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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瑕疵)제품 삼손 (사사기 16:18~22)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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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고서적으로

 

하자(瑕疵)제품 삼손

사사기 16장 18~22절

 

 

<서론>

<교사의벗> 사무실이 서울역 동자동에 있었습니다. 1층에 슈퍼가 있는데 상주하다시피 하는 40대 중반 남자 술중독자가 있었습니다. 내가 목사인 줄 알아요, 하는 말이 아버지가 총회장이래요. 아들은 교회도 다니지 않고 술고래. 아버지 체면은 아는지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총회장 출신 목사님에게는 애물단지, 하자제품 아들입니다. 하자(瑕疵)는 옥의 얼룩진 흔적으로 흠(欠), 결함을 말합니다. 총회장 출신 아들이 하자인생이라니, 참 불행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삼손을 택했습니다. 왕년에는 유명한 히어로였지만 성경에서는 우리가 닮지 말아야 할 비극적 인물입니다. 삼손은 배우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배우지 말라고 기록된 것 같아요. 삼손이 왜 이렇게 배우지 말아야할 하자(瑕疵)인생이 되었을까요? 성령강림주일에 성령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을 받고 보존하고 충만을 계속 유지해서 상품이 되어야지 제대로 간직 못해서 하자제품, 불량제품이 되는구나, 를 배우기 바랍니다.

 

1. 삼손은 우수한 종자(種子)입니다.

삼손만큼 인생을 유리하게 출발한 사람도 드뭅니다.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출생이 예고되었습니다(13:3~5). 출생예고는 사사 중에는 삼손이 유일합니다. 대단한 출발입니다.

삼손은 경건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선물로 삼손을 받았고 “내가 어떻게 우리 아이에게 행할지 알려 달라”(13:8)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녀를 양육하겠다고 서원했을 정도입니다. 결혼 잔치에 하객(賀客)이 많은 것으로 보아(14:10, 11) 재산과 영향력을 갖고 있던 유력한 가정입니다.

삼손의 일생 가운데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는 말은 수시로 나옵니다.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13:25)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개역성경에는 “그에게 감동하시니라”고 나옵니다. 이는 푸시(push), '강하게 밀다', '몰아넣다'란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삼손에게 강하게 임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이고…”(19절)

구약(舊約)에서 이 정도의 성령 충만은 드뭅니다. 성령의 감동은 지혜, 예언…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삼손에게는 영웅적인 완력(腕力), 육체의 카리스마로 나타났습니다.

삼손은 이렇게 우수한 인간 제품으로 출발합니다. 큰 은총이지요? 행운아들은 부자 아버지에게서 부(富)를 대물림 받습니다. 권세가 아버지에게서 권세를 대물림 받습니다. 삼손은 경건한 부모에게서 성령의 감동, 성령의 충만, 성령의 능력을 대물림 받으며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신을 세운 목적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조건으로 보내주신 계획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자인생 하자제품이 된 것입니다.

삼손에게 물어봅시다. 왜 그렇게 인생을 살았나요? 왜 그리 우스운 사람이 되어 버렸나요?

 

2. 삼손은 왜 불량제품이 되었습니까?

삼손을 볼 때마다 몸짱육체가 아깝고 그에게 임했던 성령의 임재가 아쉽습니다. 그 정도로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모세 정도는 아니어도 그 반만큼이라도 따라가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 삼손은 일생을 소모만 했습니다.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한 것입니다.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삼손은 크고 멋졌습니다. 멋지고 잘난 육체는 아무래도 육신의 성향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영적인 수양과 헌신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영적인 일보다 육적인 일에 더 많이 투자했고 낭비했습니다.

삼손은 육신을 소모했습니다. 그는 항상 불나비처럼 여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 여인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힘, 에너지를 낭비하고 만 것입니다. 

