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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설교가 맛있다] 하갈의 우는 기도(창세기 21:14~21)

by 강정훈말씀닷컴 202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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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의 우는 기도

창세기 21:14~21

 

창세기 앞장 대부분은 아브라함 부부가 주인공입니다. 그들 한 쌍은 아름다운 남녀주인공들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동양인의 신비한 분위기에 서양적인 활달함이 섞여 잘 생겼다. 거기다 아브라함은 대민족의 조상이라는 비전이 있고, 318명 사병을 거느릴 정도이니 대부호입니다.

사라 역시 90세가 되어도 임신 경험이 없기에 화사하게 물이 오른 중년여성의 몸매와 얼굴, 현숙함까지 갖추었으니, 왕들이 탐낼 만한 여인입니다.

 

이런 집안에 하갈이 들어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씨를 받아 동료들 사이에는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신분 상승의 행운을 얻었지만 그건 남들이 보기에 그렇습니다. 그녀의 삶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습니다. 하녀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이 되었으니 당당한 것만큼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혈혈단신 고아였기에 주변에는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소연을 사람 앞에 내어놓으면 당장은 위로하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뒤탈이 있습니다.

 

하갈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호소할 수 있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주님 앞에 나갔습니다. 그의 신앙은 아브라함의 집 안에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 하갈은 하나님 안에 나가 기도했고 그녀의 기도는 항상 눈물을 동반했습니다. 우는 기도시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눈물은 힘이 세다. 우는 기도도 힘이 셉니다.

하갈, 도망가다.

하갈은 애굽 여인으로(16:1) 여종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안에서 여주인의 권고로 씨받이, 대리모(代理母)가 됩니다. 임신이 되자 신분을 망각하고 가질 수 없는 욕심이 생겨버렸습니다. 전에는 여주인이 그리도 아름답고 현숙하고 그래서 부럽고 존경했는데 자신이 임신하니 온 천하가 제 세상처럼 보입니다. 잘나고 돈 많은 남자의 아기씨를 가졌다니, 사라가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불임증에 걸린 여주인은 속 빈 강정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부러운 여인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 2% 부족이 아니라 80% 부족입니다.

자신은 이전까지는 80% 부족처럼 보이지만 아브라함의 씨가 들어온 순간 온 세상을 가진 것입니다. 여종이라는 신분은 2% 부족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래서 분수에 넘치게 행동합니다. 하갈에게는 언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고마움과 기다림과 순종이 없었습니다. 운이 좋아 주인의 눈에 들었고 임신하게 된 행운으로만 알았습니다.

여주인 사라가 못된 행동을 보다 못해 남편의 허락을 받아 집안에서 쫓아내자 하갈은 임신한 몸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에 있으면 어차피 내 자식이 될 수도 없으니 이참에 아기와 함께 도망을 친 것입니다.

하갈이 임신한 몸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길을 막아서며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 합니다. 이때 하갈은 울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느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집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려야 아이가 크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갑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이스마엘입니다. 여기까지만 좋았다! 그리 크게 울 일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잠시 두 여인을 평가해 봅니다.

하갈의 잘못은 무엇인가? 당연히 분수를 넘는 행동입니다. 여주인이 선물한 행운을 분수에 맞지 않게 처신하다가 스스로 화를 불러온 것입니다.

사라 역시 정당한 처사는 아닙니다. 멀쩡한 여종을 대리모로 추천해 놓고 뒷감당을 하지 못하니 눈앞 추방으로 문제를 덮으려 합니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현숙한 여성으로서의 처사는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잘하고 있는 처신은 아닙니다. 기다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길에서 이탈했으면서 두 여인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합니다. 두 여인 모두에게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런 가족 구성원에서 가장 피해자는 하갈입니다. 그녀는 아브라함 집안에서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는 약자의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하갈, 울다

그로부터 15, 6년이 흘렀다. 사라도 아들을 낳았다. 못된 것을 먼저 배운다더니, 옛적에는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더니 이번에는 17세가 된 이스마엘이 막 젖을 뗀 이복동생 이삭을 희롱합니다. 이걸 보고 사라가 뚜껑이 열립니다.

하갈은 추방을 당합니다. 아들을 데리고 정처 없이 길을 나선 하갈에게 친정이 있나, 동족이 있나, 아들을 데리고 갈 데가 없습니다. 아들도 제 앞가림이야 하겠지만 아버지에게 추방당한 신세이니 맨붕(mental멘탈붕괴)이 생겨 젊은 혈기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며칠 견디니 물도 양식도 떨어졌습니다.

