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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하늘을 주목하니(사도행전 7:54~6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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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주목하니

사도행전 7장 54~60절

서론 

태국 원주민 모겐족은 시력(視力)이 9.0입니다. 독수리 시력이 학자마다 달라 5.0~9.0이라고 하니 독수리보다 더 좋은 괴력의 시력입니다. 한국인은 2.0을 넘으면 거의 시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시모네 아레나(27)씨는 시력이 6.0입니다. 방송이 그를 초대해서 경복궁에서 이순신 동상까지 600m밖에 있는 숫자를 보였더니 가볍게 읽어냈답니다. 광화문에서 시청역 앞까지 1km 밖의 글자도 읽어냈답니다. 몽골은 평균 시력이 4.0입니다. 몽골에서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뿐이랍니다.

 

한국인은 갈수록 시력이 나빠집니다. 멀리 보지 않고 하루 종일 컴퓨터에서, 요즘에는 태어나자마자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서 사니 눈이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눈이 좋아지는 비결이 무엇인가? 모겐족의 뛰어난 시력 비결은 먼 들판과 자연에서 생활하며 하루 2시간씩 구름을 쳐다보고 그 지역에서만 나는 열매 가루를 눈에 바르고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레나 가족의 시력을 평생 연구한 아로파 디오 박사는 “환경적인 요인이 아닌가 싶다”며 “늘 멀리 보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라 밝혔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항상 들판에서 생활하며 300~400m 멀리 본답니다. 멀리 보기에 눈이 좋아진잡니다.

 

여기에 9.0이 아니라 1000.0의 시력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님입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입니다. 지혜가 있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멀리 보았습니다. 그러니 땅에서도 하늘을 보는 시력이 생긴 것입니다. 땅에서 하늘을 살다 간 집사님 스데반! 55절,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늘을 주목하며 하늘에 계신 삼위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영적시력이 1000.0입니다.

 

우리도 눈이 좋아지려면 멀리보아야 합니다. 믿음도 좋은 믿음으로 살려면 멀리 보아야 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여 선택하고 결정했다면 그야말로 근시안적인 신자로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땅에서도 하늘을 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스데반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을 주목하는 스데반, 천사의 얼굴입니다.

스데반은 전도설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열거한 후 유대인의 아픈 데를 찌릅니다.

 

51절, 성령을 거스르고…

52절, 의인을 잡아 죽이고…

53절,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은 세 가지, 성령강림, 메시아강림 율법준수에 목숨을 걸었는데… 비판하니 모욕입니다.

 

저들은 스데반의 말에

 

54절, 마음이 찔렸습니다. 기분은 좋지 않지만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좋은 신자가 되는데 유대인들은 반발합니다.

 

54절, ‘이를 갈거늘’,

 

57절,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달려들어’

 

58절,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독기에 찬 얼굴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속국으로 산헤드린의회는 있어도 행정부와 사법부는 없습니다. 동족에게 사형선고는 내려도 집행은 못합니다. 율법에 어긋나면 돌로 쳐 죽이는 일은 용인됩니다.

 

돌에 맞는 스데반! 얼굴이 분노와 공포로 질렸을 텐데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6:15, 천사의 얼굴입니다. 천사 얼굴을 보지 못했어도 천사라면 저런 얼굴이야… 상상될 얼굴입니다.

 

같은 상황인데 가해자는 이를 갈고… 피해자는 천사 얼굴… 얼굴이 왜 바뀌었을까? 보는 게 달랐습니다. 유대교권자들은 54절, 그를 향하여… 스데반, 미운 사람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율법을 허는 자, 거짓 메시아를 전하는 사이비, 악마입니다. 악마를 바라보는 표정이 천사가 될 수 없지요. 그래서 이를 갈고 큰소리를 지르며… 돌로 내리쳐 죽인 것입니다.

