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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박힌 못 (이사야 22:22~2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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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잘 박힌 못

이사야 22장 22~25절

 


<서론>
  
우리교회 화가(畵家) 장 집사님에게서 큰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유채꽃이 있는 좋은 그림이더니 이번에는 백두산 풍경으로 엄청 큽니다. 몇 호 그림이나 되는지… 어떻던 굉장히 큽니다. 그림틀 액자 제작비만 해도 수십만 원은 족히 될 것 같아요! 

그림과 액자가 크다보니 무게가 꽤 나갑니다. 벽에 못을 약하게 박으면 그림이 떨어진다고 든든하게 박아서 걸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 두 명 전도사 두 명… 남자만 넷이 동원되어 열심히 못질하고 그림을 걸었습니다. 내 방에 그림 구경 오세요! 집사님이 재능기부를 하고 있으니 그림도 연습해서 교우들에게 선물도 하세요!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그런데요, 그림이 멋져도 못이 부실해서 떨어지면 틀이 파손되고 혹이라도 그림이 손상되면 가격도 팍! 떨어집니다. 그림만 단단치 못한 못에 걸어놓았다가 떨어져 파손되나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 심형래씨가 영화를 제작하고 빌린 100억 원가량의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해 개인파산을 신청했답니다. 한 때는 최고 연예인 중의 하나였지만 영화에 걸었던 못이 빠지니까 꽈당~ 개인파산까지 맞은 것입니다.

 

정치는 안 그런가요? 유명한 분들이 청문회를 거치면서 엄청 깨집니다. 할 만한 분들도 가족반대가 심해 당선인 측에서 전화가 오면 손사래를 친답니다. 이해되는 게, 큰 명예와 부귀영화를 얻고 살았는데 한 자리 더 얹어보려다 꽈당! 못걸이가 떨어져 망신 삽니다. 이런 식이면 목사를 내세워도 국회청문회 쉽게 통과할 수 있을까요? 전도사 때 새벽기도회 나가지 못한 것까지 들출 거예요. 그만큼 청문회 신상털이가 성직자 세우는 수준보다 더합니다.

못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는 수단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명예, 건강, 행복을 유지해 주는 상징, 아이콘입니다. 이 끈이 끊어지면 별 사람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에서 못이 단단히 잘 박혀야 합니다. 금년에 믿음 못이 제대로 박히기 바랍니다. 건강 못도 잘 박히기를 바랍니다. 재물 복도 잘 박힌 못이 되어 주렁주렁 돈복(?)들을 걸어놓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못을 박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비싼 그림, 그림틀 무게만도 대단합니다. 그걸 널빤지(베니다)에 박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널빤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집니다.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가격이 3천억 정도입니다.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3조원 정도 있든지 아니면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요! 3천억이면 3억짜리 빌라가 1천 채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세요! 그림 한 점이 3천억 원! 그림 공부들 하세요~! 3천 억짜리 그림이 떨어져 손상 된다고 상상해 보세요! 한번 떨어지면 1천억원이 날아갑니다.

어디에 박아야 합니까? 23절,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못은 어느 하나를 어느 한 쪽에 박히게 합니다. 단단한 곳에 박히면 나도 단단하고 썩은 나무에 박히면 나도 힘을 못 쓰고 무너집니다. 콘크리트에 박으면 나도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널빤지 (베니다)에 박히면 나도 널빤지처럼 힘을 못 씁니다.

 

