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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부활주일] 블루오션 기독교와 레드오션 기독교(누가복음 24:1~12)

by 강정훈말씀닷컴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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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기독교와 레드오션 기독교

누가복음 24:1~12

 

     

<서론>

오늘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은총이 모든 이들에게 임해서 어둠에서 모두 일어나시고 꽉 막혔던 문들이 열려지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빈 무덤, 새 무덤을 금--일요일, 주말만 잠시 빌리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가장 수지(?) 맞은 사람은 우리 모두이지만 경영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빈 무덤을 상품화, 관광화()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입장료는 1만원씩만 받는다고 해도 하루 100명이면 100만원, 천명이면 천만 원입니다. 물 값이 들어요, 재료값이 들어요? 완전 이익금! 집안대대로 먹여 살리고 재벌부자가 됩니다.

 

개인 입장에서 봐도 죽음 앞에서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부활하신 분의 무덤에 묻힙니다. 당연히 부활을 확신하기에 얼마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까? 자식들도 아버지를 묻으면서 아내도 남편을 장사지내면서 얼마나 소망이 넘치겠습니까?

오벧에돔은 누구나 기피하는 법궤를 자기 집에 석 달을 모셔 300년 먹을 양식을 얻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오벧에돔이나 자기 무덤을 빌려드리고 자기 집을 내놓아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이 주는 축복입니다!

 

저는 사실 흙수저 신분이고 출신입니다. 출신지나 신분성분이나 외모나 가죽구성이나 모두 흙수저이고 굳이 분류한다면 루저(loser)입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요셉처럼 주님께 내 몸을 빌려 드렸습니다. 빌려드린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갖다 쓰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리마대 요셉이 받은 축복을 받고 오벧에돔이 받은 자손의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이렇게 대단한 축복이여 인생으로 볼 때 수지 맞는 계산법입니다. 이런 축복된 삶을 살려면 부활신앙으로 가야 합니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변증가 C.S 루이스는 예수님의 최대 업적은 그분이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고 그 메시지로 다시 사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CCC의 총재로 사셨던 김준곤 목사님은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대낮에 해를 보고도 해를 믿지 않는 것과 같다.”

한국의 석학 이어령 교수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세상에 진짜 기적은 부활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어느 때보다 부활신앙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자꾸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독창성을 버리고 일반 윤리종교, 도덕종교로 스스로 하향평준화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 여인들은 일찍 무덤에 왔습니다. 공회의원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죽음을 위해 미리 장만한 새 무덤입니다. 어떻게 무덤 문을 열까, 걱정하며 가는데 무덤 문은 열려있고 시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부활을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정작 빈무덤이 보였을 때 당황합니다. 부활을 믿느냐? 아멘! 하면서도 사실은 지식적인 신앙심입니다. 머리로는 믿지만 사실은 무덤에 누워 계신 예수님만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예수가 아니라 죽은 예수, 수위 속에 쌓여있는 예수! 병든 자를 고쳐주던 죽은 예수님! 십자가에서조차 용서를 전하던 죽은 예수님! 배신자들, 부인하던 제자들까지 끝까지 품으시다 죽으신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죽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 죽은 예수님 정성을 다하려고 향품을 준비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믿음과 정성, 의리가 있는 여인들입니다. 천사는 잘 찾아왔다 합니까? 정성이 고맙다 합니까?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5,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책망 아닙니까? ‘여기에서 찾지 말라! 좋으셨던 분이지만 여기 죽으신 분! 좋은 교훈을 전하셨지만 여기 죽으신 분에게서 살아있는 예수를 찾지 말라는 책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산 자의 예수님으로 찾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인 신분으로 만들어 주신 그 부활의 주님! 능력의 주님에게서 예수님을 찾아야지 좋은 교훈을 주셨다고 받들면서도 정작 죽으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책망합니다. “왜 블루오션의 부활기독교를 레드오션의 윤리기독교로 만들어 버리냐 그 책망입니다.

 

블루오션(Blue Ocean) 푸른 바다입니다. 그냥 푸른 바다가 아니라 고기가 많이 잡힐 넓고 깊은 푸른 바다로, 한 기업에서만 신기술 신제품이 개발되어 팔리는 무경쟁시장입니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만들어 낸 신시장이지요. 블루오션 단어는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블루오션전략>이라는 책을 내면서입니다.