 

스데반은,

55절,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 그의 눈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보입니다. 그러니 천사의 얼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얼굴 표정을 만들어 냅니다. 동물시체를 보면 얼굴이 찌그러집니다. 빨간 장미를 보면 화사해집니다. 웃는 사람을 보면 웃게 되고 미운 사람 보면 얼굴이 굳어집니다. 하늘을 보느냐 땅을 보고 사느냐? 그게 중요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누구로 보았습니까? 골리앗의 위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준 영웅으로 보았나요? 자기 사위로, 딸 미갈이 사랑하는 남자로 보았나요? 기름부으심을 받은 사람으로 보았나요? 원수, 왕권찬탈자로 봅니다. 그러니 평생 다윗을 주목했고 이를 갈다보니 악신이 들고 궁예처럼 광기어린 왕이 되고 맙니다. 끝내 세 아들과 함께 비참하게 전사합니다.

 

다윗이 아굴람 굴속에 숨었을 때 사울이 들어와 용변을 봅니다. 용변은 왕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고 무장해제 무방비 상태입니다. 왕은 용변을 본다? 상상만으로도 죄인데… 왕도 쭈그리고 앉으니 너나 나나 피차일반입니다. 권위도 없고…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의 용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우러러 봅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으심을 받은 왕! 지금 모양새는 우습고, 나를 죽이려는 원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이스라엘의 아버지입니다. 사울 대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며 살해는 아버지의 목을 베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살짝 옷가만 베어 증거만 남기고 살려줍니다. 어디를 보느냐? 하나님을 보면 죄인도 의인으로 보이고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의인도 죄인으로 보입니다.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허물만 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니까 허물만 보입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내 마음이 천사가 되면 모두가 천사로 보입니다! 

2. 예수님을 주목하는 스데반,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피부는 4년마다 바뀐답니다. 여성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하고 요즘은 중년남자들도 화장을 합니다. 남에게 예쁘게 멋있게 보인다는 것은 남에게 호감을 갖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도 있습니다. 나쁠 것은 없습니다.

 

자연산미인은 화장보다는 마음의 얼굴입니다. 마음 모양이 얼굴 모양이 됩니다. 마음이 변하는 대로 얼굴모양도 변합니다. 마음이 예쁘면 얼굴도 예뻐 보입니다. 내 눈에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모두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여러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눈이 안경이라고 예쁜 마음으로 보니 예쁘게 보입니다. 

 

스데반, 천사의 얼굴은 마음모양이 천사입니다. 미운 사람들, 원수들을 보며 어떻게 천사 마음이 될까요? 55절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선 것을 보고… 56절,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9절, “주 예수여 내 영혼을…”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스데반의 본성은 사람을 미워하라고 충동합니다. 얼마나 밉고 무서워요? 그러나 스데반은 예수님을 주목합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니 예수님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던 분! 그러니 예수님 마음은 하나님 마음이고 하나님의 긍휼로 내려다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합니다… 긍휼의 기도를 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우러러 보며 십자가의 마음을 알았고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같은 기도를 합니다.

 

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변 환경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주목하는 스데반, 이를 가는 소리에 기울이지 않고 십자가 예수님 기도소리를 듣는 스데반은 예수님 마음이 되었고 얼굴이 천사 같아졌습니다.

 

우리 얼굴은 어떤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 얼굴인가요? 링컨은 남자 나이 40이면 제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링컨은 얼굴에 책임질 수가 없어 수염을 길렀나요?

 

우리는 어떤 얼굴인가요? 천사 얼굴인가요? 심통 난 얼굴인가요? 심통이 난 얼굴은 “접근하면 발포한다”는 선전포고 같은 표정입니다. 그러면 정서적으로 전염되고 가족들도 교인들도 굳어진 얼굴이 됩니다. 이런 곳에 성령 충만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초청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다”(부루버 리튼)

 

예수님을 주목하세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세요! 그래야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주목하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환경을 보면 무섭고 흔들립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3년 반이나 가물었던 땅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를 내리는 물불의 사나이입니다. 그랬던 사람도 환경을 보고 도망갔습니다. 850명의 우상숭배 선지자들과 싸울 때는 그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주목하여 1대850으로 싸워 이기더니… 이세벨이 내 손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하나님을 보지 않고 이세벨 여왕만을 보니 여성과의 1대1 싸움에서 도망하고 로뎀나무 아래 엎으려 죽여 달라고 합니다.

