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락방(房) 기도를 회복하라!
사도행전 1장 12~16절
서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른 방(房)의 문화가 있습니다. 거리에서 관심을 갖고 방(房)을 찾아보면 너무 많은 방(房)에 깜짝 놀랄 것입니다. 게임방, 전화방, 노래방. 비디오방, 찜질방, PC방, 빨래방, 공부방… 우스갯소리로 지금 지옥에서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랍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찜질방을 좋아하는지 지옥의 불로는 효과를 낼 수 없답니다. 그래서 온도를 더 세게 높이는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답니다.
제가 1970년대에 서울에 왔는데 그 때는 다방(茶房) 밖에 없었습니다. 다방에 왜 갔느냐? 첫째는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서! 둘째는 설탕을 먹고 싶어서! 설탕물이 그렇게 맛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방 아가씨-그때는 “다방 레지”라 했는데 레지들이 없을 때만 설탕물을 훔쳐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말은 재미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슬픈 자화상들이지요!
50여년이 지난 지금, 다방은 지방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앞에서 말한 방들이 수도 없이 생겨났습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이런 방들은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아니면, 뭔가 한국사회가 잘못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방(房) 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방. 몇 천 원만 주면 밤새도록 지낼 수 있는 방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며, 삶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방 문화는 몇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 방의 문화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어 갑니다.
방 문화는 밀폐되어 있습니다. 여럿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대부분 혼자나 두 서너 명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보면 중독현상이 나타납니다.
게임은 대화가 없기에 설득의 문화가 없습니다. 의견 나눔이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고 깨부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공격과 파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고(思考)가 심성 속에 고스란히 자리 잡습니다. 극히 개인화되고 이기적이 됩니다. 이런 사고는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나 의견 조절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요구조건만을 내세우는 소아적 인간이 됩니다. 어린애 같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회가 발전될 수 없습니다.
㉡ 방의 문화는 폐쇄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의사표현을 통해, 대화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아름다운 인간상을 만들어 갑니다.
기러기는 약함에도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들의 힘은 날개 짓에도 있지만 의사소통입니다. 깍! 깍!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앞에서 날아가는 새들은 뒤의 새들에게 힘내라는 것이요, 뒤에 있는 기러기들은 뒤에서 잘 따라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표시입니다. 서로에 대한 격려가 먼 길을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축구선수들은 훈련하면서, 시합 중에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위치나 의도를 알게 되고 골 연결이 정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능숙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한 팀워크가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의 문화에 심취하게 되면 혼자의 공간을 즐깁니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배우지 못합니다. 모두에게 문을 닫아버리고 독기(毒氣)를 품습니다. 세상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심성은 돌처럼 굳어질 것입니다. 굳어진 데에서 무슨 생명이 싹틀 수 있을까요?
㉢ 방의 문화는 익명(匿名)을 즐깁니다.
지난날의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방의 문화에 오염된 사람들은 자신을 익명으로 숨깁니다. 익명은 이름을 숨기고 정체를 숨깁니다. 익명으로 별별 욕설을 늘어놓고 남을 위협합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일 수록 '익명'을 즐깁니다. 이런 이들이 방에서 나와 자기의 이름을 가졌을 때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 됩니다.
익명의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이름을 숨겨서 남의 허물이나 드러내고 남의 약점을 공개하면서 즐깁니다. 인터넷 공간이야말로 익명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공간입니다.
㉣ 방의 문화는 일탈(逸脫)을 꿈꿉니다.
방의 문화는 어둠의 문화이고 폐쇄의 문화이고 죄의 문화입니다. 비디오방, 전화방… 잘못된 방들이 오늘도 사람들을 유혹하고 어둠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러잖아도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에서의 일탈을 꿈꿉니다.
방(房)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험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청소년들을 노리고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방(房) 출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런 삶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몸은 성도의 구역에 있지만 문화는 방 문화를 즐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믿음의 힘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세속적인 방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기적이고 폐쇄적이고 익명을 즐기고 일탈을 꿈꾸는 그런 신앙은 아닌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방 문화를 만들어 가야할까요?
본문에는 근사한 방(房)이 나옵니다.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음식점 이름 같지요? 그냥 숨기 좋은 다락방 같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은 기도방(房)입니다. 돈 내고 들어가 실컷 놀다오는 방이 아니라 누구든지 들어가서 열심히 부르짖고 은혜를 체험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교회공동체가 곧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 마가의 다락방은 하나가 되는 방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는 1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방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에서 왔습니다. 사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릅니다. 피부 색깔도 다릅니다. 제자들 간에도 성격이 다르고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방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차이가 극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했고 위대한 기독교의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언어가 혼잡하고 여러 민족으로 나뉘게 된 것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은 죄로부터 왔습니다. 교만의 죄입니다. 그러나 이제 기도방에서 언어가 하나가 되면서 흩어졌던 사람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 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방에서 함께 기도할 때 모든 불일치는 일치로 나갈 수 있고 기도방에서 갈등과 차이점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일치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의 방으로 나오세요! 기도방에서 우리의 고집과 자아는 깨지고 우리는 하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기도회는 중단되어야 하고 고립적인 기도생활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록펠러는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지를 못하는 사람은 채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함께 하지 않는 곳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함께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 마가의 다락방은 신령한 언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한 12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다락방에서 갑자기 성령이 강림했고 방언의 은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방언은 신비한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특수한 목적을 띄거나 개인의 깊은 기도생활을 위해 주시는 은사입니다. 누구나 꼭 받아야 하는 필수과목이 아니라 선택과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언어를 통해서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동시통역과 같은 방언으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자기들의 말로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언어였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거짓 방언들이 난무하고 있기에 방언의 아름다움 대신 "방언 하는 사람들=약간은 이상한 사람들"로 보이는 오해도 있지만 당시의 방언은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가는 신령한 언어였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아름다운 언어를 은사로 받기 바랍니다. 따뜻하고 경건한 은사, 다정하고 남을 배려하는 은사, 공격적인 말보다는 감싸주는 언어의 은사, 부정적인 언어보다는 긍정적인 언어들을 받기를 바랍니다. 바로 기도방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 다락방은 능력을 체험하는 방입니다.
본문의 다락방에 들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 능력은 담대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서움이 사라졌습니다. 목숨을 내던지는 용기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처럼 강한 용기가 어디 있습니까?
능력은 이적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수많은 이적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기도방에서 얻은 능력의 결과입니다.
성도님들이 기도방에서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약한 자들이 아니라 강한 자들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기도방은 능히 여러분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비전을 만드는 방입니다.
기도방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일어난 이 하나님의 역사가 전 세계에 충만할 것이며 세계를 구원하는 위대한 첫 발걸음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세계에 그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전하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루어졌습니다.
세속적인 방은 여러분들의 꿈을 앗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방은 사라졌던 꿈들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비전의 사람들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을 나누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도하지 않는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건물입니다. 세속 방(房)이 되어버린 교회가 오늘은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기도방이 점점 사라지고 기도하는 소리가 작아졌기에 교회는 힘을 잃고 삼손처럼 어릿광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속방으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기도방으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얻고 비전을 세우고 거듭나는 생명으로 살겠습니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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