사람도 좋은 사람에게 박히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에게 박히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술에 박히면 술주정뱅이가 됩니다. 재물에 박히면 재물이 나를 높이 올려주지만 재물이 불에 타고 날아갈 때 나도 함께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찬송에도 있지 않습니까, 웬말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물질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아돌프 히틀러의 참모들로 대중선동의 대가 괴벨스, 다시 태어나도 히틀러의 오른팔로 살겠다며 자살한 루돌프 헤쓰, 게슈타포를 창설한 헤르만 괴링, 나치군 총대장 하인리히 히믈러, 사막의 여우 룸멜 장군… 모두 당대에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2차대전 전범(戰犯)으로, 유대인 학살자로 사돈에 팔촌까지 신분을 숨기고 은둔과 추적당하는 생애를 살고 있습니다. 인생을 학살자 히틀러에게 잘못 박힌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성공자가 되려면 제대로 박혀야 합니다. 좋은 사람에게 박히고 좋은 일에 박혀야 합니다. 아무 것에나 박히면 그 못이 떨어질 때 같이 떨어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제대로 박혀서 수지맞았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좌우(左右)에 강도가 함께 달렸습니다. 두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하다 강도 하나에게 성령이 임재(臨齋)했습니다. 그러자 그 강도는 주님에게 죄사함과 내세를 부탁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 순간 강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동해서 그 위에 포개져 못을 박은 것입니다. 은혜의 하나님에게 못을 박으니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은혜가 임하고 죄사함과 천국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다른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자기 십자가에 박혀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자기 죄(罪)입니다. 자기 죄에게 못을 박았기에 결과는 심판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어떤 일들을 남겼느냐, 그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 생애를 박아놓고 가는가, 누구에게 못 박혀 살다 가는가? 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에스라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9:8)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소서~! 우리 기도제목과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제대로 박혀야 합니다. 교회가 점점 친목단체가 되고 봉사활동 라이온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종교클럽이지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선하고 좋은 일을 하려는 종교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교회관에 박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소서… 거룩한 처소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에게 박히려면 십자가와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박혀야 하고 부활에 박혀야 합니다. 그래야 죄사함과 함께 부활의 영생이 있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단교주에 못을 박힙니다. 자칭 신(神) 천부교 박태선도 죽었고 영생교 조희성도 죽었고 통일교 문선명도 죽었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도 죽었습니다. 교주들이 죽었으면 이건 잘못이다, 속아 살았다, 이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주에게 박혀버리니 교주가 죽어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디 천국에 가서 하나님 노릇 하고 있고 나도 죽으면 그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그릇된 종교처럼 나쁜 사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잘 박혀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잘 박혀야 하지만 바른 하나님에게 박혀야 합니다.  

 

못은 벽만 단단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못이 부실하면 안 됩니다. 못이 너무 가늘거나 녹슬면 어떻게 될까요? 벽이 든든해도 어느 날 꽈당! 떨어지면 3천억짜리도 날라 갑니다. 단단하고 힘이 있는 못, 오래 두어도 녹이 슬지 않는 못을 골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잘 박힌 못처럼 단단했다가 하루아침에 꽈당! 인생이 추락해 버린 사람이 나옵니다. 15절에 히스기야 왕의 재임 중에 궁내대신 셉나가 등장합니다. 국고(國庫)를 맡고 왕궁을 맡은 자… 개역성경에는 궁(宮)을 ‘차지한 셉나’, 권력을 손에 쥔 사람입니다.

궁내대신은 왕을 가까이 하는 사람, 소켄입니다. 소켄의 여성형이 소케네트인데 다윗 왕을 시중들었던 젊은 여자 아비삭이 소케네트입니다(왕상 1:2, 4). 아비삭이 정치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치를 했다면 유대왕궁의 장희빈일 것입니다. 그러니 궁내대신 소켄 셉나는 얼마나 대단한 권력자입니까? 권력에 제대로 잘 박힌 못입니다. 셉나의 야망이 어느 정도인가요?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16절)

셉나 대신은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해 묘실을 팠습니다. 높은 곳의 묘실은, 열왕들의 묘실입니다(대하 32:33). 왕의 묘실은 침해를 방지하고 오래 보존하려고 예루살렘 주변 산들의 경사진 곳에 바위를 뚫어 만들었습니다. 셉나도 왕의 묘역에 자기 묘실을 파놓은 것입니다. 대단한 권력입니다. 그러나 천년만년 권력에 잘 박힌 못이 되리라 생각했던 궁내대신 셉나,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무서운 경고를 합니다.

17절,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장도리로 권력에 단단히 박혔던 너를 빼버리겠다는 것입니다.

