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설교도 맛있다] (종교개혁주일)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자!(에스겔 8:14~1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5. 10. 11.
반응형

강정훈 목사 신간 "모세도 그랬어"

"탄탄한 주해와 풍부한 문학적 표현 돋보여
모세의 일대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 조명 "(기독신문)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자!

에스겔 8장 14~18절

 

서론

한국교회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킵니다. 물론 기념하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가 종교개혁주일로 지키던지 지키지 않던지 종교개혁의 정신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은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게 만든 진정한 교회의 회복입니다.

루터가 1500년의 묵은 종교를 개혁했다는 것은 모세가 한 일에 비교할 수 있는 엄청난 일입니다. 그만큼 로마가톨릭의 권력과 바위처럼 굳어진 제도와 관행에서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달리는 자동차에서 펑크가 난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만큼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개혁은 인류에게 주어진 운명입니다. 개혁 없이는 인류의 발전적 미래가 없습니다. 인류는 개혁하는 것만큼 발전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유형(有形)교회는 없습니다. 한군데 오래 고여 있는 고인 물은 태생적으로 썩는 것처럼 모든 교회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개혁하지 않으면 썩게 되고 부패하게 됩니다.

 

오늘 종교개혁 508주년을 맞으며 교회의 개혁적 사명에 대해 생각하겠습니다.

1. 종교개혁의 정신: 비성경적인 종교제도를 개혁하자!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는 주후 3백 년 동안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네로 황제를 시작으로 열 명 이상의 로마황제들에 의해 무섭도록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일신 경배-일본 태생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당시 로마는 30만개의 신이 있었다합니다. 기독교도들은 유일신 외에는 인정하지 않자 핍박을 받았습니다

 

*노예제도 불인정-로마는 노예가 태반입니다. 노예는 노동력의 9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인들은 노예들을 형제로 맞이했습니다. 이런 식의 종교가 기승을 부리면 로마는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황제숭배 거부-로마는 영원한 제국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려면 황제는 종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는 핍박 대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무섭던지 기독교인들은 땅굴을 파고 땅굴 도시를 만들고 3백년이나 거주했습니다. 굉장한 저항력이자 생명력입니다.

 

주후 313 2월 콘스탄틴 대제가 동방의 황제 리키니우스와 함께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밀라노에서 발표했다하여 밀라노칙령이라 합니다. 이미 기독교가 특히 군대에서 기독교는 무서운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어 그 생명력 넘치는 힘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모후(母后)가 기독교인이 되자 정치지향의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개종은 정치적이고 입신출세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종교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로마의 대표적 종교는 바벨론 종교입니다. 바벨론에는 여러 종교제도가 있었는데 수장(首長)제도(교황제도), 독신제도, 고해성사제도, 여신(마리아) 숭배, 성자숭배 로마교회가 바벨론 사제들과 정치적, 종교적 결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벨론 종교의 제도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본문에도 이미 담무스라는 신을 섬기고 있는 유대인을 봅니다. 언제나 교회는 우상들에 노출되어 있었고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하는 부류가 있기에 개혁은 교회의 운명입니다

교회의 혼합-1500년대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로마가톨릭은 성경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종교=바벨론 종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가톨릭의 장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우리 개혁교회는 한 나라에 들어가면 타협하지 않고 그 지역을 복음화하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문화 간의 충돌이 있습니다. 좋은 예가 한국에서의 주초문제와 제사문제입니다.

 

로마가톨릭은 종교를 지역에 맞게 토착화시켜버립니다. 한국천주교는 일본의 신사참배에 저항다운 저항 해보지 않고 그냥 손들었습니다. 주초문제도 제사도 어느 때부터 허용했습니다. 제사에 반대하다 죽은 순교자들을 성인(聖人)으로 추앙하고 제사도 허용하는 것이 가톨릭의 이중적 모습입니다. 이런 이중적 모습은 저항이나 박해도 받지 않지만 복음의 변질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한국 천주교를 서양불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로마에 들어온 기독교의 변질도 꼭 같습니다. 기독교가 바벨론종교로 혼합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가톨릭의 사제이자 신학교수이면서 수도사였던 루터는 성경을 읽는 중에 이런 제도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1517 10 31일 자신이 봉직하던 비텐베르그 대학정문에 95개항의 건의문 내지 시정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루터가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은 교회제도의 개혁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교황제도를 없애고 마리아숭배를 버리라는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종교제도보다는 교리 쪽의 개혁을 더 원했습니다. 교황청이 조금만 루터의 요구를 수용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교황청의 권위주의가 한 사제를 건방지다 몰았고 선한 개혁의 요구를 묵살하다 결국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것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2. 종교개혁의 정신: 비복음적인 종교교리를 개혁하자!

마르틴 루터가 처음부터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은 교리 쪽의 개혁입니다. 라틴어성경을 독일말로 번역해가면서 성경에 없는 제도를 도입해서 교황청이 부패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대놓고 교황청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막강한 권력으로 국가 위에 군림하고 황제도 교황에게 복종하던 시대였습니다. 교회는 사제와 신도들의 파면권은 물론 사형권도 갖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서 파면당하면 인생 끝장! 입니다. 그래서 교황청에 대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문제는, 교황청의 면죄부, 일종의 천국 복표를 팔면서 터졌습니다.

