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생명나무의 성령 열매⑧ - 충성(忠誠)
갈라디아서 5장 19~24절
서론
오늘은 생명나무에 열리는 성령열매, 충성(忠誠)입니다. 어떤 성경은 충성을 믿음으로 번역합니다. 성령의 열매에 왜 충성-믿음을 넣었을까요? 갈라디아교회의 일부 믿음에 질병이 생겼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바른 믿음이 약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때 갈라디아지역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믿음의 내용으로서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죄사함의 은총과 의인 신분이 되는 권세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여 굉장히 기뻐했고 감격했습니다.
7절,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잘 하더니… 잘 믿더니… 충성을 다하더니… 바른믿음! 바른신학! 바른복음으로 달음질, 쑥쑥 성장하더니… 초신자들이 얼마나 잘 믿는지요! 그런데, 누가 그 믿음을 막아섰습니다.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누가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충성하지 못하게… 누군가, 바른 믿음의 트랙track)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내용을 변질시킨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가요?
4절,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이들이 유대주의자-율법주의자들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영향력이 강한 유대인들이고 그리스도교로 개종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나자 인본주의 기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어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구원의 길이 이방인들에게도 열렸지만 의인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되고 율법을 준수해서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바울이 전한 순수한 복음에 완전히 덧칠을, 90% 덧칠을 한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 처음에는 앗싸! 했지만 감격이 식어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공짜 믿음은 세상에 없지요. 모든 인간의 종교적 본성에는 권선징악, 상선벌악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레 공로사상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주셨다 해도 여기에 공로를 덧붙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어떻게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1장에서 네 번이나 연속으로 거론한‘다른 복음’(6, 7, 8, 9절) 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로마서와 함께 기독교교리를 이루는 복음의 진수, 성경의 진수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구원이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을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율법이란 타락한 인간이 내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주님의 은총이 아니면 결코 구원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이 로마교황청과 싸웠던 종교개혁가들의 3대 정신 중의 하나입니다. 갈라디아서 견지로 보면, 바티칸은 지금도 갈라디아교회에 준동했던 구원공로사상을 이어가는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은 1장 6절에서 내가 전해준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긴다! 7절, 다른 복음은 없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란시키려는 거짓복음일 뿐이다! 그러면서 9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상당히 강공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제기되는 의문이 소위 구원파교리입니다. 오직 은혜로 죄사함 받고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는다면 행위가 필요 없겠네? 행위가 구원을 받는데 보탬이 안 된다면 막 살아도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겠네? 그러면 율법이 무슨 소용이 있어? 선행이 무슨 소용이 있어? 구원의 은혜를 남용하면서 율법폐기론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이 말합니다.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 대답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단순히 성품 문제, 성격개선의 조항이 아니라 율법에서 자유함을 입은 사람들은 율법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의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율법주의자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라! 그 기준이 아홉 가지 성품 내지는 행동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들을 보세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율법으로는 도무지 이룰 수 없습니다. 율법은 무거운 짐입니다. 지킬 수도 없는 기준을 정해놓고 자기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남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이상야릇한 일들을 서슴지 않으니 바울이 당연히 이걸‘다른 복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오는 복음은 기쁘고 즐거운 굿뉴스입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 기쁨 서로 평화… 사랑하기에 오래 참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자비(친절) 수고와 손해가 있음에도 선을 베푸는 양선… 복음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성향이자 성품입니다. 구원을 받기위한 조건으로 이렇게 살면 얼마나 짐이 됩니까? 그러나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남에게 선을 베풀면서 행복해하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차원에서 충성열매를 주문합니다.
충성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특히,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충절을 말합니다.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의 외길이지요!
이성계 아들 방원이 술자리에서 고려의 충신 정몽주에게 시(詩) 한 수로 회유합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일명 “하여가”입니다.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를 남깁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한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이것이 충성입니다. 한문으로 풀면 더 좋아요! 충성 충(忠), 충은 마음 심(心) 위에 가운데 중(中)이 있습니다. 마음 중심, 성(誠)은 정성 성(誠)입니다. 성은 말씀 언(言) 이룰 성(成)의 조합입니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충성은 마음 중심과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일구일언(一口一言), 그게 진정한 충성입니다. 그야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임금을 배반하지 않는 지극 정성의 그 마음을 중국인들은 충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 이후, 성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이런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수용함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유일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우리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냥 믿음이 아니라 충성을 다해 믿는 것입니다. 일편단심의 마음이 충성의 믿음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해주신 일, 그 내용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사 내 죄 사해주시고 부활시켜 우리를 의인신분으로 만들어 주신 것! 이것이 믿음의 내용이자 믿음입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누가 뭐라고 해도 믿는 것이 충성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신념과 충절을 버리지 않는 것이 충성이요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이면 믿음입니다. 이렇게 충성과 믿음! 믿음과 충성은 같은 단어입니다.
충성을 성경에서는 온전함이라고 합니다.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민 14:24).
