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은 금(金)이어야 한다
예레미야 4장 1~4절
<서론>
유대교 랍비가 회당에서 강론하고 있는 시간에 집에 있던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우리였으면 어땠을까요? 울고불고… 남편에게 연락하고… 난리 났겠지요. 그러나 랍비의 아내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가정의 일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부인은 두 아들의 시신(屍身)을 흰 보자기로 덮어놓았습니다. 얼마 후, 랍비가 돌아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자 부인은 대문가로 나가 남편을 맞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 어떤 사람이 오래 전에 나한테 보석 두 개를 맡겼어요. 빛나지 않는 보석이었지요. 그러나 보석을 갈고 닦았더니 너무도 아름답게 되어서 아끼고 사랑했어요. 오래도록 찾아가지 않았기에 내 것으로 알고 지금껏 간직해 왔어요. 조금 전, 보석 주인이 찾아와서 보석을 달래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누가 차지할 권리가 있는지, 당신은 랍비니까 판단해 주세요.”
사정을 모르는 랍비는 껄껄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당신 같지 않은 질문이구려. 보석이 아름답고 오래도록 간직했어도 그것은 당신 것이 아니요! 보석 주인이 달라면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율법의 가르침이오.”
부인은 그제 서야 상황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우리에게 맡겼던 두 보석을 찾으러 오셨어요. 보석 같은 두 아들을 데리러 지금 이층 침상에 와 계셔요.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랍비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주인이 돌려달라면 돌려주어야지… 자기 입으로 말한 대로 아들이 죽음 앞에서 “주신 이도 여호와 찾으신 이도 여호와시니… 가져가소서.” 욥처럼 찬양했을까요? 아니면, 이럴 수가 있냐고… 절대 돌려드릴 수 없다고 울부짖었을까요?
오늘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은 단지 어린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선물을 주는 날이 아닙니다. 내 자녀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 자녀들은 어디에 있는가? 보석처럼 살고 있는가? 흙덩이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내 자녀들을 세우고 테스트를 해보는 주일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도하는 예레미야의 애가(哀歌)입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의 망함을 보면서 누구를 걱정하는가? 다음세대의 자녀들을 걱정합니다.
1절, “슬프다 어찌 그리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금은 빛을 잃어서는 안 되고 순금은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성스러운 돌들처럼 있을 곳에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자식들이 빛을 잃어버렸고 성소에 잘 박힌 돌이 아니라 길거리에 버려진 돌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2절, 그렇게 보배로웠던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이라 같이 버려지고 말았습니까? 오늘의 어린이들을 보면 다음세대 이스라엘의 운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자녀교육은 부모의 몫입니다.
앞에서 말한내용은 유대인들이 제2의 성서라는 <탈무드>에 나옵니다.여기에서 랍비가 두 아들의 죽음을 놓고 울었느냐 기쁘게 수용했을까? 라는 태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우리의 관심은 랍비의 행동이 아니라 평소 그들이 갖고 있는 자녀관입니다.
유대인들의 자녀관은, 자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속한 소유물이라는 투철한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낳고 우리 부부가 키우기는 했지만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요, 조국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필요한 아이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필요하고 조국(祖國) 이스라엘에 필요한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조국 이스라엘과 유대 종교가 내 자식을 원한다면 언제라도 돌려드릴 준비를 갖추고 살기에 랍비의 부인처럼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그 슬픔을 삭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녀들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 위탁자로 자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보석(寶石)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석이 될 자녀들을 맡겨 놓으셨기에 자녀교육을 부모에게 주어진 최고의 임무로 여기며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내 가정에서 출생되는 어린 생명들은 흙 속에 묻혀진 보석입니다. 보석(寶石)은 처음에는 그 진가(眞價)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흙 속에 바위 속에 묻혀 있기에 보잘것없는 흙덩이로 보이고 돌덩이로 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흙이나 돌무더기 속에서 채집하여 갈고 닦으면 돌덩어리들은 순금(純金)이 될 수 있고, 찬란한 보석이 됩니다.
결국 유대부모는 누구입니까? 보석을 가꾸는 세공사입니다. 자녀라는 아이들은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보석처럼 빛나기도 하고… 부모를 잘못 만나 흙덩이로 살다갑니다.
유대인에게 “부모”(父母)라는 말은 “어떤 모양으로 만든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부모는 누구인가? 자녀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는 양육자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교육자”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는 인물로 다듬어 지는 과정은 부모의 책임이요 아울러 보람으로 여겼습니다. 자녀들을 보석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은 교육의 힘이요, 부모들은 바로 그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로 자처합니다.내가 낳은 아이는 혈통으로만 유대인이 아니라 믿음도 여호와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제사장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부모에게 주신 필수적인 임무입니다.
