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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설교도 맛있다] 사도요한의 재림기도(요한계시록 22:2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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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훈 목사 신간 <모세도 그랬어> 한달만에 3쇄 돌입!!!

"모세'는' 아니고, 모세'도'라니, 토씨 하나를 바꾸어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김영진 성서원회장   기독교신문 2025. 9.28 서평)

 

사도요한의 재림기도

요한계시록 22:20

 

신구약은 약속(언약)의 책이다. 모든 재림은 성취되었지만 딱 하나, 재림 예언은 미성취이다. 재림 메시지는 신약성경에서 300회 이상 제시되었다. 재림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복된 소망이었으며(2:13),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정점이요 완성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재림소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번영신학 중심의 부흥 목회, 무자격 목회자 양산, 교단 난립, 저출산이라는 인구절벽, 종교 인구의 감소여기에다 자충수(自充手)가 많아 내리막길이다.

이것만이 부흥이 사라지는 요인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쇠락해지는 진짜 요인은 외부보다는 교회 안에 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재림신앙 상실이다. 교회가 굳건하게 꼭 붙잡아야 할 재림을 놓쳤기에 세속화가 교회의 본질, 교인다움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대한 평가는 하한(下限) 점수로 내려와 있다.

천사, 재림을 예고하다

초대교회에서 성탄절을 지켰다는 기록은 없다. 탄생일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 중에는 마리아가 있었다. 네 명의 형제들, 12사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성탄절을 지키지 않은 것은 예수님이 단순히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오심은 탄생이 아니라 임마누엘그 자체였다.

초대교회는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았다. 사도들은 베들레헴의 예수를 외친 것이 아니다. 설교의 핵심은 언제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그들의 소망은 항상 예수의 재림이었다. 왜냐, 재림은 초대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약속이었다. 천사는 이런 예고를 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

재림은 천사가 예고한다. 천사들은 재림의 모양,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천사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럼으로 재림 사건은 너무 확실하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들 생애에 재림이 있을 줄로 알았다. 그래서 아침에도 예수를 기다렸고, 저녁에도 재림을 기다렸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서 주님 오늘은 오시렵니까?” 기대했고 저녁에 창문을 닫으면서 주님 이 밤에는 오시렵니까?” 기도했다. 성탄은 더는 기다림의 의미가 없었다. 재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성탄을 그 어떤 절기보다 성대하게 지켰을 것이다.

예수님, 재림을 약속하시다

요한계시록은 밧모섬에 귀배되어 있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 가운데 보여주신 마지막 종말 때의 환상 기록이다. 예수님께서는 세계교회를 의미하는 소아시아교회에 편지들을 통해 세계교회에 재림을 분명히 한다.

다시 오겠다!”

예수님에 관한 구약예언은 다 성취되었다. 한 가지만 남았다. 바로 재림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여러 번 재림을 약속하셨고 부활 승천 후에는 밧모섬에서 세 번을 확인해 주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12)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초림(初臨) 시에는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구간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다. 초림의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세주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재림의 주님은 심판의 주님이시다. 더 이상 초라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 이제는 인류의 죄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니라 죄인들을 심판하려 왕림하시는 심판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초림 시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세계인이 동시에 보는 모습으로 오신다. 이단들이 재림 날짜가 불발되면 흔히 둘러대는 말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분이신데 다시 영으로 오실 필요가 있을까? 그분은 재림 시에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공공연한 모양으로 공적으로오신다.

예수님은 심판자에 걸맞은 천군 천사의 행렬을 거느리신다. 천군의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개선장군으로 강림하신다. 나팔소리가 울러 퍼지면 누구나 재림 나팔을 알게 된다. 누가 가르쳐 주어서가 아니다. 나팔소리가 재림 나팔임을 알아보는 것은 순간적이요 본능이다.

주님의 재림 시에 가장 곤란한 이들은 그를 찌른 자들이요, 대적자들이다. 십자가에 직접 매달고 찌른 자들이겠지만, 2천 년 동안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훼방, 모욕한 자들이 모두 해당한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그 초라했던 사람 속에 어떻게 저런 영광이 숨겨져 있었나 하고. 이어서 그들에게 내릴 형벌에 공포가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걸 어쩌랴.

재림은 아직 성취되지 않는 유일한 예수님에 관한 약속이다.

사도 요한, 재림기도를 드리다!