18절,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들처럼 묻히려던 셉나 계획을 하나님께서는 공처럼 말려 광막한 지경에 던져버리겠답니다. 대단한 경력증을 꼬깃꼬깃 뭉쳐 던져버린답니다. 왜요? 18절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간신 노릇을 하고 권력을 남용함으로 그를 세운 왕에게 수치를 끼치자 19절,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광막한 곳에 던져버린다, 이국땅에서 포로가 되어 죽는다는 예언입니다. 이국땅에서 최후를 맞이함은 유대인에게 최고의 불행입니다(암 7:17).

권력에 잘 박혔던 셉나의 못이 하루아침에 빠져버리고 권력을 잃고 포로생활을 하게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됨은 교만입니다. 교만(驕慢)은 스스로 잘난 체하며 온유함이 없이 건방지고 방자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선택한 수단을 더 신뢰하는 자를 말합니다. 성경에 7대 죄악이 나옵니다. 폭식 질투 나태 분노 탐욕 성욕 오만…입니다. 오만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혐오한다고 했습니다.

 

천사는 교만으로 천사장직을 빼앗기고 하늘에서 추방당하고 교만하다 왕직을 잃고 교만함으로 나병에 걸리고… 교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봅니다. 교만은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처리하십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셉나가 교만하다 명예와 권력의 못이 떨어져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셉나를 내치시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러냅니다. 36장에 셉나는 서기관으로 강등되고 그 자리를 엘리아김이 차지합니다(3절). 엘리야김은 여호와의 충실한 종복으로 셉나와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21절,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22절,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다윗 집의 열쇠를 어깨에 둔다는 것은 엘리야김이 유다 왕실의 국고 열쇠를 맡은 궁내대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엘리야김에게 이런 약속을 하십니다.

23절,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셉나는 반석을 쪼아 묘실을 만들었습니다. 자손만만대로 부귀영화가 대물림되는 줄로 알았지만 썩은 기둥에 못 박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셉나를 뽑아버렸고 관복을 벗겨버렸고 서기관으로 강등시킵니다. 나중에는 광막한 곳에 종이를 뭉친 것처럼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엘리아김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에게 제대로 박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튼튼하니 엘리아김도 튼튼하고 하나님이 거룩하니 엘리아김도 거룩했습니다. 박힌 것만큼 영성과 에너지가 전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겼던 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에게 제대로 박히려면 실력이 있어야 해요. 정확하게 조준해야 하고 정확하게 망치로 쳐야 합니다. 돌로 친다고 잘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연장으로 박아야 합니다.

전도서는 말합니다.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12장 11절)

말씀으로 못을 박아야 터가 굳어지고 그 위에 축복을 걸어놓습니다. 내 감정으로 못을 박으면 쉽게 뽑힙니다. 축복이나 준다는 말씀으로 못을 박으면 박히기는 해도 영광의 복음에까지 깊숙하게 박히지 못합니다. 그러면 복이 걸렸다가도 떨어집니다. 제대로 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24절,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모든 항아리까지니라”

못이 좋으면 좋은 것들은 다 걸어놓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그림을 선물 받아도 못이 약하면 걸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복을 달라고만 하지 말고 말씀의 못을 깊게 박아서 못걸이가 아니라 복걸이를 큰 것으로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집안이 복집이 됩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김에게 이런 경고를 합니다.

25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내 못이 삭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못이 삭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 못에 걸어주실 복이 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말씀 못이 삭지는 않습니까? 말씀으로 오는 축복들을 걸어주지 못해 성령님께서 애타하지는 않습니까? 날마다 나를 살펴 셉나에서 엘리야김 자리로 내려서고 박힌 못이 삭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게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고 축복입니다. 이런 못걸이에 주렁주렁 복이 걸리면 우리 집은 복집(福家)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것 같습니까? 십자가가 예수님에게 달린 것 같습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못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두 손과 두 발에 못을 받으시고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십자가가 못으로 예수님에게 박힌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니 죄수들의 형틀 십자가, 모멸스런 십자가, 저주의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잘 박힘으로 구원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하면서 신앙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증오의 십자가도 예수님에게 박히면 사랑의 십자가가 됩니다. 저주의 십자가가 구원의 십자가가 됩니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우리도 거룩한 처소, 예수님에게 잘 박힌 못이 되어 거룩한 생애를 살아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늘빛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에게 제대로 박혀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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