유대 어머니들은 아이가 품에 있을 때 유대 역사를 마스터시킵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시조(始祖) 아브라함의 이야기, 족장들, 사사들, 선지자, 예언자들의 사역을 다 배웁니다. 학교 가기 전에 성경과 역사를 배웁니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남들보다 먼저 지식을 쌓아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 눈으로 입으로 모세오경을 읽고 예언서들을 읽기 위함입니다.
유대 어머니들의 교육은 지식교육이 아니라 철저히 신앙교육이요 종교교육입니다. 이런 교육이 있었기에 애굽학문이 모세를 애굽화 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이 유모로 들어가 모세를 히브리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모세 어머니는 애굽 대학자들을 상대로 아들을 지켜낸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태교와 조기교육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유대부모의 교육전통을 초대교회가 물려받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주일학교가 없었습니다. 자녀교육은 부모가 가정에서 책임질 일입니다. 부모들은 교사라는 사명으로 내 자녀들을 책임지는 1대1의 말씀교육, 경건교육을 수행했습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교육을 받았고, 교회에서는 장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모의 영성, 어른들의 영성이 자연스럽게 예배를 통해 자녀들에게 계승되고 전달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버이에게서 받은 교육이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내었던 것입니다.
이러던 교육전통이 1769년 영국에서 주일학교가 시작되면서 가정신앙교육이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가정에서는 거의 신앙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주일학교라는 이 대안(代案)학교가 오히려 신앙교육을 망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마이클 윌킨스(M. J. Wilkins)는 “자녀들을 제자화하는 우선적인 책임은 교회에 있지 않다. 그 일은 부모의 몫이다”고 하면서 부모의 교사적 사명을 강조합니다. 부모 역할은 제자도를 자녀들의 삶에 가장 폭넓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자녀교육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으로 있는 아들 홍정욱씨는 하버드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고 졸업 때 3개의 상(賞)을 휩쓸었습니다. 어머니 양춘자씨는, 한번도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없고 대신에 성경 과외공부를 시켰답니다. 성경과외 선생님이 매일 와서 성경을 인물중심으로 가르쳤답니다. 남들은 세상 공부에 열중할 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재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수직교육입니다. 수직교육은 머리를 빛나게 하고 소명감을 심어줍니다. 그러니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그것을 알게 되면 수평교육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자녀들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기도와 찬양과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믿음의 가정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 하리라”
아이들이 행할 길을 누가 가르쳐야 합니까? 제사장입니까? 랍비입니까? 일차적으로 부모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교사라는 말은 어원이 같습니다. 교육 아버지! 교육어머니! 이것이 정통 유대인의 교육 비밀입니다. 유대민족이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3세 이전에 신본주의 사상을 완전히 머리에 넣어 줍니다. 그러면 성장하고 난 후에도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가정을 교실화, 회당화, 성전화… 부모들을 교사화(化)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식의 믿음을 내가 책임지는 운동이 일어나야 주일학교도 살고 가정도 살고 내 자녀도 삽니다.
2. 믿음 전승은 신앙인의 책임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트 토인비(1889~1975)는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났던 문명은 모두 28개라고 합니다. 그 중에 이집트문화, 로마문화 그리스문화… 18개는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아있는 10개 중에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9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천 년을 죽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문명은 유대문명 하나라고 밝힙니다.
그 원인은 전승교육입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도 여러 나라로 유랑하면서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은 성경 토라와 탈무드였습니다. 아버지가 철저히 자녀에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믿음을 전승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대 격차가 없는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왕대밭에 왕대가 나오고 있습니까? 왕대밭에서 ‘쫄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부모들은 믿음이 좋은데 자식들은 믿음을 까먹고 불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길만이 아니라 기독교를 대적하고 공격하는 일의 선봉에 서 있습니다. 목사들이 교회 일에만 열심히 하다가 정작 내 자식들은 믿음으로 세우지 못하고 믿음의 전승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자녀교육 실패는 신앙전승이라는 또 하나의 위대한 전통, 교육적인 사명을 전하는 일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국교회의 신앙전승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전승되고 있는가? 몇 가지 유형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나쁜 부모에게서 믿음이 나쁜 자식들이 나옵니다. 항간에는, 한경직 목사님을 괴롭혔던 사람의 자식이 박조준 목사님을 대를 이어가며 괴롭혔답니다. 구두 밑창에 미화를 숨겼느니 말았으니… 하는 것도 한목사님을 괴롭혔던 사람의 자식이랍니다. 지금 영락교회 앞에서 이철신 목사 물러가라고 봉고차에 확성기를 달고 나 홀로 시위를 하는 사람은 바로 앞의 두 목사님을 괴롭혔던 분의 자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미확인입니다. 신앙의 전승이 나쁜 대로 대물림을 한 것입니다.
