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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3대 의식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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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그리스도인의 3대 의식

이사야 6:1~5

 

<서론>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무엇을 목적할까요? 목사의 1차적 임무는 아무래도 구원받도록 함입니다. 우리 교회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어서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 제 임무 중 첫째입니다.

목사가 죽어서 지옥에 관광 간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 일은 없지만. 지옥의 여러 코스를 지나는데 그때마다 내가 아는 사람, 우리 교회에 등록했던 사람, 직분까지 받았던 사람이 지옥에 있다면, 그 지옥에서 저를 발견하고 살려달라고! 꺼내달라고! 소리지른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로 지옥 관광은 안 시켜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제가 할 첫 번 째 사명이라면 두 번째는 여기 세상에 사는 동안 뭔가 의식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저는 늘빛교회 성도들이 남들보다는 다른 삶을 살기를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직하고 좀 더 사랑스럽고 좀 더 양심적이고… 소위 의식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의식 있는 사람보다는 멋있는 사람들이 점점 인기가 있습니다. 흔히 의식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삐딱하고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있는 사람, 양심대로 행동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의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것이 저의 두 번째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의식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떤 의식이 있어야 할까요?

 

1. 자(自)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자의식. 나는 누구인가? 바로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에 걸 맞는 행동 양식이 나옵니다. 자신을 왕으로 생각한다면 왕의 품위가 나올 것이고 자신을 노예로 생각한다면 노예의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 의식이 있으면 주인처럼 행동할 것이고 월급쟁이로 자처한다면 그만한 행동양식만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은 인생의 전 분야에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남에 대해 정죄를 일삼고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성전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는 누구입니까?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사람들 가운데 거하기에 망할 백성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 백성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타락한 존재입니다. 언제나 내 속에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는 반면에 악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악에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까이 하면 본성이 꿈틀거리면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회복된 존재입니다. 아무도 우리는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세 가지의 자의식이 우리들 속에 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누구임을 아셨던 분입니다. 그는 자신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자신의 생애가 인류의 구속임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자원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늘 평화로움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은 성숙된 사람입니다. 자기를 바로 알지 못하면 위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면서 죄인 아닌 것처럼 행세하고 남을 정죄하기에 바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인이 되었으면서도 늘 부질없는 죄의식 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늘 사랑에 목말라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에 대한 의식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2. 타(他)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제 멋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남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행동들을 마음껏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남을 의식해야 합니다. 왜냐? 우리는 걸어다니는 예수요, 이동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에 나가있는 대사들은 개인의 신분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대표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을 의식합니다. 내가 잘 하면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내가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명예가 훼손됩니다. 대사 한 명은 결국 한 나라와 맞먹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교회가 욕먹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한국교회의 전체 목사가 나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처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희생할 각오도 서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늘나라라는 영생의 삶을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마저 모든 것을 다 갖고 살려고 다 움켜쥐며 살려고 하는 것입니까? 좋은 것을 얻었으니 어느 한 쪽은 양보하고 희생하고 살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교인들은 이런 면에서 약합니다. 거리에서나 음식점에서나 영화관에서 남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알고 있으면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바르게 처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고… 그러나 이런 교육이 잘 안 되어 있습니다.

 

언제 말씀드렸지요? 육사 생도들은 비가와도 뛰어가지 않습니다. 지하철 표를 잃어버린 육사 생도,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줄 때가지 꼼짝하지 않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들은 “역시 육사구나…” 국민들에게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명예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나 혼자가 육사는 아닙니다. 그래도 육사생도는 나 혼자 밖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육사를 칭찬하며 우러러봅니다.    

우리가 늘 다른 사람들의 눈들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할까? 그것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다 우리의 풍성함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다른 사람을 의식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말을 했다가 저 사람이 상처받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늘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 가운데 사랑을 의식하면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풍성함을 가져다 줍니다. 

