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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설교도 맛있다] 미갈, 비운(悲運)의 여인(사무엘상 19:8~1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5.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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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갈, 비운(悲運)의 여인

사무엘상 19 8~17

 

서론

1981 7월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 앞, 세기의 여주인공이자 왕세자의 신부인 다이애나가 7m나 되는 아이보리색 실크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차에서 수줍게 내려섰습니다. 젊고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 성당 앞의 하객들도, 생중계로 결혼식을 지켜보던 세계 7억 인구도 찰스왕세자 부부가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줄 믿었습니다. 하지만 삶은 동화가 아닙니다.

왕세자 부부의 결혼생활은 15년 후 1996년 이혼으로 막을 내렸고 1년 후 8, 다이애나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왜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났을까요?

 

결혼 당시 갓 스무 살이던 다이애나비와 12살 연상의 찰스왕세자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다이애나는 귀족신분이지만 고등학교 중퇴 뒤, 막 세상에 나와 유치원 보모로 독립적 삶을 시작하려던 순진한 아가씨였고 찰스는 제1왕위 계승자로 떠받들어지며 공부에도 소질을 보여 케임브리지를 나온 노련한 지식인 왕자님입니다.

다이애나는 발로 뛰는 스포츠와 춤을 좋아했지만 찰스는 말을 타는 폴로와 사냥을 즐겼습니다. 다이애나는 대화와 유대감을 중시했지만, 찰스는 사색과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다이애나는 결혼 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지만, 찰스는 스캔들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실제로 다이애나와 결혼 당시 오랜 연인 카밀라 파커볼스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신혼생활에 들어갔습니다. 훗날 다이애나 비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세 사람이 함께 한 결혼이니 좀 붐볐죠 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습니다.

 

다이애나가 우리 시대에 신데렐라이면서 비운의 여인이었다면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다이애나의 삶을 살았던 여인은 미갈입니다. 성경의 미갈에게서 당시의 다이애나를 봅니다.

사랑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은 인간적으로 행운녀입니다. 왕의 딸이면서 왕의 아내입니다. 왕의 딸이라고 왕과 결혼하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갈은 공주이면서 같은 나라의 왕의 왕비가 됩니다. 그것도 아주 잘 생기고 믿음이 좋은 왕의 후보와 결혼한 것입니다. 극소수 사람들에게 주어진 행운입니다.

미갈은 그렇게 이스라엘의 떠오르는 스타 잘 생기고 용감한 다윗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원래 다윗은 그녀에게는 넘보지 못할 언니의 남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정략적으로 언니를 다윗의 신부로 계산에 두고 있었습니다.

 

삼상 18: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물론 사울의 계략입니다. 딸을 정치적 미끼로 사용하는 아버지, 다윗을 적들에게 보내 제거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 딸의 신세는 어떻게 됩니까? 악신(惡神)에 들지만 않았어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악신에 들어 분별력을 잊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바램과는 다르게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면서 겸양을 보입니다.

 

18,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그랬더니 그 말을 기회로,

19,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메랍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입니다. 다윗 같은 남자에게 반하지 않을 여인이 어디에 있겠어요? 아버지의 라이벌만 아니었다면 울고불고 결혼을 간청했겠지요. 그러나 메랍은 아직 다윗과 정분이 나지도 않았고 악신에 걸려 길길이 날뛰는 아버지에게 대항할 의지가 없었습니다.

미갈이 이런 틈새로 끼어듭니다. 그녀는 언니의 남자 다윗을 남몰래 사랑했습니다.

20,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국민 영웅 다윗을 누군들 사랑하고 흠모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언니의 남자입니다. 그러던 차에 언니는 다른 사람과 결혼합니다. 미갈에게는 기회입니다.

아버지는 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갈을 미끼로 이용합니다. 미갈과 결혼하려면 신부 값으로 적군 블레셋인들의 포피 100개를 가져오라는 제안입니다(삼상 18:25~27).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전제로 안 제안이지만 다윗이 누구입니까? 블레셋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입니다. 다윗은 전투에서 이기고 전리품으로 200개의 포피를 가져왔습니다.

 

드디어 미갈은 다윗과 결혼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해피엔딩일까요? 그 결혼생활은 다이애나와 찰스왕세자 부부처럼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찰스부부에게는 카밀라 파커 볼스가 끼어있었고 다윗과 미갈 사이에는 사울이 끼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왕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언제 왕이 사위를, 언제 아버지가 남편을 살해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부의 정이 싹트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미갈은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겠어요?