 

여주인에게 갑()질을 당한 하갈의 분한 생각에는 주인 부부가 작당해서 대리모로 이용해 놓고 추방해 버린 것입니다. 자기만 추방한다면 그래도 아들의 앞날을 생각해서 참겠는데 죄 없는 모자(母子)를 아무 대책도 없이 무정하게 쫓아내어 버린 것입니다. 경건한 집안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기에 가증하게 보였고 분노는 더 컸습니다.

하갈이 가출을 거절하고 아브라함 집에서 계속 억지를 부렸으면 언약의 집안은 어떻게 될까? 하갈은 억지를 부리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도 하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매달리지도 않았습니다. 추방을 당해 방황하다 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아들을 그늘 덤불에 있게 하고 떨어져서 하갈은 운다. 목과 눈으로 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웁니다. 내 심정을 알아주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어 하갈은 방성대곡합니다. 오래전 그때.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16:11)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6:13)

 

그 옛날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들어줄 사람이 없는 막막 들판에서 하갈은 하나님이라도 들으시라고 목을 놓아 웁니다. 임신한 몸으로 주인의 집에서 가출했을 때처럼 하갈아 어디로 가느냐그렇게 찾아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울었습니다.

잘 기도한 자는 잘 배운 자요 많이 기도한 자는 많이 우는 자입니다.”(루터)

하갈은 내 억울함을 들으시라고, 내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고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 그건 화려한 아브라함 부부 스타의 드라마에서 조연급도 못 되는 역할을 맡은 하갈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자, 위로이자, 숨통입니다. 눈물은 갑갑하고 꽉 막혀 죽을 것 같던 마음에 선물입니다.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랍비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Abraham Josuus Heschel)은 말합니다.

기도가 우리를 구해주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도가 우리는 구제될 가치가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하갈, 기도로 일어나다!

참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울기는 분명 하갈이 방성대곡했는데(21:16), 하나님께서 들은 것은 아이의 음성입니다.(21:17). 그것도 두 번씩이나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느라 아들 음성을 못 들었는데 소년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태생이 애굽 출신이지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비록 서자(庶子) 출신으로 언약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당당한 언약 집안의 핏줄입니다. 아버지에게서, 큰어머니에게서 믿음을 배웠다. 우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배웠다. 여주인 사라도 아들을 달라고 울며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훔쳐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이 기도합니다.

 

우리를 살펴주세요, 어머니의 눈물을 거두어 주세요, 어서 자라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눈물은 받으시고, 아들의 소원에는 응답하십니다.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1:18)

그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 네 아들이 기특하지 않으냐? 네 아들이 다 컸다!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라는 명령으로 하갈은 받아들인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보이듯, 눈이 밝아지며 아들의 앞날이 환하게, 하갈 자신의 길도 환~ 하게 열린다. 하갈은 아멘! 하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하갈의 눈물로 이스마엘은 잘 자랐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삭과 함께 나란히 장례식을 치르는 효도와 형제애를 보였습니다(25:9). 하나님 앞에서 우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울면 됩니다.

하갈의 눈물은 원망, 푸념, 탄식입니다. 여인의 한을 극복하지 못했던 눈물입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한을 극복하게 만든다. 기도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이 있는 눈물이 됩니다. 기도에 올린 눈물이어서 힘이 센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눈물은 믿음의 눈물기도입니다. 단순히 원망과 탄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미래를 맡기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셉니다!

 

앨빈 바클리(Alben W. Barkley) 미국 부대통령(33)9세 때 화재를 당했습니다. 강한 아버지가 나무에 기대서 끝났다!” “모든 게 끝났다!" 서럽게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이 집을 지어주고 식량을 도와주니 기대어 울던 바로 그 나무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브레클리가 추억하기를,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웃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우셨습니다, 는 말씀은 있다(11:35). 예수님도 힘들 때 우셨습니다. 사람들이 안타까울 때 우셨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우는 기도 눈물이라면 그 눈물이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의 이슬비입니다. 그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우는 눈물이라면 축복의 이슬비가 됩니다. 그것도 열두 두령의 조상(25:16)이라는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는 센 이슬비 눈물입니다. 기도가 세기 때문에 눈물의 힘도 센 것입니다.

 

(이 설교는 발행인의 저서 그래도, 기도는 힘이 세다를 정리한 것입니다. 단행본이 시중에 나와 있으니 52편의 설교를 한꺼번에 보시고 싶으면 구입해서 참조하세요.

오후예배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에 연속으로 하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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