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십자가(十字架)의 정신 (요한복음 13:3~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7. 29.
반응형

 

 

 

절판. 고서적에서
절판. 중고서적에서

 

십자가(十字架)의 정신   
요한복음 13장 3~7절

 

 

<서론>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예식을 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날마다 기억하기 위한 원(原)복음입니다. 지금도 주일마다 성찬예식을 하는 교파가 있습니다. 우리도 매주일 성찬예식을 하면 좋은데 음식점도 한두 번 다니다보면 맛이 없고 예배도 처음 드렸을 때의 강렬했던 감정들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회는 대부분 1년에 두 차례 성찬예식을 합니다.


성찬예식의 중심은 주님의 죽으심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내가 죄에서 살았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에서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을 통해 주님은 죽고 내가 살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야 할 차례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내 인생 속에서 예수님이 대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이 내게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은 무엇인가요?

 

1.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을 함께 다녔습니다. 자동차도 마차도 없이 도보로 걸어 다녔습니다. 당시 신발은 샌들입니다. 샌들은 발바닥이나 보호해 주지 거의 발을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발이 온통 흙투성이고 양말도 없는 발은 온갖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면서 주님께서는 씻어주고 싶으셨을까요? 어쩌면 3년 동안 다니면서 한 번도 씻어준 적이 없어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데 12자식 모두 사랑스러운 것처럼 12제자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그동안의 수고를 추억하면서… 고마워하면서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누구 발부터 먼저 씻어주었을까요? 수제자 베드로? 베드로가 첫 번째는 아닙니다. 6절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이르시니… 베드로는 중간쯤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재미있는 해석을 합니다. 가룟유다를 가장 먼저 씻어주었답니다. 여기에 제 해석을 덧붙일게요. 유다의 발을 씻으면서 가장 정성을 다해… 가장 부드럽게… 가장 오래…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씻어주셨을 것 같아요!


유다는 이미 스승을 팔 생각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11절,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기를 팔자가 누구임을 아셨습니다. 그걸 알면서 정성껏 발을 씻긴다는 것,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도 주님께서는 1절 자기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스승에게서 마음을 돌리고 배신할 마음을 굳힌 유다도 주님에게는 자기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해주어야 할 내 사람입니다. 비록 지옥은 가겠지만 함께 있는 동안은 끝까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어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으면 더 많이 사랑스럽게 씻어주고

사랑 받을 입장이 안 되면 대강 씻어주는 분이 아닙니다. 대상이 누구냐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정성을 다해 사랑의 발씻김을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하나님이십니다! 땅에 오신 하나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입니다.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조건이 없이 그냥 사랑을 하십니다. 상대방을 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사랑의 발씻김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정신을 회복했으면 해요! 우리의 사랑이 더 넓게 퍼지기를 원합니다. 


주일날 아내집사가 몸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남편만 교회를 갔습니다. 부부는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남편이 교회에 다녀오더니 싹 180도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아내에 대해 잘 해주는지…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 왜 이래? 너무 잘해주어도 불안합니다. 그랬더니 설교에 은혜를 받고 설교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물었으나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여쭈었습니다. 설교제목이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어떻든 우리가 말씀에 제대로 반응했으면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의 사랑이 외부로 표현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는 재미가 있도록 해주세요! 그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정결의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발을 씻습니다. 손으로 떡을 떼기에 위생적이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니까 아예 종교적인 관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떤 집에서도 입구에 손을 씻을 물과 발을 씻을 물항아리를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누가 발을 씻어주는가? 종이 있어주던지 그게 아니면 주인이라도 씻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어떻게 된 일인지 종도 주인도 자기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눈치를 보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주님의 발이라면 몰라도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었을 때 가장 아랫 벼슬을 살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건을 허리에 차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인 충격이고 황당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놀라움으로 아무생각이 없었지만 순간부터 주님의 치유가 강력하게 발을 통해 올라왔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거절을 당하고 경멸을 당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자존감으로 높아질 때보다 비참함으로 무너졌을 때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섬김의 발씻음을 통해 제자들은 치료와 회복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적을 체험했습니까? 하지만 그 기적들이 그들을 놀라게 하고 자랑스럽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오늘처럼 마음속에 따듯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만져주실 때 그들은 태양을 만들고 공기를 만들고 따뜻함을 만들던 하나님의 만지는 손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회복이 되고 마음에 위로가 넘쳤을까요? 

 

지난 주간에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사실은 오늘 설교를 위해 일부러 찾아 읽었습니다. 데이빗 케이프가 쓴 <예수를 위한 바보>입니다. 케이프는 지난번 월드컵이 열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던 백인목사입니다. 열방교회를 섬기면서 재미있게 목회를 하는데 목회를 내려놓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14개월을 황당한 부르심을 놓고 갈등하고 기도하다 온 가족이 함께 순종하게 됩니다.