 

사회학에는, <거울 자아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아내, 아버지, 상사)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에 따라 정말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르게 처신하고 사랑스럽게 처신할 때 사랑 받는다는 확신이 오고 그만큼 기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3. 신(神)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왕족 출신의 선지자입니다. 엘리트 의식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주님을 의식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생애는 변했고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어디서든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애의 변화는 성경 인물들의 중심 사상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고집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 평생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삶, 하나님만을 목적하는 삶을 줄기차게 달려갔습니다.

요셉에게서 그 어느 인물보다도 더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요셉은 상관 부인의 성적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집트 여인들이 최초로 눈 화장을 시작했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이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이까?” 라며 여인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방안에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요셉의 수줍음을 알아차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커튼으로 우상의 눈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유혹했습니다.

“자 됐어요, 신이 우리를 보지 못해요!”

그러자 요셉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신은 여전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눈은 결코 가릴 수가 없어요. 그분에게는 빛과 어둠이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몇 년 전에는 북한에 갔다 온 목사들 사이에 이런 말이 나돌았습니다.

“평양의 모든 호텔에는 빈틈없이 도청 장치가 되어 있으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공산당이 지켜보고 있는데 목사 체면에 잠옷 바람으로 있을 수 없어서 옷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지구촌교회의 이동원 목사님도, 그와 같은 경험담을 설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평양의 호텔에 들어갔는데 철저히 감시하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평생 방안에서 그렇게 경건하게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하게 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이 경건하게 해주는 것,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내가 지금 누구 앞에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생애는 180도 달라질 것입니다.

 

장로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칼빈의 신학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는 일평생 하나님 앞에 산다고 생각했기에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서 늘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인천에 있는 어느 목사님께서 심방 중에 신호 위반으로 걸렸습니다. 순경이 보자고 하기도 전에 면허증을 내밀었습니다. 너무 정중했기에 교통이 감동 받아서 “아저씨,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제가 벌금이 약한 것 2만원짜리로 하나 끊어드리겠습니다. 으음, 담배꽁초 버린 것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순간, 목사님의 머리 속에서 필림이 돌아갔습니다. 교회 사무실에서 누군가 범칙금 용지를 먼저 뜯어보고 “아니, 목사님께서 담배를 피우시다가 걸렸다?” 그러면?

“경찰 아저씨,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으로 한 장…”

“그래요? 그러면!” 하고 쓱쓱 쓰더니 한 장 써주는 것입니다. 범칙금 통지서 2만원자리를 보는 순간! 악! 그것은 바로 무단 방뇨였습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교통순경이 보이기만 하면 모두 양처럼 순한 운전자들이 됩니다. 88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막 달리다가 천천히 가요! 영락없이 감시 카메라가 있습니다. 사방에 감시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운전한다면 대한민국은 교통사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을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되고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국제 사회에 <신용등급>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이엠에푸 이후, 세계신용평가회사들에 의해  한국 신용 등급이 추락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사이에 회복이 되더니 다시 추락했습니다. 요즈음 들어서 다시 한 등급씩 올라서고 있습니다. 신용등급 상승은 곧 신뢰입니다. 이런 등급 조정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투자 적격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고 돈이 몰려옴으로 경제가 함께 일어서게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대해 세상은 어떤 등급을 먹일까요?

세계에 대한 한국교회의 위상은 상당히 높습니다. 세계 50대 교회 안에 한국이 스무 개도 더 들어갔습니다. 10대 교회도 앞에서 몇 번째를 독점했습니다. 1999년 한국 통계청의 조사 결과 기독교인의 비율은 34.7%입니다. 굉장한 숫자입니다. 선교 4백년이 넘는 일본이 0.3%에 비하면 한국 교회의 성장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형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한국교회는 신용등급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라는 브랜드의 값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 직장에서 내가 얻는 점수는 어느 정도일까요? 교회 안에서 얻는 나의 등급과 교회 밖에서 얻는 나의 등급은 비례할까요?

한 주 동안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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