부활은 기독교만의 블루오션입니다. 어느 종교도 넘볼 수 없는 무경쟁영역입니다.

기성 종교에 불만과 회의를 가진 사람들이 새종교를 창시하려고 여러 종교들 중 우수한 교리만을 모아 가장 합리적이고도 사회에 유익을 줄 통합종교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덕망이 있는 종교인을 찾아가 교주가 되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교리를 훑어본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륭한 종교의 강령일세.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기독교와 경쟁할 수 없어. 기독교와 경쟁하려면 교리만 갖고는 안 돼! 부활이 있어야 하네! 자네들이 죽어서 부활할 것인가, 내가 죽어서 부활할 것인가? 우리 중에 누가 죽고 부활하긴 전에는 기독교를 능가할 수가 없다네! 기독교를 능가할 수 없다면 결국은 버림을 받게될 걸세

 

그래요! 부활은 기독교만이 갖고 블루오션입니다. 세상의 종교에게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부활이라 답할 것입니다. 유교에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훌륭한 가르침이 있고 자비의 종교 불교에는 기독교와 유사한 십계명이 있습니다. 석탄일이 있고 불당, 불찬가, 불경 어린이불교학교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좋은 점은 모두 벤치마킹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벤치마킹 못 해요. 다른 종교도 부활은 흉내조차 못 냅니다. 교주 무덤을 너무 선전했거든요.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해안에, 마호메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 무덤은 중국 곡부성에 있습니다. 교주들의 무덤을 너무 신성시하고 자랑한 것이 오히려 부활교리만큼은 벤치마킹 할 수 없게 발목을 잡아버린 것입니다.

여러 종교들은 이처럼 기독교의 부활을 조롱하면서도 부활교리를 너무 부러워합니다. 부활과는 도무지 경쟁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교리와 제도는 다 흉내 내면서도 기독교의 부활은 모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블루오션입니다.

 

부활교리가 얼마나 황홀합니까? 십자가 속죄, 부활, 성령의 역사 모두가 무경쟁교리 블루오션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스스로 기독교만의 블루오션을 자꾸 포기하려 합니다. 부활은 중요하지 않다, 십자가의 속죄사역도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의 사랑, 자기희생,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사셨던 그 예수님을 믿고 전하면 된다, 이런 믿음은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건 블루오션을 받아 레드오션으로 바꿔치기를 하는 배달사고입니다! 바울은 이런 경우를 구원의 복음이 다른 복음으로 배달되는 배달사고가 일어났다고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책망합니다. 왜 이런 배달사고가 일어날까요? 기독교를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부활보다는 사랑하라! 용서하라! 남을 대접하라 이런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중심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을 영혼구원에 두지 않고 집 짓고 먹을 것 주고 인권이나 복지향상에 두는 결과입니다. 이건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결과물입니다. 배달사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단을 멸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육신과 가난에서의 구원보다 더 귀한 것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사단을 멸하시려는 것은 세상의 구조악()을 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죽은 예수의 가르침이나 따르고 있다면 다른 종교와 다름이 뭐가 있겠어요? 우리 도덕이 타종교보다 나으면 얼마나 낫고 불교도보다 우리 행동이 나으면 얼마나 낫겠어요? 목사들의 수양과 인격이 불교 고승들보다 나으면 얼마나 낫겠어요? 오히려 그분들보다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기독교는 결코 종교의 블루오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따르는 종교인이 아니라 지금 살아계셔서 나를 보호하시며 힘을 공급해 주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에게 길을 물으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어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인생은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 그런데 중간에 C가 있어서 소망이다.”

B birth, 출생입니다. D death, 죽음입니다. 그런데 C christ, 예수님입니다. 출생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지만 예수님이 중간에 계시기에 우리는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래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로 나아갈 에너지를 소비하는 지금, 부활 신앙이 필요한 때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호흡하면서 앞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활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하고 부활신앙을 내 삶의 역동성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너는 죽은 내게 길을 묻겠느냐? 살아있는 내게 길을 묻겠느냐?”

죽은 내게 길을 물으며 가고 있느냐, 살아있는 내게 길을 물으며 맡기며 가고 있느냐?”

평생 우리 스스로에게 물으며 대답하며 살아야 할 질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던 길을 더 걷고 달려가던 길을 계속 달려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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