 

면죄부가 로마교회에 등장하게 된 것은 1014년경 프랑스 남부입니다. 교회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모두 8(10961291)에 걸쳐 치러졌습니다.

1506년 레오 10세는 베드로대성당의 건축 재정이 모자라자 면죄부를 팔았습니다이것을 사기만 하면 죄가 사면되는 데 자신의 죄는 물론 이미 죽은 사람의 죄도 사해지고 돈의 액수에 따라 천국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면죄부 장사꾼인 티첼이 비텐베르그에 와서 선전하자 루터는 대노(大怒)해서 95개조항의 반박문을 정문게시판에 걸게 된 것입니다.

21-“교황 이름으로 된 면죄부를 사면 죄의 형벌이 면죄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7-“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찰랑 소리 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들이 연옥 밖으로 뛰어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허황된 거짓말이다.”

45-“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86-“엄청난 부()를 소유한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가난한 크리스천의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루터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면죄부에 대한 것을 학문적으로 대학 안에서 토론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을 로마교회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루터를 매장하려들자 평소 교황청에 불만을 품었던 제후들이 그의 편이 되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교황청이 순순히 루터의 주장을 수용했다면 아직도 세계교회는 교황청의 수하에 있고 복음은 어둠에 가려져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 출애굽운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같은 섭리로 교황청으로 무리수(無理數)를 쓰게 하심으로 성경적 교회를 그 안에서 이탈시키고 예루살렘 원() 복음으로 돌아서게 한 것입니다.

 

루터가 주장한 종교개혁의 3대 원리는,

 이신득의-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교황도 성경 위에 있을 수가 없다.

 만인제사장설-누구든지 직접 중개자 없이 하나님께 나가고 기도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성경의 가르침(복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성경적 교회(예루살렘교회)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개혁은 종교분열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로 돌아가자는 회복운동입니다. 우리는 그냥 이탈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이 오히려 예루살렘에서 벗어나 다른 교회를 만들고 바벨론종교로 세상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집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유일한 복음주의교회입니다.

3. 종교개혁 정신: 세속화된 나 자신을 개혁하라!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것은 새삼스레 교황청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설교는 모든 분들에게 환영받는 설교는 아닙니다. 로마가톨릭에서 오신 분들도 있고 형제들이 성당에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주일이 될 때마다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은 성경적 교회가 종교적 교회의 차이를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늘빛가족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일 뿐, 교황청을 공격하거나 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로마 가톨릭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508주년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종교의 개혁은 크게 셋으로 나눠야 한다고 봅니다.

 종교의 개혁-종교가 지나치게 교권화, 정치화, 제도화, 물량화하고 있습니다. 교단의 세력들이 너무 큽니다. 아무도 종교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한국천주교를 건드릴 수 없고 조계종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종교의 정치적 목소리가 너무 커지고 교단과 종단이 지나치게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경쟁세력들이 있어 교권을 놓고 서로 싸우고 헐뜯고 있습니다. 종교 본연의 모습보다는 교권주의자들로 종교의 참 모습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종교는 국민들이 정치권이 개혁하기 전에 스스로 개혁해야 합니다.  

 

 교회의 개혁-교회가 지나치게 외형적으로 성장하려다보니 성경 교리에서 벗어납니다. 정통교회는 권위주의와 교권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이단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지금의 이단들은 영성운동을 가장합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웃고 떠들고 최면술의 일종이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동네마다 영성원이라는 이름으로 교인들을 유혹하고 우롱합니다.

교회는 대형화되고 물권(物權)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교단 총회석상에서 총대들의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가. 그걸 왜 실시간 중계로 세상에 보여주는지

이런 것들이 개혁되지 않으면 교회는 군소종교로 전락하게 되고 한국사회도 이슬람에게 자리를 내줄지 모릅니다. 교회는 스스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성도 자신의 개혁-지금 한국사회에서 왜 개혁이라는 단어가 외면당하고 있을까요? 자기는 개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만 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외치는 입장에서는 더 철저한 자기반성과 함께 자기를 먼저 개혁해야 합니다. 개혁의 대상보다 개혁을 외치는 분들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과 윤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신들은 뒤에서 불법하면서 남에게 개혁을 외치니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뜯어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뜯었으면 고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개혁운동은 박살은 내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쳐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개혁(改革)은 좋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에게 식상한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교회 개혁을 외친다면 개혁의 칼끝을 자신에게 들이대야 합니다. 손가락을 보세요. 남의 허물과 실수를 지적할 때 손가락 두개는 상대방을 향하지만 세 개는 자신을 향합니다. 교회가 우리 자신이 그 원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에 대한 열망은 있어야 합니다. 루터의 의분(義憤)없이 어떻게 개혁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의분(義憤) 1차적 대상은 자신입니다. 자신에 대해 엄격한 사람들,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개혁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우리 교회가 개혁주의 교회라는 것, 그래서 개혁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인 모두가 완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날마다 자기반성과 성찰, 완성을 향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만큼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주일에 교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애정을 더욱 가져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고단한 당신에게 전하는 위로'

## 모세도 그랬어

지금 주문할 수 있습니다.

https://store.kyobobook.co.kr/bestseller/online/daily/domestic/21?page=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