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는' 아니고, 모세'도'라니, 토씨 하나를 바꾸어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김영진 성서원회장 기독교신문 2025. 9.28 서평)

장막절 명절에서 추석의 의미를
요한복음 7:37~39
서론
한 지방신문(중부매일)이 추석의 의미를 되짚고자 ‘2025 추석, 당신의 명절은?’이라는 주제로 10대~50대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여전히 “결혼은 언제 하나“, ”출산은 왜 하지 않느냐?“ ”연봉은 얼마냐?” “살 좀 빼야겠다”는 질문이 명절 최대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반면 ‘수고했다’, ‘건강해라’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은 가장 듣고 싶은 명절 인사로 나타났습니다.
(재작년(2023년)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추석 때 듣기 싫은 말'을 조사했습니다. 결과
1위 “친척 누구는 대기업 들어갔던데…”
2위 “너 아직도 취업 못해서 놀고 있니?”
“애인은 있니?”가 3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러니 조카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정말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지금 늦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신중하게 해”,
“남들 말에 흔들리지 말고, 네 소신을 지켜”
“넌 잘하리라 믿는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 말 한 마디로 그 분을 신뢰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명절은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누군가를, 특히 형제, 친척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날입니다.
추석 꼴불견 중에서 이 무엇이냐? 여러 통계들도 나왔습니다. 늦게 참석하는 동서, 모였다 하면 화투만 치는 남자들, 시어머니의 잔소리… 그중에서도 1등가는 꼴불견은 자랑하는 것-자식자랑, 남편자랑, 돈 자랑…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명절나들이가 즐거울 수많은 없습니다.
왜 명절이 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지 못하고 여러 친척들 앞에서 내 자랑만 늘어놓아 남을 불쾌하게 하는가? 명절을 조상제사와 연결시키기 때문에 조상이 나오고 자손들에 대한 자랑이 과다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유대인의 명절에는 배울 바가 많습니다.
히브리대학의 교수이며 세계평화연구소 소장인 베냐민 슬로니 박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을 비교합니다.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똑같고
*채소장사… 등 막일을 해서 돈을 번 것도 같고
*이스라엘은 혈육인 아람으로 어려움 겪고, 한국은 같은 핏줄인 일본 때문에 고통당하고…
*인사법이 같다. 유대인들은 ‘샬롬’, 한국인은 ‘안녕’-모두 ‘평화’를 의미한다. 다른 나라가‘Good morning’ ‘좋은 아침’이라 인사할 때 유대인과 한국인들은 ‘평화’라고 인사한다.
*언어도 비슷하다. 유대인들은 아버지를 ‘아바’라, 한국은 아빠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켜 말할 때에는 ‘아비’라고 부른다.
*정통 유대인은 검은 모자를 쓰는데 한국인도 조선시대는 방안에서까지 갓, 감투를 썼으며 하인들도 초립을 썼고 아이들이나 아녀자들도 모자나 쓰개치마 같은 것을 쓰고 다녔다.
*유대인은 하얀 세마포 옷을 한국도 옛날부터 흰옷을 좋아하여 ‘백의민족’으로 불리었다.
*유대인들은 슬픈 일이 발생하면 굵은 베를 입고 통곡, 한국인도 그랬고 곡(哭) 하다 지치면 사람을 사서 대신 곡(哭) 하도록 하는 풍습까지도 같다.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의 학술명은 ‘Hibiscus Syriacus'(‘시리아에서 온 꽃’). 알렉산더가 죽은 후 안티오코스가 다스린 시리아에는 이스라엘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무궁화가 이스라엘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무궁화의 별명이 ‘Rose of sharon’ 즉 샤론의 장미이다.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샤론의 꽃’이 바로 무궁화이다.
유대인들과 우리는 이처럼 비슷합니다. 그런데 유대 명절은 지내고나면 죄에서의 자유함, 국민통합, 새로운 힘을 얻는데 반해 우리 명절은 마음이 갈라서고 불편하고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명절의 중심과 대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명절이고, 한국인들은 죽은 조상들을 섬기는 명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유대 명절의 좋은 점들을 본받아 명절이 국민통합과 새로운 기풍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유대인들은 장막절 명절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크게 세 번의 명절(절기)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장막절로 1주일간을 지내는 큰 행사입니다. 그들의 달력으로 7월(우리나라 월력은 10월) 15일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 역사적인 의의로써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은 출애굽할 때 광야에서 모두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12세 이상의 성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여 반경 20마일 이내에 광야이든 사막이든 심지어는 길거리나 성전 부근까지 어디나 천막을 치고 조상들의 수고를 기념했습니다.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일뿐만 아니라 오늘 이만큼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명절이 이런 의미가 있기에 그들의 명절은 감사를 회상시키고 서로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절기가 된 것입니다.
