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훈 목사 신간 <모세도 그랬어> 한달만에 3쇄 돌입!!!
"모세'는' 아니고, 모세'도'라니, 토씨 하나를 바꾸어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김영진 성서원회장 기독교신문 2025. 9.28 서평)

📌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_Xyra6snh78&t=29s
교회다움은 함께함에서!
마태복음 9:1~8
요즘, 한국교회는 지금 직분의 하향평준화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목사들은 부목사 수준이고 장로들은 안수집사 수준, 안수집사 수준, 안수집사는 서리집사 수준, 소리집사는 아무나 집사 수준입니다. 이러니 맨날 교회가 분쟁이 일어나고 짠맛을 잃은 소금, 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직분자들의 수준이 그 교회의 영성이고 수준입니다. 직분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면 교회는 서서히 병들기 시작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곡식이나 병들어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꽃들도 병이 들면 버려집니다.
오늘은 교회의 직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직분, 그중에서도 집사, 안수집사라는 직분은 신약교회와 함께 출발합니다. 초대교회는 갑자기 부흥되었습니다. 유대교권자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교회는 마른 잎에 불이 번지듯 부흥되었습니다.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워싱턴 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발흥》에서 기독교가 1세기로부터 4세기까지 10년마다 40퍼센트 성장률로 확장했으리라 추정합니다. 미국 미드웨스턴 신학교 성경해석학 이상환 교수는 《신들의 신 예수》에서 20명 남짓으로 출발한 그리스도인이 주후 100년에 1만여 명, 200년쯤에는 17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했고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에는 제국 인구의 절반인 3천여만 명이 개종했다고 말합니다. 절반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구의 4분의 1은 신자였을 것입니다. 대단한 폭발력입니다.
주석가 렌스키에 따르면 이 때 신자의 수는 약 2만-2만 5천 명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런 증가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자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알다시피, 히브리파 사람은 순수 유대인으로 아람어를 사용하고, 헬라파 유대인은 각처에서 흩어져 살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Diaspora) 출신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아람어를 전혀 모르거나 약간 알고 있으면서 주로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상용어(常用語)인 헬라어로 예배드리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도 지속되었습니다. 히브리파 사람들보다는 혼합주의적 영향력에 더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파 사람들은 헬라파 사람들보다 선민적(選民的) 배타 의식이 더 강했습니다. 언어가 다르니까 불소통으로 오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두 계통의 유대인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알력이 있었는데 구제문제에서 겉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내의 빈민 구제 사업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수집사가 제도로 세워졌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준은 상당히 엄격했습니다. 사도행전 6:3에 그 기준이 나타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성령은 복음 전파와 교회의 주요동인(動因)이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행정 및 사무 처리에 필요한 실력, 실천적인 지혜까지 포함.
-칭찬을 받는 사람-'평판이 좋은 사람', '증명된 사람'이다. 신앙인격 또한 모범이 되어야.
이 정도라면 그야말로 사도급이고 요즘말로 하면 장로급입니다. 말이 안수집사이지 사도로 세워도 장로로 임직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자성(自省)해야 할 부분입니다.
(여기까지 서론적인 내용은 걷어내도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직분자들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함께 하자!” 그들 직분자들은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1. 예수님과, 함께 하자.
그들의 목적은 지붕도 아니고, 병자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역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이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어느 정도인가요?
8장 33절,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을 고하니…”
그들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8장에만 해도,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 백부장의 죽어가는 하인, 베드로 장모의 열병, 16절, 귀신 들린 자, 23절 이후는 파도도 잠재우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본동네’, 가버나움으로 오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주거지이지다 전도본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느 성읍보다도 정보가 빨랐고 정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도 컸습니다.
그들은 침상에 친구들을 데리고 갑니다.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말로만 도움이 된 것이 아닙니다. 수고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는 수고를 한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친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했고 자비와 긍휼을 원했습니다. 동네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여 동네 사람들은 모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을 때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 약자들과, 함께 하자!
초대교회 성도들, 특히 안수집사들은 구제 사역을 위해 선출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중심은 자선과 구제입니다. 자선과 구제는 긍휼에서 나와야 합니다. 긍휼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경영대학교와 경영대학원 과정을 와튼스쿨이라 합니다. 미국 3대경영대학교의 하나입니다. 와튼수쿨의 조직심리학 애덤 그랜트 교수는 <기브앤테이크>에서, 주는 사람을 기버로, 취하는 사람을 테이커로 분류합니다.
