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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몸이 성전이다(2)-골반(시편 139:14~1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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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성전이다(2)-골반

시편 139편 14~18절

서론

선한목자병원 이창우 원장이 쓴 <바디바이블>이 있습니다. 이창우 박사는 감리교 장로님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울이 말한 성전의 개념이 단지 영적개념, 비유적 예화, 추상적 개념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육신, 몸 자체가 성전이라고 합니다. 사극(史劇)을 보면 왕에게 옥체를 보존하소서~” 신하들의 말이 나옵니다. 옥체(玉體), ‘옥같이 아름다운 몸으로 왕이 되는 지존(至尊)에게만 해당됩니다. 세자의 몸조차 옥체가 아니라 예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바울은 지난 주일에 했지만 고린도전서 3 16절에서 너희 몸이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옥체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신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된 것입니다. 왕족을 넘어 신족입니다. 이건 신분의 변화만 아니라 몸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으니 우리 몸은 옥체입니다. 믿으십니까? 옆의 분들과 인사합시다.

 

더운 여름에 옥체를 보존하소서~”

 

왜 이런 인사가 가능한가요?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성은을 입은 몸, 옥체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영적 의미만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바울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 몸의 특별함과 소중함을 알았던 대단한 왕입니다. 다윗은 우리 몸을 두고 성전(聖殿)이라는 말 이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신장(콩팥)입니다. 개역성경에는, 내 장부를 지었다, 고 합니다. 장부는 오장육부의 준말입니다. 오장육부는 한의학에서 인체의 내부 장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오장(五臟)은 된장 간장 고추장 게장 막장이 아니라 오장(五臟)은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입니다. 육부(六腑)는 대장 소장 쓸개(담낭) () 삼초(三焦) 방광입니다.

오장(五臟)은 내부가 충실하고 육부(六腑)는 반대로 공허한 기관을 가리킵니다. 장부는 오장육부만 아니라 해부학적으로는 골격, 뼈들이요 감정을 말하기도 합니다.

 

나의 모든 오장육부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도다.”

 

개역성경에는 조직하셨나이다. ‘보호하다’ ‘짜다’, ‘조립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나의 모습, 골격 따위를 조립했다, 그러니 그 기능 하나하나가 대단하다는 거지요. 감성은 84,000개입니다. 1969년 쏘아올린 아폴로 11호는 부속이 570만개이니, 우리는 그보다 더한 존재, 옥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나를 지으심이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개역성경에는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너무도 놀랍다, 경외심이 나올 뿐이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비교해 볼 때 그 피조 상태가 너무 기이하고 놀라워서 다른 피조물과는 구별된, 각별한 경외감을 표해야 할 정도입니다.

당신은 놀랍고 굉장하신 분입니다, 탄성입니다.’ 그러기에,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감사와 경탄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의 오장육부의 신기함을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선택이자 선물입니다. 자기 몸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만족은 10-20% 정도이고 대부분 80-90%이상이 자기 몸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금수저니 흙수저니, 몸짱이니 얼짱이니 이전에 사람이 되어 세상에 들어왔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선발되고 최종 승자가 된 위너들입니다.

 

성인 남자들이 하루에 만들어지는 정자의 수는 2억 개 정도입니다. 한번 배출될 때에 2억 개 내지 3억 개의 정자가 난자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면  2억 개의 정자올챙이 중에서 선택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2억 개는 한 번의 사정이고 남자들은 수조 개에 달하는 정자올챙이들을 배출합니다. 거기에 몇 개만이 아무개의 자식들이 되는데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이며 그 경쟁력은 얼마나 굉장합니까? 그래서 인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옥체가 되고 대단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어머니의 몸에서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합쳐져 16, 내 형질이 이루어집니다. 잉태의 첫 순간 수정란의 무게는 0.5mg(밀리그람)입니다. 이런 배아가 10개월 만에 3~4킬로 무게가 됩니다. 6백만 배 성장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과정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옥체(玉體)인 것이지요!

