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싼 종이에서 예수 향기 난다!
고린도후서 2장 14~17절
서론
성경에 ‘향기’라는 단어가 66회 나옵니다. 냄새라는 단어는 37번, 합치면 100번 이상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향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향기를 받으시고…”(창 8:21)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9, 13, 17)
하나님은 나무나 풀, 꽃… 자연의 향기만 아니라 사람들의 향기를 더욱 좋아하십니다, 정결한 제물로 올려드리는 제사제물(시 66:15), 기쁘게 드린 헌금(빌 4:18),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엡 5:2)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어린 양 앞의 금대접에 가득한 향으로 비유됩니다(계 5:8).
15절은,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향기는 맡는 이들에게 상쾌함을 주고 기쁨을 주고 심신치료에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설명할 때 향기, 혹은 냄새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1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공동번역은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언제나 끼워 주시는’으로 번역합니다. 로마황제나 장군들은 전쟁터에서 포로들을 끌고 오면서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개선행진을 합니다. 시민들은 길가에서 향을 피워 냄새를 내어 승리를 축하하고, 쥬피터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개선 행진을 할 때에도 거리에서 향을 피우며 축하합니다.
바울은 이런 개념을 복음전도사역에 적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서 사탄을 꺾으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전을 알리려 거리에서 집에서… 향기, 냄새를 풍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14절,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향기나 냄새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로마황제나 로마시민들에게는 승리의 향기요 달콤한 냄새이지만 패전국의 왕이나 군사, 백성들, 개선행진에서 줄줄이 포로 신세로 끌려가는 자들에게는 황제의 승리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찬가는 죽음의 냄새, 사망의 냄새입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복음의 향기는 믿어 구원을 얻는 사람과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 향이 다릅니다.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의 냄새, 구원을 얻은 이들에게는 향기가 나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같은 냄새이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의 실재가 선과 악, 생명과 죽음, 동시에 두 가지 효력(效力)을 발생하는 것에 대한 개념에 익숙합니다. 방주와 무지개는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 광야에서 놋뱀 쳐다보면 살고 거부하면 죽고… 이런 이중적인 양면성… 유대인들은 토라에도 그런 기능이 있다 생각합니다.
“꿀벌이 주인을 위해서는 꿀을 간직하고 다른 자들을 위해서는 독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토라 말들은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의 약이고 세상 민족들에게는 죽게 하는 독약이다(Manson).
바울은 이런 개념을 차용해서 복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구원 받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고 구원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 이런 주장은 로마인들에게는 무식한 발언이었습니다.
왜냐? 유대인들은 이적(異蹟)을 중시하고 헬라인들은 지혜(고전1:22), 로마인들에게는 법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예수는 법에 의해 처단 받은 자입니다. 공공의 적이요 공적(公的)인 죄인입니다. 그것도 최악의 사형수를 처단하는 형벌, 소위 ‘악마의 사형도구’인 십자가에서 죽은 죄수입니다. 그런 사람을 구세주로 떠 받들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성을 지녔다면 어찌 이런 주장을…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미련하게 보이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을 향하여 사망에 이르는 냄새에 있는 자들이라 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맡고 살면 사망이 몸에 배이고 결국은 사망에 이릅니다. 이렇게 말하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마인들이나 세상이 좋아하겠어요?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너 지옥 간다!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지옥을 믿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물타기를 시도합니다.
17절,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혼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
“혼잡하게 …” 과일이나 생선장수가 좋은 것을 맨 위에 놓아 전체가 좋은 것인양 판매하는 부도덕한 상행위, 포도주에 물을 타 양을 많게 하여 질 낮은 포도주를 판매함으로써 과도한 이익을 얻는, 결국 속이는 행위입니다. 로마인들이 듣기 좋게 복음을 윤색(潤色)하고 세상에 맞추어 복음의 본뜻을 바꿉니다. 동성애 지지하느라 성경을 억지 해석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결국 향기가 나지 않고 썩은 냄새만 풍기게 된다고 바울은 경고한 것입니다.
향기는 모양도 없고 무색(無色)입니다. 풍기는 냄새로 존재합니다. 언제 풍깁니까?
-구약의 제사개념에서 제물이 죽어야 하나님 앞에서 향기가 됩니다(민 29:2)
-번제를 비롯한 제사제물이 태워 희생될 때 하나님께서 흠향할만한 산제물이 됩니다(레 2:9).
-바람이 불 때 나옵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아가 4:16) 시련과 환란에서, 밤중에 노래가 나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가 됩니다.
-꺾어져서 상처가 날 때 향기가 풍겨 나옵니다.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린다… 왜 하필이면 가시밭의 백합화 향기일까?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아 2:2)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면 향기 발생은 희생입니다. 나를 희생하지 않으면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썩은 냄새만 풍길 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향기 날리려면, 자신을 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항상 묵상하고 함께 살고 위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향기를 몸에 인격에 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싼 사람들은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인간 냄새가 아니라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면서 두고두고 여운을 남깁니다.
