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축복의 통로가 되다
룻기 2:1-7
서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인생에서 크게 상실을 맛보았던 사람입니다.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출생, 삼촌에게 성폭행, 14세에 자신이 미혼모, 그 아이는 2주 만에 사망, 가출한 후 마약복용으로 지옥 같은 삶을 체험합니다. 몸무게는 107kg… 그러다 거듭난 생부(生父)와 재회하게 되고 생부의 신앙적 지도를 받으며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토크쇼의 여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청중 동원력은 힐러리보다 더 강합니다.
룻기는 바로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지요. 상실에서의 회복, 룻기의 주제입니다. 우리에게도 늘 그런 축복이 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사는 것, 이것이 믿음 안에서의 희망입니다.
오늘은 무엇이 룻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축복의 통로”라는 말은 참 대단한 말입니다. 축복의 파이프가 된다는 것, 자녀들에게, 부모들에게, 부부간에, 서로에게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 이것처럼 행복하고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간에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룻에게 밭이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룻은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녀는 밭에서 주인공(주인)도, 조연급(일꾼)도 아닙니다. 그녀는 이방여인으로서 엑스트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밭은 그 마을에서 가장 유력한 보아스의 밭입니다. 그곳에서의 엑스트라는 세상에서의 주인공보다 훨씬 낫습니다. 언제든지 보아스를 만날 수 있는 찬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왕궁에서의 왕보다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로 사는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왕은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성전에서는 늘 평화로움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가서>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포도원에서 일을 합니다. 이상하게 그 오라비들도 슬람미 여인을 박대합니다. 그러나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할 때 그 밭에서 솔로몬 왕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술람미 여인에게 밭은 행운을 갖다 준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밭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맡은 일이 크다, 작다… 우쭐대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맡은 일이 커도 보아스를 만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내 하는 일은 흘린 보리이삭을 줍는 일에 불과해도, 초라하고 남들 보기에 삼류배우에 불과하지만 보아스를 만날 때 인생 역전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의 눈에 띄고 보아스의 눈에 뛸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장 시켜주면 잘 하는데 회원 노릇은 못합니다. 성에 차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장서서 하는 일은 잘 하는데 남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일은 못합니다. 그래서 밭에 나가 일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아스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만큼 축복의 통로를 스스로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윈프리는 처음부터 전국적인 방송국에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방 작은 방송국에서 일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고 점점 인기가 있고 스카우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작다고, 내 하는 일이 작다고 시쿤둥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을 크다 작다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경기장 사람들은 세 부류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관중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거나 경기에 이기면 기뻐 뛰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구경만 할 뿐입니다.
두 번째는 벤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부상을 입거나 선발선수보다 실력이 떨어지면 벤치를 지킵니다. “벤치워머”입니다. 말 그대로 “벤치를 데우는 사람”, “엉덩이로 벤치만 데우고 앉아있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열심히 뛸 때 벤치에 앉아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열심히 땀 흘리면서 운동장을 뛰는 선수입니다.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스타팅 멤버, 즉 주전선수라 합니다.
룻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이방 땅에서 이방인의 밭에서 일하지만 그는 구경만 하지 않습니다.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당히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보아스가 듣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밭에서 양식을 얻었고 보아스를 만났고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밭은 룻에게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들에게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저는 늘빛교회 밭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곳에서 능력을 받고 기회를 얻고 회복되고 사랑을 받는… 그런 축복의 밭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벤치워머가 아니라 스타팅 멤버가 되어야 합니다. 찬송 한 곳을 하더라도, 인사를 한 번 하더라도 주인 의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며 축복을 내려받는 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밭에 오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그냥 가지 마시고 양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룻에게 나오미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그녀의 외모? 이방여인으로서 데리고 놀기 좋으니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서 동정심 때문에? 보아스가 룻에게 관심을 보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2:11)
시모에게 행한 효심과 신앙 때문입니다. 시어미는 실패한 여인입니다. 늙어서 힘도 없고 남겨줄 유산도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여인입니다. 그야말로 “Nothing"입니다. 그러나 시모에게 최선을 다할 때 그 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위해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축복의 통로는 때로는 아주 하찮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을 섬기며 사랑할 때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룻기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회가 이번에 크게 은혜를 받은 수양회가 되었는데 여러 원인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혼자 생각해보니 몸이 허약해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도영이를 데리고 가는 그 마음, 그 아이를 기쁘게 하려는 모습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도영이들을 우리는 섬겨야 합니다. 꼭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들이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룻에게 은혜의 선포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장사에는 목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꿈이 야무지고 아이템이 좋아도 목이 좋지 않으면 장사는 쉽지 않습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있고 스타목사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아파트 단지의 중심입니다. 주택 중심이었다면 대형교회가 쉽지 않습니다.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도 통로가 되는 목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 사람이 말을 보면 그 사람이 축복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오미의 입에서는 “마라”가 나옵니다. 이런 입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처럼 부정적인 단어를 잘 쓰는 민족들도 없을 것입니다. 못 살겠다, 죽겠다, 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힘들어서 죽겠다, 좋아 죽겠다, 우스워죽겠다… 그러니 언어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술이라도 잘 거르면 청주가 되고 막 거르면 탁주가 된다. 이것이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입니다. 막일꾼들은 막노동을 하다 막사발로 막걸리를 마시고 막김치로 안수를 삼습니다. 막담배를 피우고 막신발을 신고 나갑니다. 여기에 막말까지 하면 막가는 인생입니다.
우리 입술이 막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축복의 파이프를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축복을 받을 사람인가, 아닌가… 금방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축복의 언어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로마 가톨릭이 믿음이 없는데도 평화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말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 방송을 보면, 미사를 드리는데 사제가 복을 빌어줍니다.
사제-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신도-또한 사제와 함께
사제-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신도-또한 사제와 함께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그러니 밤새도록 술 먹고 그 사제가 토하고 화투치고… 그러면서도 깍듯하게 사제들을 대합니다. 늘 축복하기 때문입니다. 그 축복이 자신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때요? 위해서 기도하고 경조사 다 쫓아다녀 주고… 그러다가도 뭐가 틀어지면 그날로 목사를 욕합니다. 그러니 복들이 오겠습니까?
룻은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그 전에 그는 입술에 축복을 머금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룻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2절)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10절)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기 원합니다.”(13절).
그녀는 입을 열었다 하면 은혜를 외칩니다. 룻은 은혜적 사고를 품은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나오미에게도 전염됩니다. “그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20절). 은혜가 충만하면 그 사람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루이스는 “기독교를 규정짓는 유일한 단어는 은혜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말하면 그는 최고의 신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말들이 축복이 언어가 되려면 은혜를 머금어야 하고 은혜로운 말들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결론
우리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축복의 통로가 되고 축복의 통로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우리 삶의 현장(밭)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우리 주변의 연약한 도영이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우리 입술에 은혜의 말들을 머금어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는 상실에서 회복으로 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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