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기억을 기억하라!
창세기 8장 1~5절
서론
제 목회철학이 친정집 목회입니다. 친정집 목회는 교인들을 단체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한 분 한 챙겨가는 관계목회입니다. 그러다보니 교인들의 애환(哀歡)이 고스란히 내게 전이가 됩니다. 축하는 당일로 끝나는데 걱정거리는 내게 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친정엄마처럼 걱정하게 됩니다. 성격과는 또 다른 목회적 염려입니다.
지금도 1년 이상 병상에 계신 분, 의식이 회복되지 못하시는 분, 노환으로 중풍으로 누워계신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안 좋습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고, 긴 가난에 사랑 없고, 긴 고난에 견디낼 믿음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고난이 오래 가다 보면 낙심하지 않는 믿음이 어디 있으며 포기하지 않는 가족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의 설교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 인생에 큰 시련이 오고 집안의 우환이 임할 때, 그것도 긴 병이 되고 고통의 광야를 지날 때 믿음은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될 수 있을까, 믿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노아는 홍수가 왔을 때 600세였고(창7:6). 이후에 350년을 살다 950세에 죽습니다(9:29). 옛날 나이에 0하나를 빼면 현재의 나이로 쉽게 와 닿겠지요? 그러니까 노아는 60세에 대홍수를 만나고 95세에 죽었다, 계산해 보면 실감이 납니다. 요즘 60~75세를 ‘신중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홍수를 만났을 때는 중년이었지요. 청년은 사는 것이 두렵고, 노인네는 죽는 것이 두렵고, 중년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년은 인생에서 허리 지점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중년에 무시무시한 시련을 당한 것입니다.
대홍수는 비가 내리는데 7장 11절, 땅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리면서 물이 쏟아 붓는데 12절, 40일 밤낮입니다. 폭우로 7장 19절, 높은 산이 덮이고 21절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습니다. 23절, 공중에 나는 새들까지 공중에서 날다가 지쳐 죽었습니다. 135미터, 3층짜리 방주, 히브리어르는 테바, 영어로는 아크라고 해요. 테바 안의 가족도 가축들의 아우성으로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당시에는 유리문화가 없었기에 밖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40일 밤낮으로 쏟아지는 물은 24절, 150일을 땅에 창일했습니다.
위기:나무로 만든 135미터짜리 방주는 산과 바위에 걸려 언제 파선될지 모릅니다.
두려움:방주는 천지를 개벽시키는 물살에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곤두박질하면서 요동질을 합니다. 밤낮으로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조종실:방주는 운전대가 없습니다. 어디로 갈지 정처 없이 방향을 정하지 못합니다.
기간:물심판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막막합니다.
방주 실내:방주는 문이 하나입니다. 역청, 콜탈이 있었으니 불은 켰겠지요. 그러나 배가 요동질을 하는데 불이 남아나겠어요?
스트레스:짐승들의 오줌과 똥, 우는 소리… 냄새...
이런 상황에서 방주 안에 377일을 있었습니다. 짐승도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도 공포심 으로 떨고 미쳐버릴 형편입니다. 그러면 우울증이나 공황에 걸립니다. 이게 바로 긴 병에 효자가 없고 긴 시련과 고통에 견디어 낼 믿음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이런 시련을 당하면 삶이 곤두박질 뒤죽박죽 그 자체가 아닙니까? 건강이 곤두박질, 사업이 곤두박질, 가정이 곤두박질, 삶의 터가 바닥부터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노아가 만났던 대홍수가 따로 없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내가 겪는 고통과 시련은 항상 크게 보이니까요!
2014년, 1월 급성바이러스 전염병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고 살(殺)처분된 닭과 오리는 1186만8000 마리, 2010∼2011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는 소와 돼지 350여만 마리가 살 처분됐습니다. 가족처럼 키우던 가축과 짐승들을 포클레인으로 생매장하고 나면 축산 농부들은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를 겪는답니다. 멀쩡한 가축들이 생매장 당하면서 울어대던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오랜 세월 고통을 겪는 것이지요. 노아 역시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노아는 견디었습니다. 인간 인내심이 아닙니다. 어떻게 견디었을까요? 6장 8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
여기에 나오는 “그러나”는, 그 뜻은 아니지만 다른 말로 풀이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죽음을 보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욕하며 죽어갈 때도 노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옷을 입으면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니, 대홍수 상황에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의역하면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더라”.
심판에서 구원을 보았고… 인류멸망에서 여덟가족을 통해 새로운 인류에 대한 희망을 보았고… 창일한 죽음의 물만 보고 공포에 사로잡힌 것만 아니라 방주를 흔들어 버리는 거세고 모진 바람이 오히려 8장 1절, 죽음의 물을 마르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심판과 버려두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을 알았고 하나님의 본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어갈 때 감사기도와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370장)
그래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기대와 희망이 사라지고 앞이 막막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대로 나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고 끝까지 하나님의 본심을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스 힐먼(Os Hillman)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살피심도 커짐을 경험한다”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살피심도 크게 커짐을 경험해야 합니다. 맨정신으로는 절대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입어야 합니다.