 

이런 옥체를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생명을 주신 부모님에게 불효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러기에 자살을 쉽게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정치인 아무개의원이 자살을 했는데, 온갖 찬사일색입니다. 그분이 속했던 정당은 돈을 먹고 자살한 뇌물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대목입니다. 물론 그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생명을 버릴 수 있고 스스로 생명을 끊음으로 더 큰 정치적 울림을 남길 수는 있습니다. 정치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자결하거나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처럼 세상에 박수를 받고 떠나는 사나이의 기백(氣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안 됩니다. 생명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부모를 넘어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 하나님의 생명으로 세상에 출생하기에는 수조에 이르는 정자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살은 아닙니다. 자살=죄라는 등식은 아무리 시대가 인권만능시대가 되었다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의 뼈는 모두 206개(208개?)로 되어 있습니다. 뼈와 살과 피로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육체입니다. 모두가 중요하지만 오늘은 골반에 대해 생각합니다. 골반은 허리 밑에 있는 것으로 뼈를 받치고 있는 받침대입니다. 영어로는 페어베스(pelvis)로 물그릇, 생명을 담아내는 물그릇이 골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장과 폐를 담아내고 보호하기 위해 12개의 갈비뼈를 쌍으로 주셨고 허리 밑에 있는 요추(허리)뼈들로 십이지장 췌장 비장, 콩팥을 보호합니다. 골반은 방광 자궁 결장 직장 등을 담아내고 떠받치게 했습니다. 골반이 받치고 있는 이 부분은 생명의 잉태, 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자의 골반과 여자의 골반은 그 성격과 기능이 다릅니다. 서로의 목적이 다르니까요! 남자들이 키가 크고 여성들보다 우람한 것도 골반의 생김새 때문입니다.

 

남자의 골반은 여자에 비해 상당히 뾰족하고 시각적으로 투박합니다. 여성의 골반은 원만하며 아름답고 뭔가를 담아낼 수 있는 구조로 생겼습니다. 남성의 골반은 고관절 사이가 넓지 않습니다. 여성에 비해 스피드가 있고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여성의 골반은 아기를 담고 낳을 수 있도록 잘 열릴 수 있는 구조입니다.

 

골반기능의 압권은 생명출산입니다. 임신을 하면 여성은 자궁에서 아기를 보존합니다. 골반 안의 자궁에는 양수 물이 차오르게 되고 아기는 영양을 공급받는 태반을 가지고 열 달 동안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사실 아기정자는 여성의 몸에 들어온 이물질입니다. 우리 몸은 면역기능이 있어 이물질이 들어오면 내쫓고 죽이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자궁은 아기씨만큼은 내쫒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고통스럽지요. 그 고통스러움을 토해내는 것이 입덧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엄청난 변화를 체험합니다. 모든 면역기능을 아기씨를 지키는데 초긴장상태가 되고 다른 이물질이나 일체의 불순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생체반응을 나타냅니다. 3개월 정도 갑니다.

 

아기가 10개월이 되어 세상으로 나올 때가 되면 여성의 골반은 여기에 맞게 서서히 변형을 시작합니다. 아기는 이미 성인남자 두 개의 주먹만큼 자랐습니다. 엄마의 질은 2센티 3센티 밖에 안 되는 좁은 구멍입니다. 출산 때가 되면 자체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아기의 폐가 자랍니다. 폐의 기능이 커지면서 아기는 무의식적으로 출산을 자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엄마는 살살 배가 아프고 수축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부정기적이지만 점점 정기적이 되고 자궁은 엷어지면서 벌어질 준비를 합니다. 2,3센티밖에 안 되던 자궁의 경부가 10센티 이상 확장됩니다. 자궁벽은 안으로 오므라지고 오므려진 벽의 도움을 받아 굽었던 아기의 척추 뼈가 펴집니다. 그러면서 구부러진 아기의 마리는 뒤로 재껴지면서 머리부터 나옵니다. 열 달 동안 힘겹게 물구나무서기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으로 나오려는 아기의 가슴에는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폐로 숨을 쉬려고 해도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아기는 좁은 엄마의 산도()를 빠져나오는 동안 가슴에 압박을 받게 되고 폐에 있던 물이 빠지면서 산파가 등을 어루만지면 아기는 으앙~ 웁니다. 태반은 제거되고 아기는 무의식적으로 드디어 성공했다 환호성을 치는 울음인지, 열 달 동안 천국 같은 엄마에게 빌붙어 사는 생활도 끝났다, 슬퍼서 울던지 으앙~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출산과정에서 15시간 정도를 밀어내고 오므리고 반복하는 동안 아기의 배속에 있는 양수는 빠져나가고 엄마 자궁벽에 있던 질 좋은 미생물들이 아기의 입으로 통해 배로 들어갑니다. 아기는 세상이 나와 살만큼 영양가를 흡수하고 작은 몸이지만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아기를 출산한 엄마의 넓어진 자궁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고 다음 아기를 낳기 위해 쉽니다. 자궁 안의 태반이 제거되고 출혈을 일으킬 찌꺼기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골반은 다시 자궁을 떠받치면서 같이 쉽니다. 푹 쉬어주지 않으면 산후병, 골병이 듭니다. 출산을 거듭하는 여성은 대략 14세부터 49세까지, 35년 정도가 가임기로 이후에는 그만 쉬라고 폐경기를 맞게 됩니다.