여기의 ‘온전’이‘한 방향’‘일편단심’ 충성심입니다. 갈렙은 85년 생애에서 어려운 고비를 몇 번 만났습니다. 12명 정탐꾼으로 뽑혀 어떤 보고를 할 거냐? 선택의 갈림길에 있던 청년의 위기! 여호수아와의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의 쓴맛을 맛본 중년의 위기, 2인자로 여호수아를 도와 맹활약을 했지만 손에 잡은 것이 없던 장년의 위기! 이런 위기에서도 갈렙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믿음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종 갈렙은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충성은 헌신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내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원칙과 신의를 지키며 묵묵히 한 길로 가는 것, 이것이 충성이자 헌신이며 온전함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출발은 좋았지만 뒷심이 약했습니다. 충성의 대상은 놓치지 않았지만 충성의 내용에서 실격(失格)한 것입니다. 달리기에서 아무리 빠른 속도로, 정성을 다해도 트랙을 벗어나면 실격입니다. 지금 갈라디아교인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충성, 헌신된 자는 자신에 대해서도 충성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충성은 성실이자 신실함입니다. 자신에 대해 성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충성하면 남들이 그 충성의 순수성을 의심합니다. 다른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이 없이 하나님께 충성만 일삼는다면 누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존경합니까? 스스로 생각에도 자존감이 약합니다. 그래서 참 기쁨이 없는 것이지요!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성실하고 신실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도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다면 진정한 성공이자 업적이 아닙니다. 욥은 친구들과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서 조롱과 비웃음을 당합니다.(16:20, 17:2, 30:9),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12:4),
어제의 영웅이 오늘에는 비웃음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27장 6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도 자신은 양심의 가책이나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나는 나를 비웃지 않으리라! 이것이 자신에 대한 충성-성실-신실함입니다. 교인들은 이런 면에서 강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성실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또 진정한 충성은 남에 대한 신실함입니다. 신실은‘확고하게 약속을 지키거나 의무를 준수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에서 신실한 사람은 정직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에게 충성했고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아들의 신부감을 구해오라며 미션을 주었는데 기도로 출발하고 신부감을 찾았을 때 주인의 애타는 마음, 신부를 기대하는 도련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자기 책임을 완수했던 종!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그는 성실함의 대명사입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되었을 때 대적들은 고발하려 했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충성되어…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반대어는, 부정(不正), 부주의함입니다. 부정은? 정직하지 못하고 윤리적이지 못함입니다. 부주의함은, 주의 깊은, 사려 깊은, 신중한, 의 반대어입니다. 다니엘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원칙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언행(言行)과 개인적 일에서의 절대적인 정직함은 신실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충성-충실, 성실해야 합니다.
양심에서 신실해야 하고 중심이 신실해야 하고 언어에서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이나 시간을 가볍게 여기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친구들과의 유대관계에서 충성은 언제나 변함없이 꼭 달라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가 잘 되거나 어렵게 될 때도 변함없이 붙어있는 것이 충성이며 신실입니다. 요나단은 왕위를 내놓는 대가에서도 친구에게 충실했고 다윗은 끝까지 요나단의 아들을 책임졌습니다. 이것이 충성이자 충실입니다. 이런 성령의 열매가 있을 때 전인격적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성령이 만들어 가는 성화(聖火)의 중간단계들이 계속 나오며 성장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결론
소나무는 충절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전국 소나무들이 재선충병(材線蟲病)으로 죽어갑니다. 재선충은 공생관계에 있는 솔수염하늘소(수염치레하늘소)의 몸에 기생하다 하늘소의 성충이 소나무잎을 갉아 먹을 때 나무에 침입하는 소나무선충입니다. 일단 감염되면 100% 말라 죽기에‘소나무 에이즈’라 합니다.
재선충의 크기는 0.6~1㎜입니다. 실(絲)처럼 생긴 선충으로,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에 의해서만 이동이 가능합니다. 이동 거리는 짧게는 100m 안팎, 태풍 등을 만나면 3㎞ 정도까지 가능합니다. 크기가 작고 투명해 육안으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 이런 선충으로 충성의 기상이던 수백 년 소나무들이 시뻘겋게 말라 죽습니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어도 내충성(耐蟲性)이 있는 소나무는 푸르른 기상을 유지합니다. 내충성은 나무나 농작물 따위가 곤충이나 벌레의 해를 입지 않고 잘 견디는 성질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 충성입니다. 충성은 다른 복음이라는 재선충병, 막 살아도 된다는 율법폐지론자들의 재선충병으로 수백년 유럽교회들이 병들어 죽어갈 때 복음의 내충성으로 푸르고 푸른 믿음을 간직하도록 붙들어 주는 성령의 힘이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한국교회가 짧은 기간 동안 세계기독교역사에 선교기적을 이루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기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충성신앙입니다. 선교초기 조상제사 핍박에도 순교로,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에도 순교로 충성심을 보였던 그 내충성 믿음-내충성 헌신이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교회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충성도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충성은 올인이지만 지금은 올인하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더욱 올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액세서리로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취미생활 내지는 종교성향으로 왜소화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한탄합니다.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 20:6)
충성이 없는 세대에 충성심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는 신실함으로 하나님의 시상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된 믿음을 제대로 물려줄 때 우리는 아브라함의 종처럼, 갈렙처럼 하나님의 시상대에 설 수 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23)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아홉 가지 열매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상급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상급을 받습니다. 자기에게 성실한 사람은 자존감이 높습니다. 남들에게 신실한 사람은 인정을 받습니다. 이익과 상황에 따라 주인을 바꾸는 세상에서 영원한 하나님에게 충성하여 영원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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