1960년~70년대 테니스 스타 아서 애쉬는 모든 테니스선수의 꿈인 네 개의 토너먼트 대회인 프랑스 오픈대회, 호주 오픈대회, 윔블던대회, 전미오픈대회에서 한 선수가 한 해에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을 이룬 사람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에서도 당연히 우승했습니다. 잘 나가다 심장마비로 두 번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 중에 에이즈에 걸립니다. 아서가 에이즈에 걸린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에 “왜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런 나쁜 병에 걸리게 했을까요?”라는 팬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더의 답변입니다.
“전 세계 5천만 어린이가 테니스를 칩니다. 그중에 5백만 명이 테니스를 정식으로 배웁니다. 그중 50만 명이 직업 선수가 됩니다. 그중 5만 명이 리그전에 참여합니다. 그중 5천 명이 그랜드슬럼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습니다. 그중 50명이 윔블던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습니다. 그중 네 명이 준결승에 진출하고 그중 두 명만이 결승전에 갑니다. 제가 윔블던 우승컵을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께 ‘왜 접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기자:“왜 접니까, 그렇게 묻지 않았습니까?”
애쉬:“만일 제가 심장마비 혹은 에이즈에 걸린 것을 두고 ‘왜 접니까?’ 하고 묻는다면, 제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도 ‘왜 접니까?’라고 물어야 하고 그것을 즐기는 제 권리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합니다. 1975년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날, 저는 제가 받은 축복에 대해 ‘왜 접니까?’ 라고 물었어야 합니다. 만일 저의 승리에 대해 ‘왜 접니까?’라고 묻지 않았다면 저의 실패와 재앙에 대해서도 ‘왜 접니까?’라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애쉬는 “나에게 일어난 일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크게 입은 사람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 그가 긴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혹독하고 처참한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의 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 것입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개역성경은 “권념하사” 권념, 권고는 보살핌입니다. 기억하사는 새기다…의 뜻입니다. 평상시에는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기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방주 안의 생명들을 늘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노아를 위해 행하실 다음 단계의 일까지 미리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이지요. 노아는 죽음과 같은 어둠의 공간과 상황에서 하나님의 기억을 기억합니다. 우리도 그 기억을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공부반에서 젊은 여집사님이 했던 간증입니다. 간호사 엄마가 딸을 데리고 문화센터에 가면서 다섯 살 아들에게 아빠와 놀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아빠와 숨바꼭질을 하는데 장롱 경첩에 끼어서 손가락이 잘라졌습니다. 손가락을 감싸고 병원에 가서 꿰맸는데 아이라 심줄이 약해 썩어서 잘랐습니다. 마침 결혼반지를 끼는 왼손 약지 네 번째 손가락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운명입니까?
엄마가 아들과 퇴원하는 날 원장님이 말했습니다.
“나중에 손가락이 어떻게 된 것이냐? 질문하는 날이 온다. 마음에 대답할 준비를 잘해라“
그 말에 2년을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녀온 7세 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 다른 아이들은 손가락이 다섯 개인데, 내 손만 왜 이러냐?
“하나님께서 너에게 큰일을 약속하신 것 같아. 그래서 약속의 손가락을 하나님께서 가져가서 잘 보관하면서 너와 함께 한 약속을, 그리고 너를, 엄마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신다.”
그렇게 말하고 “우리 아들이 놀림 받지 않게 해달라”고 아들 몰래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아들은 성인이 되고 여자 친구도 생겼습니다. 사랑하게 되었는데, 손가락을 숨기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자 친구가 내 손가락을 보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용기를 갖고 손가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어째서?” 그 다음 말이 전율입니다.
“유학 중에 룸메이트를 만났어. 그 친구도 손가락이 없었어. 오랫동안 그와 함께 있었기에 네 손가락이 전혀 낯설지 않아~”
아들을 두신 엄마님들! 이렇게 마음씀씀이가 곱고 깊은 며느리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여자 친구는 같은 교회에서 중고등학교 때 알던 아이였습니다. 그날, 아들은 감동어린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의 기도가 100% 이루어졌어요, 엄마는 손가락 때문에 놀리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했잖아요. 나는 한 번도 놀림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엄마는 하나님께서 내 손가락을 기억해 주신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내 짝사랑을 기억하고 계셨던 거예요.”
지금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답니다. 이런게 진짜 간증인 것 같아요.
결론
다시 테니스 스타 아서 애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93년 4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누구의 기도는 응답 받았지만, 내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믿음은 결과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으면서 희망을 가져도 집에 가면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업장의 암담한 현실에 낙심하게 됩니다. 믿음은 좋게 말하지만 현실은 나쁘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억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보살핌을 붙잡아야 합니다.
영성학자 리처드 로어는 말합니다.
“해답을 가졌다는 것이 믿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무런 해답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그렇지만, 당장 해답이 없다고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377일의 무응답, 무해결, 어둠,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에 대한 속상함과 야속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셨고 노아도 그걸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기억을 기억하는 그 기억이 노아를 견디게 한 것입니다.
2절, 비가 그치며… 뭔가 그치매? 물이 그쳤습니다. 1절, 마지막 “물이 줄어들었고…” 뭔가 줄어들었고? 물이! 3절, 땅에서 뭐가 물러가고? 물이… 어떻게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고…
그래서 19절 어디에서 나오고? 방주에서 나왔더라… 우리는 이렇게 인내하면서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도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다네~” 노래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근심도 마르고 문제도 마르고 있다! 그런 기대감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기억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붙잡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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