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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제자 설교] 작은 야고보, 스스로 작아진 야고보(마태복음 10:1~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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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야고보, 스스로 작아진 야고보

마태복음 10장 1~4절

 

서론

이번 여름에는 12제자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그동안 안드레야고보빌립마태바돌로매를 설교했습니다지금 쯤 지루하시지요저도 설교하고 난 후에 동영상으로 다시 봅니다동영상을 보다 졸아요제가 제 설교에 조는데 여러분들이야 오죽하겠어요.

어떤 목사님 아들이 아버지가 야단을 치니까 설교도 되게 못하면서 잔소리는” 했더라는 데 제가 그렇습니다

 

오늘은 작은 야고보에 대해 말씀 전하겠습니다작은 야고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그래서 이런 인물에 대해 설교하려면 성경적인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학자 중 어떤 분은 마태와 작은 야고보를 형제라 합니다마가복음 2:14에는 레위 마태를 알패오의 아들본문 야고보도 알패오의 아들이라 소개하기 때문입니다글쎄요!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입니다.

성경에 세 명의 야고보가 나옵니다동명(同名) 3()입니다.

 

첫째는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집안 좋고 잘 생기고 유능하고 요한이라는 좋은 동생이 있고… 제자그룹에서 예수님의 후계자 1순위입니다.

 

둘째는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처음에는 예수님을 불신했지만 부활을 보고 믿어 예루살렘교회 지도자가 됩니다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야고보가 본문의 야고보입니다. 두 사람의 야고보에 비해 본문의 야고보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 야고보를 말할 때는 언제나 작은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라 불렀습니다. 키가 작았는지, 나이가 작았기에 ‘작은’이라고 했을까요?

 

작다는 것은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2인자라는 뜻이고 기준에 미달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제자그룹에서 야고보의 영향력이 작고 미미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야고보는 그런 일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만약 야고보가 작은이란 말을 싫어했다면 눈치 없이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성경에 작은 야고보라고 서슴없이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막 15:40) 당사자인 야고보가 작다는 표현에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작은 야고보를 불렀을까요주님의 사역에 별로 도움도 되지 않고 사역을 확장하는 데 별로 효과적이지 못할 사람을 불러 3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습니다다른 사람에게 그만한 노력과 투자를 했으면 훨씬 효과적이고 유리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이 작은 사람을 왜 불렀을까요? 이런 사람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 데는 반석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작은 자갈도 있어야 하고 작은 모레도 있어야 합니다베드로 같이 선이 굵고 스케일이 큰 사람도 필요하지만 야고보처럼 작은 일을 살펴보고 작은 일에도 묵묵히 자기의 몫을 감당하는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스승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베드로야고보요한… 등은 활동적입니다나름대로 자기 활동영역이 있습니다작은 야고보 같은 사람은 특히 능력이 없기에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봅니다이런 야고보가 예수님에게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일에 앞장 서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만 누가 알아주든 말든일이 있든 없든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년이건 20년이건 한결같이 목회자의 곁에서 묵묵히 동역하는 작은 야고보작은 야고보 집사작은 야고보 교인… 이런 사람들도 교회에는 있어야 목사가 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사역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처음부터 작은’ 야고보가 아닙니다나름대로 자기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고 위치와 직분과 명예와 비전이 있었을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서 그 앞에 작은’ 형용사가 하나 붙었습니다얼마나 억울합니까키 작다고 작은’ 야고보라 부르는 것도 불쾌하고 자기보다 먼저 부름을 받은 야고보가 있다고 자기를 하필이면 작다는 의미로 부르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작은 야고보를 중심한 어떤 사건도 성경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책 한 권을 써도 넉넉한 사람입니다. 야고보, 요한, 안드레, 마태, 나다나엘인 바돌로매의 이름도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매사에 의심을 품고 사는 도마도 종종 나옵니다. 그런데 자기와 다대오라는 제자만이 나오지 않습니다.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야고보는 전혀 연연하지 않았습니다큰 야고보에 가려 살았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제자로 부름 받은 날부터동명이 있어 작은 야고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그야말로 “작은에 걸맞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훈련을 3년 동안 해 나간 것입니다.

