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포도주
마태복음 26절 26~30절
<서론>
오늘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기념이라 함은 주님께서 친히 제정해 놓으신 성례식을 통해 주님의 죽으심과 교훈을 되새기며 믿음을 더욱 돈독히 하고 우리 마음과 행동을 더욱 정결하게 하며 아름다운 구원의 예식을 다른 이들에게, 다음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결심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1. 두 라인
성경에는 두 라인의 인류가 존재합니다. 하나님과 사탄, 생명과일과 선악과, 가인과 아벨, 사라와 하갈, 이삭과 이스마엘, 아담의 길과 예수님의 길… 주류와 비주류입니다.
인류사적으로는 사탄, 선악과, 가인, 이스마엘, 아담이 주류입니다. 문명을 만들고 기계와 악기를 만들어 인간영광을 노래했고 바벨탑을 쌓아 자력구원의 길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적 주류문화를 꽃과 풀로 비유합니다. 꽃은 화려하지만 떨어지고 풀은 야성적이지만 시드는 것처럼 인간이 쌓은 문명은 바벨탑처럼 혼란과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역사학자 아놀트 토인비(1889~1975)는 인류문명은 28개라고 합니다. 그 중 이집트, 로마그리스문화…등 18개는 사라졌습니다. 남아있는 10개 중에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9개는 죽어가고 있고, 수천 년을 이어 계속 성장하는 문명은 유대문명 하나라고 밝힙니다.
왜 유대문명만이 계속 성장할까요? 하나님의 문명이요 구속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천 년 동안 나라 없이도 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합니다.
바울은 구속사를 설명하면서 아담과 예수님이라는 두 라인을 말합니다. 아담 안에 있으면 원죄와 멸망에 있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과 영생 신분의 라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 라인 안에 들어와 죄씻음과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하며 살까,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통해 비결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2. 포도주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니라”(28절)
예수님의 죽으심이 어떠할까를 말해줍니다. 포도주가 나오려면 포도주 틀에 넣고 쥐어짜야 합니다. 그래야 즙이 나오고 포도주가 생깁니다. 의술이 없을 때는 상처가 난 곳에 포도주를 바르면 소독도 되고 아물기도 했습니다. 포도주는 치료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로마 군병들이 쥐어짰습니다. 손에 못을, 발목에 못을 박았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허리에는 창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찔리는 곳에서 피가 났습니다, 쥐어짜는 곳에서 피가 났습니다. 바로 이 피가 구속의 피(血)입니다. 누구든지 그 사실을 마음에 믿으면 죄가 씻음을 얻게 되고 하나님 자녀의 라인이 됩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까? 내 죄가 죽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들이 로마군인들의 손을 빌어 구원의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범죄의 죄를 씻으려면 짐승을 끌고 성전 안마당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내 손으로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자백하고 내 손으로 죽입니다. 제사장은 내게 피를 뿌리며 죄사함을 공포합니다. 짐승은 누가 죽인 것입니까? 내가 직접 죽였습니다. 내 죄가 짐승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걸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죄사함의 은총을 누립니다. 어떤 죄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예수님의 피로 씻지 못할 죄가 없고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寶血)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듭났고 구원을 받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쁜소식-복음입니다.
오늘 포도주를 대하고 예식에 참여하는 분들마다 마음의 죄들이 씻어지기를 바랍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영들이 삭아지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더러운 세포들이 죽어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능력의 피입니다!
3. 빵
예수님께서 빵을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6절).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다고 당장 새 힘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20일을 금식기도를 했었습니다. 영과 생각이 얼마나 맑아지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에서 죄된 생각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탐심도 미움도 명예심도 싹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몸은 힘들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신으로 되어 있어서 영이 깨끗하다고 전부가 아니라 몸도 영양을 해주고 건강해야 깨끗한 영이 건강한 몸을 통해 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할 수 있는구나…, 그래서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다, 내가 주는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요 6:48~51)
브루스 페일러는 <워킹 더 바이블>이라는 책에서 만나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을 합니다. 만나의 맛은 먹는 사람마다, 먹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먹는 사람의 상상에 따라 맛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호떡을 생각하면 호떡 맛이고 호박떡을 생각하면 호박 맛이고 인절미를 생각하면 인절미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사실과 관계없이, 기가 막힌 상상력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죄씻음을 원한다면 구세주로, 용기가 필요하면 용기를,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가,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 굉장하신 예수님, 바로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결론>
18세기, 독일의 젊은 백작 진젠돌프가 시골교회가 보여 기도하려고 들어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그림 아래에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일을 하였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 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묵상에 잠겼던 백작은 “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생당하고 죽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하며 온 생애를 주님을 위해 바치겠노라고 결심합니다.
이 사람이 개혁주의(개신교) 최초의 한 분파였던 모라비안운동의 선구자 진젠돌프입니다. 그는 모라비안교회를 조직하여 전 세계에 선교운동과 경건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일반교회는 교인 5000명당 선교사 1인파송이지만, 모라비안은 교인 60명당 1인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선교열정입니까?
감리교 창시자 웨슬레가 폭풍우를 만났을 때 갑판에서 의연하게 기도하는 모라비안교도들의 담대한 모습에 감동되어 거듭나게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위해 피도 주고 살도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겠느냐… 우리의 삶으로 대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