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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찌꺼기를 위한 하나님의 요리책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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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찌꺼기를 위한 하나님의 요리책

창세기 13:5~9



<서론>

주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먹다 남은 음식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지만 음식이 남겨지면 그 뒤처리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버리기도 아깝고 다시 상에 올려놓으면 누구도 젓가락이 가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만든 사람이 죄라고 맛도 변하고 모양도 변해버린 음식 찌꺼기들을 주부들이 해치울 수밖에 없습니다.

에르마 밤백이라는 외국 여성은 자기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30여 년을 남겨진 음식을 먹어왔다고 술회합니다. 어머니는 한번도 바로 요리한 새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은 음식을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버리십니까? 아니면 비빔밥이나 볶음밥이라도 만들어 드십니까?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비비거나 볶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분이라면 음식찌꺼기는 전혀 싫어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지 않는 분이라면 가족들이 먹다 남기는 문제로 끌탕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멋진 요리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들을 사용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시는 1등 요리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찌꺼기 같은 인생들을 어떻게 새롭게, 멋지게, 아름답게 요리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인생 요리 책입니다. 내 인생이 찌꺼기가 되었구나, 내 자녀들이 인생에 실패하고 삶에 실패한 찌꺼기 같은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에게는 내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요리책 성경책을 들쳐보면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왜 나에게는 찌꺼기가-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왔습니다. 종들과 가축이 많아지자 목양지가 좁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롯은 좋은 곳-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10절, 그 땅은 온 땅에 물이 넉넉했고 여호와의 동산, 즉 낙원처럼 보이는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롯이 그 땅을 선점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찌꺼기만 남은 것입니다. 롯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뷔페에 초대를 받아서 갔습니다. 조금 늦게 가보니 모두들 먹고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먹고 싶겠어요? 약간은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요?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요?

아브라함도 그런 기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눈을 들어 더 먼 곳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찌꺼기만 보지말고 하나님께서 요리하시는 더 멋진 음식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큰 민족, 넓은 땅, 복의 근원을 만드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찌꺼기 음식이 나에게 해당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것은 남들이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왜 나에게는 좋은 재질이 없을까요? 좋은 환경은 주어지지 않았을까요? 좋은 부모들의 뒷 배경이 있었다면 좀 더 빨리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요? 어째서 누구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 유년시절을 비참하게 보내야만 했을까요? 

그 좋은 대학이 있는데 좋은 대학들은 남이 가져가 버리고 나에게는 찌꺼기 같은 대학이 배정됩니다. 사업이 그렇고, 직장생활에서의 승진 문제가 그렇습니다. 다른 동창들은 정말 잘 나가는데 롯이 물 좋은 땅은 가져가고 찌꺼기 같은 땅만 기다리듯이 우리들에게도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남은 음식 찌꺼기란, 이상적인 것보다 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 만족스럽게 성취되지 못하고 실망하고 그래서 삶에 소망이 별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남은 찌꺼기 음식을 보면서 속상해 하고 곤혹스러운 주부의 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먹다 남은 것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먹다 남은 것을 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찌꺼기들을 통하여 뭔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저의 인생은 참 좋은 환경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제주도라는 지역적인 면에서나, 신앙적인 분위기에서나 신체적인 면에서나 가정적인 면에서 좋은 음식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와 같은 삶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주님께서 먹다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맛있고 멋진 음식을 만드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롯이 가져가 버리고 남은 찌꺼기 같은 땅에서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을 알았습니다.

주님, 요리사가 되시는 주님이시여! 저를 통하여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주십시오. 찌꺼기에게 축복해 주십시오! 의도를 가지시고 저를 관리해 주십시오!

그 기도의 결과가 여러분들 앞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가지시고 정말 멋진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기드온, 에훗, 기생 라합, 야곱… 모두가 인생이 버린 찌꺼기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주물러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죄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조금만 양념을 더해주시면 거룩한 음식이 됩니다. 볼품 없는 인생들에게 조금만 양념을 쳐주시면 멋진 인생들이 됩니다.     

 

2. 찌꺼기라도 주세요-가나안 여인

마태복음 15장에는, 한 가나안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정하게 모른 척 했지만 여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다시 요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을 위해서 줄만한 음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다시 애걸합니다. “선생님! 제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차마 못할 대답을 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마땅치 아니하다!”

개!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개로 비유한 것입니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정서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경우입니까?

누가 상처를 받기 쉽습니까? 실력 있는 사람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아쉬움이 없이 사랑가는 사람들은 상처도 덜 받습니다. 인생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 그것은 조금만 공격해도 할퀴고 지나가도 금방 더 큰 상처를 받게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얼마나 상처가 깊은 여인입니까? 과년한 딸이 귀신 들리고 울부짖을 때 어머니는 얼마나 상처를 받겠어요? 그래서 예수님에게 찾아왔는데 자기를 알기를 너무 우습게 무심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상처가 없는 여인이라면 그만한 말에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여인에게는 상처가 컸기에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다르게 해석합니다.

“선생님!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부스러기(찌꺼기)라도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스러기만을 갖고도 여인은 자기의 딸이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이 여인은 스스로를 개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그 개는 불독이었습니다. 한번 물면 놓치 않는 불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들처럼 좋은 재벌의 아들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기회들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 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구하고 있는 입장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식탁의 상석에 앉아있지 못하다고 불평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찌꺼기를 붙드세요. 하나님께서 찌꺼기를 복주시기를(축복해) 주시기를 간청하십시오!

이게 저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모든 것이 이겁니다! 남들 보기에는 찌꺼기처럼 되었지만 먹다남은 음식으로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시는 요리사 되시는 주님! 저를 요리해 주십시오! 우리 자녀들을 요리해 주십시오! 남들이 버린 요셉을 요리해서 애굽의 총리로 새우셨던 주님, 우리들도 요리해 주십시오!

이렇게 가나안 여인처럼 붙들고 애원할 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3. 찌꺼기를 버리지 말라-안드레

요한복음 6장에는, 안드레는 소년이 가져온 떡과 물고기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지 말라(요6:12)고 하셨습니다. 남은 조각, 남은 찌꺼기를 가지도 다시 새로운 역사, 일으켜 세우시는 역사, 다시 시작하게 하는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 분 주변에는 찌꺼기들만 남겨졌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은 하나 같이 쓸모 없이 되어버렸습니다. 다 주님을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찌꺼기들을 다시 모으셨습니다. 갈릴리바다로 가셔서 그곳에 모여있는 찌꺼기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교회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쓰레기 더미에서 건설된 것을 안다면 세상은 더 이상 인간 찌꺼기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남은 찌꺼기로 아무 것도 못합니다. 늘 우수한 명품들을 원하고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성공자들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요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손에 찌꺼기뿐입니까? 명예도 떠나고 물질도 떠나고 젊은 날의 청춘도 떠나고 이제는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뿐입니까? 이것 모두 버리고 싶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멋진 인생을 설계하시며 요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남은 찌꺼기가 어떤 상태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망쳐서 찌꺼기가 될 수도 있고 환경의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찌꺼기에 복 주시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찌꺼기가 어떻게 멋진 정식이 될 수 있을까? 기적들을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찌꺼기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멋진 음식이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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