남편과 아버지 사이에서 누구를 택해야 할까? 급기야 왕은 부하들을 보내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미갈은 침대에 인형을 숨겨놓아 부하들을 속이고 남편을 탈출시켰습니다.

 

삼상 19:12,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남편을 택한 여자! 그는 다윗을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었을까요? 다윗 역시도 아내를 목숨을 걸고 사랑했을까요?

애증

다윗은 망명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10여년 정도 두 사람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유대광야에서 살던 다윗은 아비가일과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습니다(삼상 25:42, 43).

다윗이 왜 자기 목숨을 구해준 미갈의 사랑을 배신하고 두 여인을, 그것도 거의 동시에 부인으로 맞아들였을까요? 사울과의 적대적인 관계는 도무지 미갈과는 다시 합칠 수 없다는 포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사울 왕의 그 소식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은 서둘러 미갈이 발디엘과 결혼하도록 주선합니다. 미갈은 아버지의 강요에 발디엘과 결혼하고(삼상 25:44)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다윗과 미갈의 인연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미갈을 찾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지 10년만의 일입니다.

사무엘하 3:13, “다윗이 이르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을 맺거니와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14,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15,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미갈은 이 남자에게 정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발디엘은 정을 주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제발 데려가지 말라 애원합니다. 간장이 끊어지는 격한 슬픔으로 남편이라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왕권에 대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미갈이 다윗의 아내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미갈을 취하지 않았어야 옳았습니다. 자업자득입니다.

 

다윗, 발디엘의 간청조차 뿌리치고 굳이 애정도 없었을 미갈을 이렇게 데려와야 했을까요? 친정, 처갓집과의 문제 때문에 악연이 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왜 착한 한 남자의 가정을 깨뜨리면서 미갈을 찾아왔을까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다윗은 이미 아히노암, 아비가일 두 여인에게서 자식을 얻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은 처녀보다는 유부녀를 좋아하는 취향일까요. 훗날 밧세바도 유부녀입니다. 그래서 유부녀가 된 미갈을 억지로 데려왔을까요?

-첫 여인을 왕국의 신하가 데리고 산다는 것은 장차 왕이 될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일입니다. 그래서 강요해서 데려왔을까요?

-미갈을 데려온 것은 첫 정()보다는 정략적인 행동 같습니다. 미갈이 있어야 사울 왕가와의 정권 마무리 과정에서 도움이 됩니다. 베냐민지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갈이 정상적으로 아들을 낳았으면 왕이 되고 베냐민지파의 왕통은 이어지니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미갈을 데려왔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깊은 정은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친과의 사이에서 되어진 일은 부부결속에 방해입니다. 아버지 오라비들을 생각하면 다윗이 미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도 그 아버지의 소행을 생각하면 미갈에게 정이 들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재혼으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입니다. 다윗도 기다려야 했고 미갈도 아버지의 강요에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다윗을 찾아 도망이라도 가야했습니다.

이런 애중 관계는 한 지붕 두 가정의 불안한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그럭저럭 형식만 부부일뿐 애정 없는 부부생활을 했습니다. 이거야말로 정신적인 간음형태입니다.

대충 살던 두 사람에게 급기야 큰 충돌이 생겼고 끝내는 파경 아닌 파경에 이르게 됩니다.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추는 남편을 사정없이 비웃어 버린 것입니다.

 

다윗도 그동안의 누적된 불만이 있었기에 이후에 미갈을 찾지 않습니다. 미갈은 본의 아니게 평생 불임(不姙)으로 지내게 됩니다(삼하 6:14-23). 여성에게는 불행 중에서도 불행이고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습니다. 미갈은 누구의 아내도 되지 못하고 평생을 쓸쓸하게 보낸 비운의 여인으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이 아니었을까요?

아쉬움

최고의 행운을 갖고 태어난 여인이 어떻게 이렇게 비운의 여인이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죄의 대가가 미갈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무슨 물건인양 정치적인 제물로 이용합니다. 라이벌을 제거하는 일에 두 딸을 이용합니다.