 

부름 받은 제자들-3년 동안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의지를 불태웠습니까큰 자가 되는 훈련입니다자갈돌 같은 베드로는 장차 반석이 되는 꿈을 세우고 열심히 선두그룹에서 훈련 받았습니다모든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되면 한 자리씩 하게 될 “큰 자가 될 비전을 품고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는데 야고보는 어떤 훈련을 쌓고 있었을까요? “작은 야고보”-작은 자가 되는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자가 되는 훈련은 큰 자가 되는 훈련보다 10, 100배 더 힘들었습니다큰 자가 되는 훈련이 자기 속에 있는 자질들잠재력을 일으켜 세우는 생산적이고 적극적 훈련이라면작은 자가 되는 훈련은 자기 속에 있는 재능기질능력실력을 숨기는 훈련입니다그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었기에 더 힘들었고 더 고독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작은 사람이 되는 훈련을 어떻게 쌓았을까요?

 

 언제나 작은 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작은 자라는 최면을 걸었습니다그가 큰 자라는 의식이 일어날 때마다 더 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속에서 섭섭하고 화가 날 때도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주님의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바라보았습니다큰 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야고보는 작은 사람으로 자신을 다듬어 갔습니다.

 

작가 찰리 존스는 "현재의 당신과 5년 후의 당신의 차이점은 당신이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어떤 책을 가까이 하는지에 달려있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3년동안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주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면서 그는 주님을 배웠습니다주님을 인격 속에인생 속에 모셔 들었습니다. 3년 후에 그는 아름다운 작은 야고보가 되었습니다.

 

유세비우스라는 역사학자는 작은 야고보에 대해  “그는 후일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그는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누구보다도 힘썼던 제자였다.” 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힘쓴 사람-이 문장에서 작은 자라는 칭호를 받고 예수님의 사역을 하던 야고보의 인간적인 고통을 봅니다그는 결코 작은 자가 아닙니다그럼에도 작은 자가 되는 훈련을 쌓아야만 했습니다그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그는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애썼습니다그는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그는 비록 “작은” 설명이 붙여졌지만 누구도 그를 작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고 속에서 ‘큰 자가 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면 작은 야고보는 작은 자의 자세로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유세비우스는 다시 이렇게 기록합니다.

열 두 제자 중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한 제자가 이 작은 야고보였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남들이 큰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때반석이 되는 비전을 놓고 기도하고 있을 때 그는 작은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무슨 뜻입니까그는 큰 자였습니다너무 큰 인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유세비우스는 “그는 제일 미남이었다.”라고 기록합니다성화(聖畵화가들도 이 기록에 근거작은 야고보를 가장 미남으로 그립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가장 멋진 제자를 지목하면 틀림없이 작은 야고입니다

 

어쩌면 12제자 중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졌을 것입니다제자들이 뱃사람세리학자 등이었다면 작은 야고보는 얼굴 잘 생겼고 세상적으로 아주 잘 나가던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 오히려 “작은” 야고보라고 했는지아니면 야고보 자신이 과거의 화려함이 튀어나올까봐 스스로를 “작은” 야고보라는 별명을 달라고 했는지모르겠습니다.

그냥 한 가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그는 “작은” 이라는 이 말을 사랑하고 “작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안 될 때마다 기도했고 그러다보니 “제자들 중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작은 야고보는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오히려 큰 사람입니다나사렛의 신흥종교의 일원이 되기에는 너무 큰 인물입니다너무 컸기에자신을 절제하려는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그게 “작은입니다.

 

자신을 그냥 놔두면 미남인 자기 얼굴이 주님보다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끌까봐 앞에 나서지 않는 “작은” 야고보로 숨었습니다실력과 능력을 다 과시하면 주님께서 세우신 제자그룹의 질서에 혼란이 올까봐 작은 자로 못을 받고 그 작은 자에 맞는 사람으로 처신하기에 애썼고 그것이 안 될 때마다 기도함으로 자신을 제어해 나갔습니다그래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그렇다면, “작은” 자는 그에게 축복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큰 자가 되는 연습에 너무 골몰한 것이 아닙니까큰 자가 되는 것과 큰 그릇을 같이 보는 것이 아닙니까우리가 크게 일하고 선교하고 여러 일에 쓰임을 받는다고 해서 큰 자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 큰 자라면 교회에서만은 작은 자가 되려는 훈련을 쌓으십시오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나를 큰 자로 치켜 세울까봐이목이 나에게 더 집중될까봐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는 훈련이몸부림이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작은 자가 되는 훈련-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훈련입니다오늘 작은 자가 되는 훈련을 쌓고 있는 사람에게 주님은 “네가 큰 자다!”는 평가와 함께 큰 자가 되려는 경쟁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평안주님에게서 오는 놀라운 은사들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야고보는 ‘’ 야고보가 되었습니다.

