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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설교도 맛있다] (성탄) 여호와의 열심이 이룬 성탄(이사야 9:1-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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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열심이 이룬 성탄

이사야 9 1-7

 

 

서론

지금은 성탄을 준비하는 강림절 기간이고 곧 성탄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탄절 역사는 2천년이지만 대한민국에 성탄절이 들어오게 된 것은 기독교 역사로만 볼 때 140년입니다. 140여 전 이전에 천주교를 통해 들어오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성탄절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왕조가 기독교전래를 막았고 특히 1863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청국을 제외한 모든 외국문물에 쇄국정치를 하는 바람에 기독교전래가 많이 늦어졌고 그만큼 2천년 성탄절의 역사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15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성탄절 역사는 (인간적인 용어로는) 구구절절 사연이 많습니다. 성탄이 인간 세상에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이지만, 성탄에 대한 예고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에덴에서의 추방은 장소의 이동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단절로 아담 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지워지고 거룩한 하나님과 단절되니 부패한 존재가 되고,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단절되니 죽어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죽는 걸로 끝나면 다행인데 하나님께서 사단과 추종자들을 가두려 만들어 놓은 지옥에 들어가고 영벌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 자손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계약을 맺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는 회복과 구원의 은혜언약입니다. 전에는 행위를 담보로 하는 계약을 맺어 영생과 멸망의 결과가 있었지만 은혜계약은 인간의 행위와 관계없이 은혜로만 구원해 주신다는 은혜의 언약이자 은혜의 약속, 은혜의 계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위계약에서 덥석 은혜계약으로 나가시면, “너는 정녕 죽으리라”(3:3)는 하나님의 선언, 공의가 묵살됩니다. 이는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본성과 상치됩니다. 하나님은 한 입으로 다른 두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고’(?) 당신이 한 말을 없는 말로 치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신 말은 꼭 지키시며 그 말씀을 거두어들이실 때는 다른 조건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채워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에서 은혜언약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 신분인 아담과 은혜언약을 맺기 전에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구속의 계약입니다. 

 

구속의 계약은 성부와 성자 양자 사이에 맺은 하늘의 계약입니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어진 구속의 계약인즉,

성자는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들어갈 것이며(성육신) 완전한 사람이 되어(인성)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다가(임마누엘) 십자가와 죽으심을 통해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부는 (신성을 지니기는 했지만) 완전한 인간 독생자를 속죄 제물로 받으시고 죄인들의 죄를 없애주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신다! 예수의 죽음이 완벽한 죄사함이 되기 위해 성자의 부활과 승천을 거쳐 원래의 성자 하나님의 지위로 귀환시키시고 장차 온 인류, 그리고 만물의 심판관을 내주시겠다! 이것이 구속 계약의 내용입니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구속의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추방당하기 전에 아담에게 은혜계약서를 써주시면서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이 예고의 말씀을 원시복음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예고하시고 경고하신 말씀으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최초의 구속 약속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여자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인류의 타락 직후에 주어진 최초의 복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암시합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이고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계약에 근거해서 구세주를 보내주시고 믿게 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내용이기에 복된 소식,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아담은 물론 그 자손들은 여자의 후손이 속히 오셔서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를 고대했습니다. 시대마다 당장 그 시대에 여자의 후손 구세주가 오시기를 희망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승천 당시부터 시대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간절히 발하던 소망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연대로만 따져도 4천년동안 성탄의 복된 소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아담의 몇 대대손손의 구원, 아브라함의 혈통들, 유대인들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는 온 인류가 들어있기에 인류가 온 세상에 퍼지고 그들에게 복음이 잘 전달될 여러 상황과 조건들을 충분히 살피시고 가장 좋은 시기에 보내신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를 바울이 잘 정리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4:4).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때가 차매”, ‘하나님 아버지의 정해 놓으신 때가 이르렀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작정한 기간이 지났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일정한 기간 동안 율법에 매여 있었던 암담한 상태가 끝났음을 암시합니다.

 

유대인은 세월이 지나면서 은혜언약, 여자의 후손 독생자를 통한 은혜언약을 져버리고 율법을 통해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고 결국에는 행위로 구원을 받겠는다는 행위계약으로 돌아서 버린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한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자신들도 안 되는 일을 백성들에게 강요했고 백성들은 그 가르침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죽어라 지켰지만 그럴수록 율법은 옥죄이는 사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막바지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NIV 성경은 때가 차매 시간이 충만하게 임하였을 때’(When the time had fully come)라고 번역합니다. 그 충만은,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함으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무기력과 곤고함이 최악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것에 대해 당시의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복음이 씨앗을 내리고 잎사귀가 무성해 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입니다.