<그 청년 바보의사>는 내과의사 안수현에 대한 내용입니다. 부모님이 영락교회 장로님 권사님인 안수현은 음악과 책을 좋아하고 환자나 이웃에게 성가CD와 책 선물을 좋아합니다. 당직으로 있을 때는 밤 1시이건 2시이건 환자를 찾아가 침상에 머리를 묻고 몰래 기도해주고… 배고픈 환자에게는 컵라면을 끓여오고 죽을 얻어다 먹이는 의사입니다. 자기 환자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함께 울어주던 의사, 소아암 초등학생 환자의 생일을 기억하고 저 군포까지 모자를 사들고 찾아가서 보호자를 감동 먹이고 아이에게 한없는 기쁨을 주곤 하던 의사였습니다.
그는 환자의 병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면서 아픔을 헤아리고 마음을 위로하려 했던, 환자에게 성실하려고 했던 의사입니다. 주일성수를 생명으로 알았던 그는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믿음으로 청년회 찬양예배를 인도하던 예배자입니다. 30회 헌혈을 해서 적십자사에서 주는 헌혈유공장 은장을 받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국방장관 주치의이기도 했던 안수현은 사격훈련을 나갔던 사병들과 풀밭에서 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는데 감염되어 급성 유행성출혈열로 중환자실로 급송됩니다. 혈소판 수혈이 필요해 RH-A형의 헌혈을 부탁한다는 소식이 나갔을 때 하루 만에 병원혈액원은 너무 많은 기증자들이 나타나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33세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미혼이던 빈소에 4천명이 몰렸습니다. 의사 간호사들… 교회 선후배… 식당 아줌마… 매점 앞에서 구두 닦던 아저씨는 자신에게 항상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던 의사는 그 청년이 처음이라며 울먹였습니다. 예수님의 향기를 남기고 간 향기 나는 삶을 살다간 청년의사입니다.
‘생활거룩’을 읽은 초등학교 교사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먹고 살만한 집안 아들이 가난한 집안의 아이를 계속 괴롭히고 결국에는 학교폭력처리위원회로 올라갔습니다. 학교에서는 매뉴얼대로 처리하려 하자 피해자 아버지는 크리스천으로 용서한다며 관용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가해자 부모가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독자는 이렇게 씁니다.
<가해자 어머니도 집사였습니다. 그 때 값싼 용서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누구는 향기로 살았고 누구는 불쾌한 냄새를 풍겼습니다.
여행하던 나그네가 점토(粘土 )한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분위기를 느낀 나그네는 점토 냄새를 맡았는데 아주 향기가 좋았습니다. 나그네가 점토에게 물었습니다.
“이 고상하고 그윽한 향기는 왜 나는 것이냐?”
점토가 나그네에게 속삭입니다.
“나는 말이죠, 아주 예쁘고 기품이 있는 장미꽃과 함께 있었답니다.”
장미꽃이 떨어지고 장미꽃 향기가 묻으면서 점토조차 향기가 된 것입니다.(페르시아 우화).
결론
18세기 프랑스에 그르누이라는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천재이면서도 아주 혐오적인 외모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는 냄새에 관해서는 천재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채취가 없었습니다. 그는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최상의 향수, 즉 가장 좋은 체취를 얻기 위해 스물다섯 번에 걸친 살인도 마다하지 않은 집념의 일생을 살다가 발각이 되어 죽어갑니다. 그가 죽은 곳은 시체들이 썩어 가는 냄새로 코를 찌르는 묘지였습니다. 살인을 통해 그가 만들어 내는 향수들은 가짜였고 거짓 향수였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든지 여운(餘韻)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불쾌한 감정을 남기고 올 것입니까? 그러면 사망의 냄새를 풍긴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배어 있으려면 우리가 예수님에게 배어 들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우리가 떠난 후에 ‘참 좋은 형님이었고 좋은 아우였고 언니였고 누님이었고 삼촌이었다…’ 그런 여운을 남겼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복음전파에 향을 피워 좋은 향기를 풍겨준 사람들입니다. 그 향기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같은 향수라도 향기의 농도에 따라 향수의 종류가 나뉩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교회에 다녀도 인격의 향기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흠향하실만한 향기, 사람들의 코끝을 기분 좋게 하는 향기로 한 해를 살아갑시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추석 명절 예배순서 자료 (14) | 2024.09.06 |
---|---|
스토리(story)가 있어야 성공한다!(창세기 26:12~15) (4) | 2024.08.20 |
성장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누가복음 2:40, 52 (0) | 2024.08.16 |
그 일 후에…(창세기 22:9~19) (0) | 2024.08.16 |
왜 탄신(誕辰)이 아니라 성탄(聖誕)일까?(누가복음 2:15~20) (0) | 2024.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