나무대야가 달린 십자가, 물통 수건 의자 등 20kg이 넘는 짐을 지고 거의 3천km의 대장정을 걸어 세족사역을 하며 남아프리공화국을 순례했고 걸프전이 일어났던 중동… 등 전세계를 누비며 20년이나 넘게 세족사역을 하고 있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서울 부산 거리가 425km입니다. 그러니 걸어서 서울과 부산을 네번 가까이 왕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바보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바보는 바보인데, 제목이 <예수를 위한 바보>입니다.

놀라운 것은 발을 씻겨주는 순간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주님을 영접하고 마음이 회복되고 한센병환자, 중풍병자, 알콜중독자, 장관, 대통령까지 마음에 영적인 안식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발을 씻기려면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무릎을 꿇어야 하고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며 감동을 줍니다. 우리교회에서 시행했던 알파코스 과정 중에 발을 씻겨주는 수료식이 있습니다. 그 때에 모두가 은혜를 받고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그동안 우리가 대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경쟁에서 힘들었고 눌려서 살았고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대접이 아닙니다. 세족식에서 마음이 찡! 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들을 씻어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눈물을 씻겨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3. 예수님께서는 본(本)되는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싶었을 거예요. 3년 동안 고생만 했는데… 흙투성이 발을 씻겨주고 싶었을 거예요. 그것과 함께 주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신 것은 본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말고 대접하는 자가 되라”(마 7:12)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소위 황금률입니다. 그 주님께서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오늘 손수 본(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 하십니까? 14절 나를 본받아 서로 간에 섬기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이게 부족한 것 같아요! 말로는 섬김이 있고 대접이 있는데… 가르침들은 많은데 행동이 없습니다. 너도나도 장(長)자리만 원하다보니 한기총 사건이 터지고 대형교회 사건들이 터집니다. 설교는 했는데 행동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영신교회 이영무 목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영신교회에 자랑이 있다고 해서 건물인가, 프로그램인가, 교인 숫자인가 했더니 원로장로님 세분을 자랑해요! 이분들은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을 훔치고 행주로 닦고 교인들 사이를 다니면서 이야기를 해주고… 그 일을 10년을 하신답니다. 귀한 일입니다.
이런 장로님들이 계시다면 어떤 교회는 장로님들만 식사를 하는 방이 따로 있답니다. 그분들의 삶이 어느 정도인지 눈에 확 들어오지요? 이런 직분자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유교식 기독교종교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교회가 자꾸 이러면 안 되지요!
한쪽에서는 기복주의 샤마니즘으로 나가고 반대편에서는 유교기독교로 나아가고... 그러면 주님이 서실 자리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교회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예수님의 섬김에 기초를 둔, 교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짜릿함! 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비롯해서 장로님들이 본(本)을 더 많이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당회를 하고 성찬예식을 돕고… 이런 행정적이고 직분적인 사역만이 아니라 정말 우리교인들을 섬겨주시는 낮아진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은 오랜 세월 직장에서 집안에서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았잖습니까? 교회에서는 더 많이 섬기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시키지만 말고 망치를 든 현장에 여러분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은 수건을 허리에 찼습니다. 직접 일하시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이 우두머리 장의 위치에만 아니라 직접 일하는 현장에서 수건을 찼으면 좋겠습니다. 신발을 정리하고… 휴지통을 비우고… 그런 섬기는 리더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지요. 대접 받으려는 직분자들로 채워져 가기에 교회는 감동을 못 주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가 예수님의 본을 받고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힘이 생깁니다.

 

<결론>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세족식! 주님은 세족식의 원조이자 창시자입니다. 왜 이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마지막 쇼였을까요? 아니지요! 주님께서 하고 싶은 많은 교훈을 행동 하나로 2천년동안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은퇴예배는 거창하게 하지 않고 우리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씩 발을 씻어주고 교회 일을 후임자에게 넘겨야 하겠다는… 혹시 그런다면 그냥 오세요! 발을 깨끗하게 씻고 새 양말을 신고 오지 마세요! 그냥 추한 발이 좋아요! 나와 함께 고생했던 그 발이 좋아요! 나와 함께 심방했던 그 발이 좋아요!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섬김만 받았는데… 교회를 은퇴하면서 한번 제대로 섬기고 싶어요!

이제 여러분도 같은 마음을 품으세요. 우리가 세상 떠날 때 누가 가장 고생한 것 같아요! 주님을 위해! 늘빛교회를 위해! 나를 위해 누가 가장 고생한 발이 될 것 같아요! 그 사람의 발을 씻겨주고 눈을 감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정신으로 성찬예식에 참여합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