 

이게 인간의 나약함입니다. 나를 의지하면 나뭇잎사귀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하나님을 주목하면 핵폭탄에서도 의연합니다. 그러기에 항상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 주목하는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풍랑이 이는 바닷물을 보면서도 잠들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될 때 어떤 상화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땅에서 하늘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3. 성령님을 주목하는 스데반, 바울을 태동합니다.

스데반은 죽음 앞에서도 그를 죽이는 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우러러 주목합니다. 그랬더니 천사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천사 얼굴은 하나님 얼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이 되다니,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100% 투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주목하더니 예수님께서 서신 것을 보았고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성령의 100% 통치를 받는 성령 충만한 상태이며 성화가 완성된 상태입니다.

 

56절,“성령이 충만하여”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과 교통하시는 성령의 모습, 형체도 없는 성령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은 100%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엘리야식 능력만이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은사와 방언으로만 성령 충만을 이해하는 것은 무속문화입니다. 성령 충만은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로 임명된 것이 엊그제입니다. 설교 실력도 있고 인품도 있기에 초대교회 목사로도 임명될 수 있습니다. 명예도 얻고 더 큰 지도자도 됩니다. 그만한 인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스데반은 자기를 내려놓는 일을 택했습니다. 업적도 내려놓았습니다. 지도자의 꿈도 접었습니다. 주님만을 증거하며 죽어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랬는데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했습니다. 천사의 얼굴로 그는 60절 마지막 …자니라, 바로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성령 충만은 자기를 포기했을 때 모든 결정과 결과를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나오는 바로 그 상태가 진짜입니다.

 

잤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깝지요! 그만한 인물이 이렇게 쉽게 가버리면 초대교회가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 선배 중에 7년 신학교 공부하고 졸업하자마자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얼마나 손해입니까? 그때 내 마음이 많은 의구심에 빠졌었습니다. 사역도 못해보고 죽을 것이라면 왜 고생은 시키나? 천국에서 신학이 필요하지 않는데 왜 신학공부를 마치자마자 데려가시나?  

 

스데반의 경우도 그렇지요! 스데반이 죽으면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 그렇게 성령충만한 사람이 계속 사역하면 초대교회에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납니까? 그건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항상 우리 생각보다 높고 지혜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을 통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 명령하셨습니다. 지상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초대교회 미션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죽음은 성령 충만의 씨앗이 됩니다. 스데반에게는 전도로서의 땅끝까지 증인이 아니라 순교로서의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역할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니까 그런 사실을 알게 되고 수용하게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천사의 얼굴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듯이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살았으면 훨씬 더 큰 이익이 초대교회에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나갑니까? 8:1을 통해, 스데반이 순교로서 두 가지 대단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의 순교로 비로소 초대교회는 미션을 행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에서 애찬을 나누며 상부상조하며 즐거움으로 살았는데, 그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미션을 놓쳤는데 스데반의 죽음은 그들을 흩어버리는 박해가 되고 흩어진 사람들은 미션을 감당하는 증인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이 만들어 낸 업적입니다. 살아도 할 수 없는 선교적인 업적을 죽으면서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열매가 있습니다.

1절,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은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돌 맞아 죽은 스데반에게서 보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보고… 그래서 기독교복음을 신학화, 교리화, 체계화한 위대한 복음주의자 바울이 됩니다. 기독교는 어떤 이들이 바울교라고 말할 만큼 바울이 끼친 공헌은 블루오션입니다.

 

그 바울을 누가 끌어냈습니까? 성령 충만한 스데반이 끌어낸 것입니다! 스데반이 살아서 아무리 많은 공적을 남겨도 바울 하나를 감동시키는 역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늘만을 주목할 때 엄청난 씨앗을 품는 교회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고 교회가 주목할 일입니다!

결론

헬라어로 인간은 ‘안드로포스’라고 합니다. ‘위를 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로되 땅만 보고 살면 생물로서의 인간입니다. 땅을 살면서 위를 보고 살면 영적인 존재 ‘안드로포스’가 됩니다.  

 

우리의 영적시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 시력으로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있느냐? 그게 우리 마음이 되고 인격이 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보고 천사가 됩니다.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 마음이 됩니다. 성령님을 보고 바울을 태동합니다.

 

어디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내가 보는 게 내 얼굴이 되고 마음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모겐족처럼 멀리 봐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땅에서 하늘을 살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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