-평화가 말라버린 시대였습니다. 세계는 로마 제국으로 힘이 쏠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로마제국이 권력의 평화가 아니라 참된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4백 년 중간기 동안 예언은 중단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느 때보다 예언되어진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회당이 각처에 설립되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자구책으로, 동족의 정체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복음의 전파소였습니다. 이런 회당이 로마제국을 중심으로 수천 개가 설립되었습니다.

-로마가 대제국이 되고 군사도로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그 도로는 복음의 실크로드 즉 가스펠 로드였습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여자의 후손이 구속사역을 위해 들어오기에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최적의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많은 시간대를 놔두고 이때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하나님의 시간이 움직이는 카이로스입니다. 예수의 복음이 순식간에 온 세상으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상태가 구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범사에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때가 되기까지 잘 웅크리고 있는 사람은 비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기 전에 섣불리 행동하는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하나님의 때를 응시하며 그때를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4천년동안 성탄의 복된 소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두 번째 이유는, 사탄의 훼방 때문입니다. 

물론 사탄의 훼방이 구세주의 강림이 늦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외면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명과와 선악과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탄은 엿들었습니다.( 2:16, 17). 사탄은 직접 명령을 들은 아담을 제치고 직접 말씀을 듣지 못한 하와에게 접근해서 말씀을 변개합니다. 사탄의 영악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

 

살짝 하와로 하여금 의심병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추방당하는 아담에게 하신 말씀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자신을 상대한 말씀이지만 그건 인류에게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저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다면 하나님의 원례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며 사탄 자신은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여자의 후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아야 했습니다.

 

-가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사라의 자식이 아니라 하갈의 자식으로 만족하도록 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바로로 하여금 히브리남자들을 모두 죽여 민족말살정책을 쓰게 했습니다.

-헤롯을 들어서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막지 못하자 33년동안 계속 따라다니면서 십자가행을 방해했고 부활하지 못하게 무덤문을 봉인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여자의 후손 구세주가 인류에게 성육신과 구속 사역을 하지 못하게 훼방하면서 한편으로는 왜곡시키려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이라면 누구라도 여자의 후손 혈통이 될 수 있다~

-율법으로도 얼마든지 의로워질 수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가짜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행위가 합쳐져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울이 만든 종교이다~

-예수님의 인성은 믿되 신성은 믿을 바가 못 된다~

사탄은 이런 왜곡된 가르침으로 에덴동산 이래로 작업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놓쳤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 철통같은 방어막을 깨시고 인류에게 들어오셨던 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메시아 전문사역자 이사야 선지자가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이런 분이 오셔서 1절로 갑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3절에서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나라와 민족과 개인이 창성하게 되는 즐거움, 추수하는 즐거움,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주 앞에서 즐거움입니다.

 

어떻게 전에 고통 받던 자들, 흑암이 없던 백성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빛을 주시기 위해 구세주는 오실 수 있었습니까? 사탄이 그리도 방해공작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들어올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막고 진정한 구세주가 아니라 짝퉁 구세주를 대망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참빛이 올 수 있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7절 끝자락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할렐루야~

 

여호와의 열심이란 말은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왕하 19:31)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7:32)

 

그리고 지금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열정, 추진력, 인내심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열심이 없었다면 아브라함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없었을 것이며 내가 없습니다. 약속을 지켜나가는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열정의 역사가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고 야곱은 이스라엘이 됩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에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역사도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바벨론으로의 이주, 70년을 시련과 연단으로 성결케 하심도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구약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는 설명이 안 됩니다. 마땅히 역사의 무대에서 수메르처럼, 앗수르처럼, 로마제국처럼 사라져야 합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에 흩으면서라도 이스라엘을 존명시키는 것은 그들에게서 메시야를 보낸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성탄의 아기 예수도 없습니다. 아기 예수는 에덴에서 인류를 위해 약속하셨고 인류가 그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이 굴었지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성실함에 근거해서 약속을 지키셨고 구세주가 오시게 된 것입니다. 성경저자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열심을 알리기 위해 붓을 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열심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스불론과 납달리 갈릴리 땅이든 사람이든 한번 약속하시면 그 땅에 들어가서 일을 만들어 내십니다. 그 사람 가운데 들어가셔서 선을 만들고 구원을 이루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오늘의 설교제목이나 강조점은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성탄에 이 하나님의 열심을 보아야 합니다. 천하고 멸시받던 고통의 땅 갈릴리를 성지(聖地)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에서 내 안에서 존귀한 자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추진력을 보라는 것입니다. 성탄절에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 교회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가실까?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 개인들을 어떤 사람들로 만들어 내실까? 여기에 서로간의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위대한 반열에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성탄절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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