삼손은 생각을 소모했습니다. 여인들과 불장난을 하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을 보냅니다. 불을 가지고 계속 장난질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삼손은 성령의 은사와 힘을 낭비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 은사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힘은 자기를 위해 사용해도 안 되고 동족을 괴롭히는데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원수를 물리치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를 위해 사용합니다. 육체적 재미를 위해 은사들을 사용합니다. 여성들, 그것도 타도해야 할 블레셋여성들과의 사랑을 위해 사용합니다. 낭비이자 허비입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매뉴얼대로 살지 못했기에 하자인생을 산 것입니다.

 

㈁ 삼손은 죄에 안주해 버렸습니다. 삼손은 경건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성장했습니다. 부모들은 일체의 포도주와 독주를 금했습니다. 삼손도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죄와 놀기 시작합니다. 딤나에 갔을 때 그의 인생은 잘못된 길로 접어듭니다. 딤나는 단 지파에 속한 성읍이지만 블레셋에게 빼앗겨 더불어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삼손이 여기에 놀러갔다가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여인을 위해 나실인의 서약을 어깁니다. 여인의 간청을 못 이겨 30명을 심심풀이처럼 죽입니다. 삼손 때문에 그 여인과 아비가 동족들에게 불에 태워 죽게 됩니다. 삼손은 여기서 멈추어야 했습니다. 일가족이 희생당했는데 여기에서 빨리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죄에서 그냥 놀았습니다.

삼손은 가사에서 한 기생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립니다. 그녀와 계속 놀다가 나중에는 여인의 무릎을 베게 삼아서 눕게 됩니다. 아예 죄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과는 나실인의 힘-머리카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힘을 상실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삼손은 독사와 장난치면서 놀았습니다. 죄인 줄도 모르고 놀았고 안주해 버렸습니다. 거기에 빠졌다가 모든 은사들을 허비하게 됩니다.

 

㈂ 삼손은 동역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이 한 여인을 얻을 욕심으로 블레셋 사람의 밭에 불을 질러 곡식과 감람원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3천명이 삼손에게 사정을 말하자 삼손은 혼자서 블레셋을 대항했습니다. 그는 자기 힘을 너무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3천명이 힘을 내어 블레셋에 대항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이스라엘이 승리했겠지요. 그러나 삼손은 자기 민족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인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과 힘을 합치지 않았고 혼자 싸우다 패한 것입니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멀리 갈 생각을 하지 않고 혼자서 빨리 갈 생각만 한 것입니다. 나 홀로~ 신앙생활의 위험성을 말해줍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퍼센트가 훨씬 많지만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힘만 믿고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동역해야 합니다. 고립된 교회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일해야 합니다. 강한 이들은 약한 이들을 세워주고 약한 이들은 강자들에게서 배우며 상생(윈윈)하는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반대로 행했기에 한 때의 영웅은 추락하고 어릿광대가 됩니다. 어릿광대는 ‘우스운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웃기는 사람’입니다. 어릿광대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무슨 일에 앞잡이로 나서서 그 일을 시작하기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삼손은 에너지를 자기 욕심을 채우는 일에 소모하다 블레셋 신전의 어릿광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하장사 삼손이 두 눈이 뽑히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16:27). 삼손은 결국 웃음거리로 생애를 마칩니다.

 

3. 어떻게 성령충만을 유지할까요?

이런 교육명언이 있습니다.“세 사람이 걸어가면 두 명 모두 네 스승이 된다. 한 사람은 아,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이구나, 배울 바를 보여주는 스승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아! 저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구나, 조심하게 만드는 스승이 된다.”후자의 경우, 스승은 스승이로되 불행한 스승입니다. 삼손이 바로 그런 스승입니다.

사울 왕도 같은 경우입니다. 인물 좋고 능력도 좋고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그도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데 토사구팽 당한 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울, 삼손을 토사구팽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삼손과 사울 왕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서도 왜 하자제품이 되었을까요? 

