이 베푼 그 선대,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신랑감을 찾아주었습니다.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살몬은 나손의 아들입니다. 나손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을 세울 때 유다지파 족장으로 성소에서 제1일에 예물을 드렸던 자입니다(민7:12). 나손의 아버지가 암미나답(아미나답), 대제사장 아론의 장인입니다(출 6:23). 그러니까 아론의 아들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과는 사촌지간입니다. 이런 집안의 며느리요, 부인이 된 것입니다. 룻기에, ‘유력한 자’ 부자, 실력자로 소개된 보아스는 라합의 아들이고 그 집안은 벌써 유력해졌습니다. 친가는 유대족장, 사돈 쪽은 아론대제사장 집안 유대사회에서는 로얄 패밀리입니다. 라합은 기생딱지를 벗고 순간적으로 상류층이 된 것입니다. 가나안입성을 도운 은혜보답입니다. 이것이 헤세드입니다. 라합도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됨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엄청난 공훈자가 됩니다. 서로가 선대한 것입니다.
라합은 히브리서 11장 믿음 영웅들 반열에 등재됩니다. 라합은 ‘하나님 은혜’의 표상입니다. 이만하면 하나님 믿을만 하지 않아요?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도 이런 은혜 누릴 수 있습니다.
라합이 이리도 높은 허들,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1차는 자기가 넘었고 2차는 이스라엘 언약공동체가 넘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허들링의 헤세드였습니다. 라합은 믿음으로 허들을 넘고 이스라엘공동체는 허들링으로 그녀를 선대합니다.
허들링(Hudding)은 원래는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놀이입니다. 황제펭귄의 허들링은 반대입니다. 따뜻한 안쪽으로 밀어 넣어주는 겁니다. 알을 품은 황제펭귄은 산란기가 되면 천적을 피해 일부러 추운 곳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시속 110km가 넘는 눈바람과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남극의 극한 추위는 황제펭귄들에게도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걸 이겨내고자 찾아낸 방법이 ‘허들링’입니다. 수많은 황제펭귄이 서로 몸을 맞대고 거대한 원을 형성하면 바깥쪽과 안쪽의 온도 차이가 10도 이상 납니다. 서로 몸을 밀착해 바깥쪽에 있는 펭귄들의 체온이 떨어질 때 서로의 위치를 바꾸므로 한겨울의 추위를 함께 극복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천한 기생 라합을 허들링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허들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장 2절의 “운행하시니라”는 hovering, 호버링 “배회하다”입니다. 호버링, 헬리콥터가 공중에 정지해 있는 상태입니다. 혼돈과 공허함, 흑암에 빛을 불러들이기 위해 하나님의 신은 계속 배회했습니다. 어둡고 공허한 세상,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 명령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조를 위해 여인의 해산처럼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운행, 배회가 암탉이 병아리를 깨기 위해 품안에서 알들을 굴리고 굴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것이 신약에 들어와서 사람을 중생시킬 때에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성경에는 장벽 허들을 뛰어넘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삭개오는 키작음의 허들을,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들림의 허들을, 마태는 세리라는 허들을, 수가성 여인은 성중독의 허들을 넘은 사람입니다. 나다나엘은 이성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저들은 넘습니다. 예수님께서 호버링hovering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배회, hovering이 허들링입니다. 하나님은 라합을 허들링해주시고 백성들도 헤세드의 마음으로 라합을 허들링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깃들려고 찾아온 룻을 라합의 아들 보아스가 허들링해준 것은 그 어머니를 허들링해준 선조들의 그 선대에 선대로, 헤세드에 헤세드로 갚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선대의 대물림, 헤세드 은혜의 대물림입니다.
결론
목회 40년을 돌아보니 곳곳마다 여러분을 충분히 허들링 못해준 아쉬움이 있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낙심될 때 더 많이 허들링했어야 했는데, 덜 아픈 분이 더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더 사랑 받는 분들이 외로운 분들을 위해 허들링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펜데믹 3년 전후에 오신 분들에게 코로나에 감염될까봐 확진자가 나온 교회라 공격할까봐 몸 사리느라 그 분들과 충분히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이제는 담임목사님과 함께 더 친밀하고 단단한 허들링으로 묶였으면 합니다. 구역 허들링으로, 남녀전도회 허들링으로, 찬양대 허들링으로, 교육부서 허들링이 늘빛교회라는 큰 허들링으로 인생의 찬바람에서도 견디어냈던 펭귄 허들링을 만드는 일에 기존 성도님들이나 지금 오신 분이나 가리지 말고 허들링으로 껴안아 주시고 새신자분들은 바짝 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앞을 가로막는 허들들을 믿음으로 넘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대해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선대하면서, 하나님께서 헤세드 은혜를 우리도 남들에게 헤세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강하게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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