한국은 일제 36년과 6.25라는 국난이 있습니다. 그 세대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바르게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남민인 한 장로님은 피난할 때 메고 왔던 배낭을 아직도 안방에 메달아 놓고 사신다고 합니다. 이것 하나 메고 38선을 넘어왔는데 하나님께서 이만큼 가정을 꾸리게 하고 먹여주고 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늘 그것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명절이 과거를 추억하고 오늘의 경제적인 발전과 풍성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조상들의 헌신에 감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 둘째 의도는 계절적인 것으로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는 곡식을 다 거두어들이는 계절입니다. 그들은 농사가 잘 되게 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며 축제로 보냅니다. 추수감사절입니다. 저들은 조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은혜를 돌립니다. 그러니 명절을 통해 민족이 종교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기억과 감사-이것이 유대인들을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일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국가적인 명절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국민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복음 안에서 가정이라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자신이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라고 합니다.
장막절 명절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10리 밖에 있는 실로암 연못에서 금(金) 항아리에 물을 떠 백성들과 함께 성안으로 가져옵니다. 이사야 12:3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는 주제의 찬송을 부르며, 시편 113편, 118편을 찬송하면서 성전으로 들어와 그 물을 제단에 붓습니다. 광야생활의 반석에서 나온 물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물이 매우 귀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풍년이고 비가 없으면 흉년입니다. 땅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물은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이런 풍년을 얻게 된 것은 비를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국가적인 명절을 종교적인 의미로 새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막절은 예수님 오셨을 때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명절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명절을 우습게 여기고 기피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멋진 크리스천 명절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서신 자리는 제사장들이 물 항아리를 들고 올라오던 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외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물을 긷는 행사도 중요하고 하늘에서 비를 내리어 곡식을 얻게 되었다는 물리적 물질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원한 물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반석에서 얻은 물은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장에서 이미 사마리아여인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요 4:14 이하).
예수님은 물을 보면서 신령한 물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집을 보면 영원한 집을 생각하고 옷을 보면 의의 옷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하늘나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 속에서 한 차원 높여 신령한 진리를 생각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신령한 물이라 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십니다.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몸과 정신세계로 관련지어서 생각할 때 지혜는 머리에, 감정은 가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는 영혼이 발바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어머니인 지구와 발바닥이 붙어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맨발로 걸어 다닙니다.
유대인들은 지적 기능, 정신적 기능은 심장에 있다 생각하고 감정적 요소가 배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에서 솟아난다는 말은 배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기쁨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를 믿으면 배에서 뜨거운 감정, 기쁨이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3. 십자가 후에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39절 하반절의 ( ) 속에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십자가를 말합니다. 십자가가 없기에 아직 생수의 강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기에 기쁨의 샘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명절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는 명절 문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은 조상 만나고 텔레비전 보고… 남자들은 화투치고… 이러다가 헤어지니 명절을 지내놓고도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충만한 기쁨들이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터치게 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자 하는 자들은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명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간절히 기도하던 제자들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느꼈고 명절의 분위기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배(감정)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기쁨의 충만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축제입니다. 우리는 이런 명절들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 세대에 죽은 조상들에게 연결시키는 명절문화는 우리 대에서 맥을 끊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의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과 많은 부분 문화가 같은데 명절 문화도 같아야 합니다.
결론
원래 추석은 한가위라고 해서 신라 때부터 지켜오던 명절로서 한 해 농사를 마무리 하면서 하나님께서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절기가 조상에게 제사하는 날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유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유교를 국교로 만들려는 빌미로 한가위를 둔갑시켜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추석 명절에 더욱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귀한 날이 되도록 합시다. 고향을 찾는 마음 이상으로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를 항상 기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찾아 나아오듯 주님의 성전을 찾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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