㈀ 두 사람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육체를 신뢰했습니다. 사사이고 왕이기에 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카리스마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의 힘이 더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누가 영적인 일에 유리합니까? 비록 육신으로는 병상생활을 하는 사람들, 혼자 수도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영적으로 힘을 써도 얼마든지 영에 속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목사들은 조금만 기도해도 영으로 기울어 질 수 있습니다. 교인들은 다릅니다. 더 열심히 많은 시간을 영적인 것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안 됩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삼손은 너무 많은 세속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육체적 카리스마가 바르게 사용되려면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자신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들보다 훨씬 더 성령의 충만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과 사울은 일반 백성들이 누리는 정도의 성령으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육신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승용차에 넣는 기름과 비행기에 넣는 기름의 양(量)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직분인가는 우리가 얼마나 성령을 공급받고 살아야 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이 안수집사님 정도의 성령을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안수집사님들이 일반 집사님들 정도의 성령충만의 분량을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직분이 계급이 되고 배우지 말아야 대상 중의 하나가 됩니다.

직분이 높을수록(?) 오래 믿을수록 더 많이 성령임재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사나 왕의 지위를 바르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 성령충만은 계속 보충해야 합니다. 한 사람은 왕이요 한 사람은 사사입니다. 그들의 분별력과 선택이 국가의 흥망성쇠, 민족의 운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힘을 계속 보충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상태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여인을 쫓아다니느라 성령을 갈망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공격하느라 성령충만을 계속 채워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어릿광대가 되었고 한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1등품들이 하자제품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마지막 모습을 알았기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만 상대했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라는‘스승 아닌 스승’에게서 성령의 떠나간 사람의 말로를 보았던 것입니다.

 

㈂ 그들은 겸손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보관하지 못했습니다. 교만할 때 성령은 떠나버리고 인간 삼손 인간 사울만이 남은 것입니다. 겸손은 성령을 보관하는 비결입니다. 아무리 성령을 공급받아도 보관이 안 되면 밑 터진 항아리입니다. 보충도 중요하지만 보관은 더 중요합니다. 성령은 겸손한 사람들에게 항상 머물며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입니다. 모세 옆에는 항상 70장로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어떻게 70명의 장로들을 임명하였을까? 민수기 <미드라쉬>(주석)는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세는 70명 장로를 뽑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70명 장로를 임명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12지파이므로 6명씩 뽑았더니 72명이 됩니다. 72명 후보 중에서 두 명을 빼야합니다. 모세는 궁리하다 <장로>라고 쓴 70장 쪽지를 만듭니다. 두 장은 백지로 두고 항아리에 72장을 넣었습니다. 모세는 72명의 장로 후보를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70명을 원하고 계신다. 두 명을 빼야한다. 이 제비상자에는 72장의 제비가 들어 있다. 두 장은 백지다. 모두 장로가 되지만 백지를 뽑은 사람은 안 된다.”

모두 침묵하는데 엘닷과 메닷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평소에 매우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장로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제비를 뽑을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70분 모두가 장로가 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뽑는 장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회막에서 장로들을 임명할 때 구름이 내려와 70 장로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님도 동시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언하다가 그쳤습니다. 이때 일반 백성 가운데 있던 엘닷 메닷에게 예언의 영이 임합니다(민 11;26-30). 70명에게는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25절) 라고 나옵니다. 70명 장로는 행정 쪽으로 쓰임받았지만 엘닷과 메닷은 은사쪽으로 쓰임받았음을 시사(示唆)합니다.  낮은 곳에 물이 흘러내려 고이듯이…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계속 임재하고 충만하게 되면 다양한 은사로 우수한 제품이 됩니다. 

 


<결론>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라고 책망합니다. 삼손과 사울 왕과 같은 사람들을 향한 책망이기도 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지 않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대상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은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계속 보충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겸손하게 살 때에 보관되며 역사합니다. 삼손과 사울은 이것을 못했고 다윗은 이것을 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꼭 같이 성령으로 출발했지만 한 사람은 어릿광대가 되고 한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고 한 사람은 성자(聖者)가 됩니다. 죄가 세 사람을 갈라낸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의 강도가 세 사람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이제 성령님에 대해 어떤 대접을 할 것입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칠 것입니까? 육체로 시작했지만 성령열매를 맺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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