사도 요한은 12제자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그만큼 박해의 세월을 견디었다. 계시록을 집필하던 시기는 기독교 박해가 로마를 넘어 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던 도미티아누스(A.D. 81-96년경) 황제 때로 보인다(A.D. 95~96년경). 도미티안은 네로 황제 못지않게 기독교에 대해 혹독하게 박해를 가하였으며,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호칭하게 했다.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요한은 당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던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광산(혹은 채석장)에서 약 18개월 강제노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밧모섬 귀배 생활이 힘들었던 만큼 환상을 통해 보여준 천국 모습들은 황홀 자체였다(21, 22). 현실은 힘들고 천국은 영화롭기에 예수님께서 속히 오겠다하시자 요한은 얼른 그 말씀을 입안으로 삼키며 재림기도를 드린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

아멘은, “믿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에 대한 확신이다.

사도 요한만 아니라 초대교회 공동체에 이런 기대와 확신이 있었기에 박해와 세속화를 이중적으로 견디었다. 관심은 오직 재림이었다. 그러기에 성탄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핍박을 견디어 낸 힘은 재림이다. 재림은 구원의 완성이다.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은 힘있게 재림을 예언하였다(3:20; 딤전6:14). 재림이 초대교회가 핍박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 재림소망이 없었다면 그 무서운 핍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는 위기를 재림신앙으로 견디었다. 짧은 역사에도 급성장할 수 있었음은 재림신앙으로 천국에 대한 갈망이 컸기에 물질을 아끼지 않았고 교회중심으로 살았다.

19921028일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벌인 휴거 소동으로 재림은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그때부터 재림론은 강단에서 사려졌다. 결과, 세속화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오늘 이렇게 되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나 우리는 모두 믿음들이 있다. 그러나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믿음의 시기를 너무 앞당겼고 우리는 너무 뒤로 밀어버린다. 그러니 전자는 열광주의자들이 되고 우리는 세속주의자들이 된다. 재림신앙이 없는 우리들이 뻔뻔하게 그들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재림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재림신앙만이 믿음을 회복시키고 영성의 믿음으로 세워준다. 재림신앙은 언제든지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가능성과 불시성을 말해준다. 그러기에 항상 재림에 대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유능한 유대인 외과 의사가 독일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는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는 종족들의 행렬을 보았다. 그도 머지않아 그런 운명이 될 것이다. 노동 시간에 외과 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몰래 숨겨 들어왔다.

그날부터 매일 면도를 했다. 동족들은 죽음의 가스실로 들어가며 언제나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조금 늦게 오십니다아니 마아민’(나는 믿는다)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외과 의사도 이 노래를 계속 불러왔으나 면도를 하기 시작한 그 날부터 노래의 가사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이렇게 독백하듯 노래를 불렀다.

 

난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걸 믿고 있다.

그러나 주님이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성급할 뿐이다.”

 

오후가 되면 독일군들은 처형자를 고르기 위해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잘 면도된 이 외과의사는 죽일 수가 없었다. 그의 파란 턱은 지나치게 싱싱해 보였고,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 이틀 미뤄가다 의사는 결국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스웨덴으로 가 병원을 개업했는데, 유월절이면 아니 마아민을 불렀다. 그러나 그의 아니 마아민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가사가 달랐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란 걸 믿고 있다.

사람들은 구세주가 조금 늦게 오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분은 결코 늦게 오시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성급할 뿐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조급하고, 재림에 대해 너무 잘못된 방향으로 매달리고 있다. 지나치게 재림시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권한 밖에 있기 때문이다. 단지 어제보다 오늘 주의 재림이 하루 더 가까워진 것만 알면 된다.

신학자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우리는 그날그날을 마지막 날로 알고 살아야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수님은 재림에 대비하여 늘 깨어있으라고 하셨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불시에 오시는 재림주를 맞이할 수 있다. 재림 신앙자들만이 늘 깨어 있을 수 있다.

밧모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22:20). 그것은 결국 재림신앙을 사모하는 기도가 되었다.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는 초대교인들의 인사가 되었다. 그들은 슬픔과 죽음 앞에서, 친구들을 전쟁터로 보내며,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만날 때 마라나타!’하고 인사했다. 그것은 인사이자 간절한 염원의 기도였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믿음이 정결한 믿음으로 남을 수 있다. C.S 루이스는 말한다.

우리 입맛에 맞는 현대 신화에 어긋난다 해서 재림의 교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래서 이를 더 귀히 여기고 더 자주 묵상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재림이야말로 우리 병증에 특히 효과가 있는 약이다

우리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 재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재림기도를 다시 시작해야 한국교회가 세속화에서 교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게 바로 우리 시대에 우리가 드려야 할 가장 막강하고 힘이 센 기도이다.

 

['그래도, 기도는 힘이 세다'에 나오는 내용으로 문어체로 올렸으니 구어체로 다듬어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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