*믿음이 나쁜 부모에게서 좋은 자녀들이 나옵니다. 우리노회도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님을 참 힘들게 했는데 그 아들 장로님은 얼마나 목사님을 잘 섬기는지 모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것은 나쁜 대물림을 끊어버린 새로운 축복의 통로입니다.
*믿음이 좋은 부모에게서 믿음이 나쁜 자식들이 나와 대(代)가 끊기는 경우입니다. 이번에 진00씨가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이트는, 목사의 아들이 안티 기독교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진씨의 이념이나 정치성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성향은 각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사실이 아닌 “판타지 글”이라고 합니다. "동정녀에게서 예수가 탄생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신화적으로 만들려 하다 보니 나온 것이다. 예수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있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겠는가?"라고 합니다.
요한과 예수님의 동성애적 관계를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일이라고 했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일본지진에 대해서 말했을 때 정신병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실 조목사님의 마지막 내용들은 일부러 감추어 버리면서… 왜 그랬을까요? 아버지는 개척교회 목사로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좋은 믿음의 목사님이었을 텐데 아들은 한국교회를 향해 독설을 퍼붓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북한교회를 무너뜨린 것은 목사이자 장로의 아들은 강양욱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얼마나 좋았으면 누이 이름을 반석이라고 했을까요? 신앙전승이 자식에게 되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부모에게서 믿음이 좋은 자식들이 대를 이어갑니다.<아딸 떡볶이> 아시지요? 아딸은 1972년 문을 연 문산튀김집에서 이경수씨에 의해 시작했습니다. 문산튀김집은 이 대표의 장인이 튀김을 만들고, 딸이 떡볶이를 만들며 운영했던 가게입니다. 아버지튀김, 딸떡볶이에서 따온 ‘아딸’이란 명칭도 이 가게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집의 사위인 이경수 대표는 전도사님이었습니다. 목회가 꿈이었지만 IMF 외환위기로 약속했던 융자를 받지 못하면서 떡볶이 장사에 나섰습니다. 2000년 11월 서울시 금호동에 분식점을 열었고, 지금은 800개입니다. 1500개를 목표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목회를 접고 아버지의 목회를 열심히 돕는다고 합니다.
진00씨 이경수씨. 모두 가난한 개척교회 아들이었지만 한 분에게서는 바른 성경적 믿음이 대물림을 하고 한 분은 기독교를 비난하는 적대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진00씨에게는 아쉽습니다.
도울 김용욱씨와 박용목 목사님의 일곱 아들이 비교됩니다. 도울 김용욱씨는 신학대학을 수학했고 천안의 기독교명문으로 형도 장로, 누님도 김숙희 문교부장관 출신 권사님인데… 본인은 기독교를 얼마나 우롱하는지 모릅니다.
대길교회를 시무하셨던 부흥사 박용묵 목사님의 일곱 자녀들은박재천 목사, 서울대 의과대학 박재형 교수, 박상은 샘안양병원 원장, 장신대 박상진 교수… 두 50명이 넘는 가족으로 아버지의 호를 따 영파선교회를 조직, 연초나 명절 때마다 의료선교를 떠납니다. 특히 인도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이어받아 인도선교에 주력합니다.
이렇게, 대물림을 잘해 교회에 힘이 되고 대물림을 잘못해 쓴뿌리가 되는 가정이 있습니다.
헨리 브란트는 “부모 노릇이란 자녀를 제자로 만드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부모들은 예수의 “뽄”(本)을 뜨도록 대물림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어머니의 교육의 힘을 알았던 지도자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국가의 힘은 어린이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국민들을 향하여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로 하여금 훌륭한 어머니를 갖게 하라. 그러면 그 어머니들에게서 훌륭한 어린이들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국력이다.”
내 믿음처럼 자녀들에게 믿음전승이라는 대물림을 위해 힘써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금처럼 빛을 내야 합니다. 흙덩이로 살다 가서는 안 됩니다.
<결론>
천연(天然)에 존재하는 방사성원소인 우라늄이 발견되었을 때 1945년 영어사전에서 과학자들은 이렇게 정의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희고 무거운 금속”
그러나 우라늄의 폭발력을 ALE는 과학자들은 연구하고 또 연구해서 핵폭탄을 만들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에 사상 최초로 “리틀보이”(little boy)라는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나카사키에는 팻맨(fat man)이라는 원자폭탄이 터졌습니다. 원자폭탄은 한 순간에 20여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가공한 폭발력에 일본은 더 이상 전쟁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10년 후 20년 후에 터지도록 맞추어놓은 시한폭탄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터지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2020년~30년 사이에 터져야 한국교회는 다시 재(再) 부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일본과 중국의 15억 인구들과 삼국(三國) 복음벨트를 이루고 인도의 10억 인구를 품으며 세계복음화에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엄청난 복음역사에 우리 자녀들, 자손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이제 제대로 자녀교육에 헌신하고 대물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은다음세대에 금으로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