-미갈은 다윗을 지아비(예스럽게 이르는 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사랑한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목숨 걸고 성밖으로 탈출시켰으니까요! 그러나 다윗이 은혜를 저버리고 10년동안 찾지 않았으며더군다나 두 여인과의 결혼은 미갈에게 상당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미갈은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할 수도, 존경할 수도 없었습니다. 왕궁에서 다윗의 무시를 받을수록 발디가 생각났고 그가 울면서 좇아오던 그 애틋함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억하심정(抑何心情) 때문에 미갈을 인질로 삼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미끼로 이용했고 남편은 자기를 인질로 이용합니다. 그 장인에 그 사위입니다. 남들에게는 존경을 받는 왕이었지만 미갈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되는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미갈은 질투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비가엘,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입니다. 아히노암도 아비가일과 같은 수준일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아비가엘에게는 없는 젊음과 청순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윗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미갈에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치 가을철의 부채 같이, 철이 지난 해수욕장과 같은 처량한 존재였습니다. 자신에게는 여성으로서, 아내로서의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질투심 뿐! 질투의 끝은 남편에게 향합니다. 남편에 대한 증오심! 활화산처럼 폭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갈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왕이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으면 목숨 걸고 다윗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비록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얻었다 해도 정실부인이라는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기도 깨끗한 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다윗이 불러주었고 정실부인의 자리를 주었다면 무슨 굴욕을 참아가면서도 더 많이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미갈은 남편의 열정의 힘을 무시했습니다. 남편은 법궤에 목이 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 중심이기를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지금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개인 소유물로 있는 것이 늘 죄송했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는 때를 기다려 법궤를 다윗 성으로 운반해 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다윗의 열정은 하나님의 거절을 당합니다. 갑자기 수레를 끌던 소가 날뛰었고 운반책임자가 죽고 법궤운반은 중지됩니다.

 

3개월 후, 법대로 법궤를 운반하자 무사히 다윗 성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다윗은 지난날의 실수와 인명 피해까지 있었던 터라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사무엘하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미갈에게는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습니다. 백성들과 춤을 추는 왕의 모습, 아버지라면 결코 저런 꼴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행동은 추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행동을 비꼽니다. 그 말이 결정적으로 미갈을 비운의 여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미갈은 남편에게 방탕한 자, 염치가 없는 자라는 언사를 퍼부었습니다. 그건 저잣거리의 난봉꾼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참 독하게도 퍼부었습니다.

미갈은 남편이 얼마나 말의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는지 몰랐습니다. 남편은 말로 인한 상처가 많습니다. 형들에게, 장인에게 말할 수 없는 언어폭력을 당했습니다. 다른 것은 견디는데 말로 인한 모욕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에 대해 다윗의 보였던 행동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나발을 처벌하기 위해 400명 군대를 동원합니다. 민간인 신분 나발을 엄벌하는 것은 군사 10명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무장된 400명 군대를 동원하는 전쟁에 준하는 행위는 파리채로 잡을 수 있는 것을 대포를 동원한 격입니다.

왜 이렇게 과잉된 행동을 보입니까?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발은 다윗의 역린을 건드려 버렸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25: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은 다윗의 아버지까지 거명했습니다. 다윗을 종으로 조롱합니다. 그의 망명생활을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놈이라고 폄하합니다. 여기서 다윗의 뚜껑이 열려버렸고 군대를 동원하는 격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미갈이 이런 남편의 트라우마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격노를 받고 평생 불임인생이라는 기구한 여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다이애나는 36세에 죽어 지금도 꽃다운 모습이라도 간직하고 있지만 미갈은 죽을 때까지 남편을 보지만 멀찍이 보고, 남편의 눈길에서 애정이 아닌 혐오를 보는 늙은 여인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미갈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우리는 믿음의 정결을 지키고 있는가? ‘부득이로 정결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부사이에서도 서로를 모르는 부분은 없는가?

-부부가 서로를 축복해 주지 못하고 소모전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

-상대방의 트라우마는 무엇인가?

결론

행운을 행운으로 꽃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미갈!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 여러 사정들이 얽혀있지만 아버지에게만 그 잘못을 돌릴 수 없습니다. 사실 자신을 비운의 여인으로 만든 것은 미갈 자신입니다. 사랑했던 것만큼이나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알았다면 그렇게 억울하고도 비참한 생애로 끝을 맺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미갈을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아름다운 생애를 만들어 가는 우리 가족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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