 

다윗은 이런 과정을 시편 139편에 내과의사의 섬세한 필치로 기록하고 노래한 것입니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그야말로 내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작업은 우주만물을 창조하던 그 섬세함에 못지않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만물이 대우주라면 인간은 소우주입니다. 그래서 대우주를 바라보며 찬양하는 그 심정으로 다윗은 자기 몸에 대해 그 기이함과 거룩함과 존귀함과 사명감을 다지고 있습니다. 대단한 분의 창조물이기에 대단한 몸이고 대단한 존재이기에 대단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목적과 다른 길로 성공하고 장수하고 잘 산다 하여도 그것은 오래 살았다는 것 외에는 별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의 몸이 성전이라던 성경적 인간론을 만들어 낸 바울의 인간통찰력입니다.

 

우리의 몸은 먹고 배설하면서 생명을 연장시켜 가는 1회적 소모품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 하나를 세상에 보내고 사람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난 계획과 수고와 보호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그 안에 사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성전이 되었습니다. 옥체가 된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몸은 하나님의 창조기능에 맞게 활동해야 합니다.

 

마이클 로젠은 신체의 어느 기관이든 같은 원리가 작용하는데 쓰지 않으면 쇠한다고 말합니다. 제대로 쓰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오장육부, 신체기간의 다양한 역할들을 나름대로 하고 가야 합니다.

 

그 중에 골반의 역할! 골반은 떠받치는 역할입니다. 골반이 제대로 떠받쳐 주지 않으면 자궁은 잉태할 수 없고 골반이 약하면 태아는 죽고 맙니다. 골반이 약해 임신도 안 되기에 골반은 단단하고 제 역할을 해야 생산이 됩니다. 더 넓은 의미로 말하면예수님은 우리의 골반이 되십니다. 내 생명이 거듭나도록 십자가 골반이 되셨습니다. 아기를 낳느라 산모는 피투성이가 되듯 예수님은 우리를 낳으려 십자가에서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이에 비해 성령은 위에서 운행하면서 자궁을 돌봅니다. 마치 창조 때에 성령이 수면에 운행하면서 창조역사들을 드러낸 것처럼 오늘도 성령은 교회 자궁 위에서 생명을 출산하게 합니다.

 

바울은 복음에서 떠난 갈라디아교회에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4:19)하겠다 합니다. 골반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을 떠받쳐준 골반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가 해산의 수고를 한 것입니다. 모든 신문명은 기독교를 통해 들어왔고 학교 병원 고아원 등으로 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골반 노릇을 한 것이지요!

 

이제 우리가 골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생명을 낳을 수 있도록 내가 골반으로 떠받쳐주어야 합니다. 미래세대가 더 활발히 일어나도록 골반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목사가 목회를 잘 감당하도록 알게 모르게 떠받쳐주는 골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몸은 옥체(玉體)가 되며 훌륭한 출산을 하게 만든 아름다운 골반이 될 것입니다.

결론

몸은 영혼과 짝을 이루는 부부와 같습니다. 부부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하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면서 늘 서로가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과 영혼은 살아있을 때 많이 갈등하며 싸웁니다. 영혼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육체는 가고 육체가 자기 원하는 길을 갈 때 영혼은 더러워짐을 느끼고 갈등합니다. 그러다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습니다. 물론 몸과 영혼은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헤어져 있지만 영혼은 하늘로 가고 육체는 땅으로 갑니다. 육체는 땅에서 잠을 자고 영혼은 천국에서 영화를 누립니다. 그러나가 예수님 오실 때에 영혼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육신은 땅에서 살아 올라옵니다. 다시 만날 때는 영혼은 성화되고 육체는 영체가 되어 다시 결합하면서 천국에서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자기 몸에게 고마움을 말해야 합니다. 죽을 때 몸에게 수고했다고, 나를 안고 품고 다니느라 고생했다고, 좋은 말로 잘 결별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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