진정 큰 자는 누구입니까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다남을 섬기는 자가 큰 자다언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제자들이 세상 지위영광에 욕심냈을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이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은 작은 야고보를 보았을 것입니다나는 너를 안다작은 야고보너는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다너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그렇습니다작은 야고보-그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혼동할까봐 작은 야고보라 불렀지만 결코 작은 사람작은 그릇이 아닙니다작은 사람이었다면그 말에 펄펄 뛰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그는 큰 사람이었기에 그 말에 열등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잘 생긴 사람에게는 못 생겼다해도 웃고 넘어갑니다그는 잘 생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공부를 잘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모르냐고 말해도 그냥 넘어갑니다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평생 원수가 됩니다노래방에서 조수미에게 노래 못 부른다고 흉보아도 조수미는 자존심 상하지 않습니다그는 큰 성악가이기 때문입니다야고보고 작은 야고보라는 말에 조금도 기분나빠하지 않는 것은 그가 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섬김에서 큰 사람이 됩니다그는 제자였지만 대접 받는 일보다는 남을 섬기려는 사람입니다이름 없이 남을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남을 섬긴다는 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입니다공자는 군자와 소인-대인과 소인의 차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번역하면 “대인은 남을 이롭게 해주는 사람이고 소인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사람이다!” 

 

우리 주님께서 남을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남을 섬기는 사람남을 잘 되게 해 주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자신을 작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그래야 남을 높일 수 있습니다이런 사람이라면 보통의 수양을 갖춘 사람이 아닙니다그래서 작은 야고보는 큰 인물입니다.

야고보는 비전에서 큰 사람이 됩니다그는 열성당원이었다고 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비전은 세계화가 됩니다세계를 품은 큰 사람그게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은 2천 살이 넘었습니다그래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33세의 청년 예수입니다야고보-2천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역시 ‘작은’ 야고보입니다그래서 기록도 없고 사역의 내용도 남아있지 않습니다제자는 제자이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나할 만큼 무명의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일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나는 실패했구나나의 사역은 성공하지 못했구나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였구나. 그런 마음으로 쓸쓸한 천국생활을 하고 있을까요아닙니다그는 세상에서 자기의 이름이 사라진 것을 보고자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자기가 누구인지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주지도 않고 그냥 “작은 야고보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야고보는 환하게 웃고 있을 것입니다.

 

유세비우스는그는 시리아에 가서 복음 전하고 시리아교회를 세웁니다예루살렘에 돌아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다 돌에 맞아 죽고쉽게 죽지 않자 톱으로 썰어 죽였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큰 야고보가 아닙니까그래도 그는 천국에서도 작은 야고보라는 말을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주님 외에는 아무도 큰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큰 자로 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그것이 주님의 가르침임을 알고 있기에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고 자기의 사역과 순교에도 불구하고 작은 야고보로 만족하고 있을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영웅들을 원하지 않습니다수호지를 좋아하는 것은 108명의 군웅(群雄)들이 함께 활약합니다특별한 주인공이 없습니다모두가 주인공입니다그래서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들을 사랑하십니다작은 자들이 모여 큰 사역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성경의 인물은 작은 자들입니다사사기의 인물 역시 모두 작은 자들입니다작은 자들이 주님의 사역을 훌륭히 감당했습니다.

 

다섯 살 트레이시는 6시에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25분이나 늦었습니다엄마가 물었습니다.

트레이시왜 늦었냐?”

친구의 인형이 부서져서 늦었어요!”

인형을 고쳐 주느라 늦었구나!”

그러자 트레이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같이 울어주느라 늦었어요!”

 

울고 있는 아이에게 인형을 고쳐주는 사람도 중요합니다더 좋은 인형을 사다 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그러나 부러진 인형을 안고 울고 있는 사람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작은’ 야고보도 필요합니다때로는 작은 일 때문에 우리가 더 위로 받고 감동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이런 사람들이 늘빛교회에 많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큰 자이지만 스스로를 작은 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국교회늘빛교회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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