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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식] 축복의 유월절 만찬 (마태복음 26:25~2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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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유월절 만찬

마태복음 26장 25~29절 


<서론>

세례 받으신 분들을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세례는‘씻었다’와‘새로운 출생’의 뜻이 있습니다. 물로 씻으면 깨끗해지듯 예수님의 보혈(寶血)로 목욕해서 영적으로 죽을 죄(罪)에서 깨끗해졌고 새생명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거듭남과 같은 의미입니다.

세례는 평생 한 번입니다. 개척교회에서 세례 받았는데 유명 목사에게 다시 받고 싶다거나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세례 받아서 지금은 제대로 알고 진지하게 받고 싶다고 재세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세례는 누구에게 어디에서 받았든 평생에 한 번으로 유효합니다.

성(聖)만찬, 성찬예식은 거듭난 영혼에 영적 영양을 공급해주고 지옥 죄에서는 단번에 깨끗해 졌지만 생활의 죄로 더러워진 몸과 마음을 집중적으로 씻어내는 예식입니다. 그러기에 성만찬은 아픔과 축제라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1. 아픔

왜 아픔이 있는가? 예수님은 성(聖)만찬 전에 배신을 경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앞을 다투어 나는 아니지요? 합니다. 유다는 스승을 은(銀) 30에 팔기로 모의했습니다(15절). 그런데도 다른 제자들처럼 나는 아니지요? 스승을 바라보며 말하니 얼마나 가증해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3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 마침 유다는 스승과 같은 떡 그릇에 손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스승 곁에 앉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배신을 꿈꾸고 능청맞게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합니다.

이게 예수님의 아픔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같은 그릇에 손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미소 속에 배신이 있습니다. 얼마나 슬퍼요? 알면서도 모른 척 못들은 척… 그래도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참아야 하는 마음이 참 아프지요. 유다가 아파요, 예수님께서 아프시겠어요? 당연히 예수님이 아픕니다. 왜? 유다를 더 사랑했으니까! 더 아꼈으니까!

1년 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누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던가요? 옆에 앉은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나요? 내가 누구를 가장 아프게 했던가요? 주변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사랑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더 아프고 더 손해보고 더 양보하게 됩니다. 당신이 더 마음이 아프고 더 힘들었거든… 당신의 사랑이 더 컸고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좀 슬펐으면 좋겠어요. 좀 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내니이다! 내가 하나님을 아프게 했습니다. 당신을 아프게 했던 사람! 바로 접니다! 이게 성만찬의 아픔입니다. 내가 아프게 한 형제들을 놔두고 언제까지 십자가 예수님 고통에만 눈물을 짓고 있겠습니까?

 

2. 빵

유대인들은 애굽 탈출과 해방을 기념하면서 유월절 만찬을 합니다. 이때 누룩 없는 떡을 먹습니다. 누룩을 빼버리니 맛대가리가 없는 빵이 됩니다. 왜 맛없는 누룩 없는 떡일까요?

누룩은 부풀어 오르는 성질이 있습니다. 부풀어 오르는 성질은 원래 자신보다 부풀게 보이는, 일종의 가식이지요. 무엇이 있는 척, 아는 척, 더 예쁜 척… 좀 산다고, 좀 성공했다고 자기를 부풀려 과시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부풀게 하는 누룩입니다.

동족들에게는 그러지 말자! 나를 부풀려 뻥튀기 하고 남을 기죽게 하지 말자! 이방인에게는 부풀게 폼을 잡아도 동족들에게는 수수하게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식을 의미하는 누룩을 금지시켰을 것입니다.

 

또 하나, 누룩은 발효되어 빵으로 구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신속하게 도망쳐야 하는데 언제 한가하게 누룩이 발효될 때를 기다리겠어요? 누룩 없는 빵이 부지런이라면 누룩은 게으름입니다. 유대인은 만찬에서 부지런하고 빨라야 경쟁에서 산다는 것을 다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가 떡이다! 할 때는 내가 광야의 만나요, 성전의 진설병(누룩없는 빵)이다! 즉 내가 생명의 떡이다! 선포하신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 생명의 떡을 버리고 은 30에 썩을 양식, 개떡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주님의 떡 그릇에 같이 손을 넣었으면 영생의 그 떡을 잡았어야 했는데 은 30에 눈이 멀어 개떡을 찾아 떠나버린 것입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동생과 살아가는 뮤지컬 배우가 있었습니다. 동생이 그만 루게릭병에 걸렸는데 누나는 성공하느라 명예를 얻느라 동생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더 성공할 때까지만 기다리라고, 돈 벌 때까지만 기다리라고… 동생의 부름에 오지 못했습니다. 동생이 스무 살이 넘어 죽었습니다. 동생의 시신을 붙들고 누나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이 개떡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지켜주지 못한 내 인생이 개떡이다”

그래서 주님께로 다시 돌아왔고‘개떡’이라는 뮤지컬대본을 썼습니다. 가룟 유다야말로 개떡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그의 인생은 자살로 끝났고 개떡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 안에 진정한 영생이 있음을 믿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포도주

유월절 만찬에는 누룩이 없는 떡과 포도주 넉 잔을 마십니다.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은혜와 능력을 찬미하는 것이지요. 포도주는 최고의 기쁨, 즐거움을 상징하잖습니까?

유대인들은 한 잔씩 마실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며 찬미합니다.

1잔(盞). 내가 너희를 빼내리라!

2잔(盞). 내가 너희를 건져내리라!

3잔(盞). 내가 너희를 구속하리라!

4잔(盞).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

유대인들은 울면서 잔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어린양의 보혈로 애굽에서 빼어내고! 애굽의 고난에서 건져내고! 죄에서 구속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조상들의 고난에는 슬퍼하고 하나님의 은혜에는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만찬 개념을 당신의 구속사역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마 5:17). 완전은 '가득 채우다'는 뜻으로 '그 깊은 뜻과 충분한 의미를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유월절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잔(盞)을 마실 때마다 십자가의 보혈로 세상에서 빼어내고! 죄에서 건져내고! 죄에서 구속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 죄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과 기쁨의 성만찬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사는 평생의 날 동안! 주님의 오시는 날까지!

 

<결론>

이제 떡과 포도주를 마십니다. 이 예식을 통해 우리 언어사용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아프게 한 자가 내니이까? 당신을 울게 한 이가 내니이까? 가룟 유다처럼 뻔뻔하게 되묻지 말고 당신을 아프게 한 자가 내니이다! 당신을 울게 한 이가 내니이다! 그런 고백으로 빵을 먹으면서 힘을 얻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더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시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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