그러면 누가 성공할까요? 한국에서는 대체적으로 주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욕심이 있고 승부기질이 있고 오히려 빼앗은 사람이 성공합니다. 일명 “놀부성공법”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해 흥부 같은 사람, 착한 사람은 꼴찌가 됩니다!
그랜트교수는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행 20:35). 그 복이 성공으로도 나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대해 줄 것인가?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존 도비디오는, ‘동질감 발동’이라고 합니다. 부상자를 보았을 때 같은 색깔의 옷을 입거나 상처를 붙이면 동질감이 발동해서 돕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누구를 돕기위해 함께 했는가요? 같은 종족이라는 동질감? 공동체에 이익이 될 사람? -인연? 학연 지연 종교의 인연? 초대교회 직분자들이 함께 한 것은 단순히 ‘인연’이라는 동질감이 아닙니다. 누가 약자인가? 바로 그것으로 함께 했습니다.
본문의 사람들도 약자를 택합니다. 중풍병자입니다. 중풍(中風)은 서양의학에서는 ‘뇌졸중’이라고 하는 병증이며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어 넘어지거나 반신불수, 구안와사, 언어장애와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병증입니다. 갑작스럽게 발병하여 빠르게 진행되므로 풍(風)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중풍(中風)’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전신마비로 온 중풍병입니다. 그러니 정신은 멀쩡한데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요?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네 명 이상이 그를 돕기로 한 것입니다. 동질감이 발동한 것입니다. 네 명 이상이 약자와 함께 했습니다. 약자의 고통과 아픔과 불편함에 함께 했습니다. 그럴 때에 약자가 침상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 강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바로 그 네 명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긍휼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같은 멍에를 매고 교회에서 일하는 사역자, 직분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야 긍휼과 자비가 넘치고, 약자들이 설교와 찬양과 기도와 교회생활에서 힘을 얻는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서로, 함께 하자!
혼자 달리는 사이클 선수와 집단으로 달리는 사이클 선수를 비교한 결과 집단으로 달리는 선수가 더 빨리 달린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이 효과는 ‘사회적 촉진’ 효과라 불립니다.
네 명의 사람들은 함께 했습니다.
-서로 간에 병자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려는 생각을 함께 했습니다. 생각이 하나가 안 되었으면 그런 동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침상을 들고 가면서 서로 간에 호흡을 맞추고 발을 맞추었습니다. 이건 동기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붕을 뜯음. 같은 확신이 아니면 지붕을 뜯을 수 없습니다. 지붕을 뜯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에 관한 같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건 행동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칫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이건 모험이자 배짱입니다. 때로는 이런 무데뽀도 필요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주님을 믿었기에 이런 무데뽀도 나온 것입니다.
-같은 힘을 주어야 합니다. 누가 꾀를 부리면 그 팀은 느슨하고 헐렁이고 약화되어 새는 그물이 되고 맙니다.
(하늘을 낧아가는 기러기의 행렬을 예로 들어도 좋습니다)
네 명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약자에 대한 헌신도, 동료에 대한 배려, 책임감에서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중풍병자가 이번에는 자기 침대를 이고 돌아오는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신자들이 몰려오고 분열이 일어날 상황에서 마비상태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제와 돌봄사역을 통해 다시 건강한 공동체로 돌려놓았고 사도들의 든든한 후원자 내지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고 교회는 계속 부흥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팎으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어디가 불평의 요지가 되고 있는가?’
‘마비가 된 사람은 없는가?’
‘은혜가 흐르는 골목은 어디인가?’
‘어느 지중을 뚫어야 하는가?’
교회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선한 눈과 마음과 행동하는 집단 팀워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교회가 교회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결론
교회 직분자, 신자들은 일종의 마차를 끄는 말들이자 일꾼입니다. 그들이 헌신되어 있다면 그들의 자비와 긍휼의 노력으로
7절, 그가 일어나… 침상을 들고 일어나서…
새로운 희망의 길로 나가도록 하는데 온 성도님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직분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이라는 것이 명예가 되거나 한 단계 직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자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직분의 상향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불평하러 왔다가 찬양하는 사람들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낙심하면서 들어왔다가 희망을 품고 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와 우리교회가 다시 부흥의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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