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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설교가 맛있다] (부활절)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일까? (고린도전서 15:12~2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6.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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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부활절 광화문 퍼레이드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일까?

고린도전서 1512~20

 

서론

부활절 아침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인사를 건넵니다. “너희들, 놀랐느냐?” 우리는 이렇게 답합시다. “완전 놀랐습니다~ 주님!”

그래요. 부활이라는 단어는 인류역사에 벌써부터 있었지만 직접 부활한 사람은 예수님이 처음입니다. 그러니 완전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블루오션이며 심장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국어교과서에 피천득 교수의 청춘예찬이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부활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부활!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부활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기독교가 얼마나 쓸쓸하랴. 그래요. 기독교에 부활이 없다면 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구원의 종교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종교라 쓰고 기독교복음이라 읽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엄청난 선물입니다. 기독교가 있어 영생을 얻게된 것입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영생을 꿈꾸어 왔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바벨탑을 쌓았습니다(11). 흙벽돌로 쌓아 올린 지구라트(Ziggurat) 형태의 거대한 탑입니다. 건설자들은 고층계단을 만들어 죽음의 과정 없이 천국으로 입천, 승천하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중국 진시황제도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불로장생약(불로초)을 찾아 3천명을 풀었습니다. 고층빌딩을 쌓아 올리는 현대인의 내면에도 진시왕의 불멸과 영생의 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불사(不死)에 대한 연구가 한창입니다.

2013년 구글을 공동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은 죽음을 정복하겠다고 노화 방지 연구에 수조 원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구글의 생명공학 계열사 칼리코는 세계 최고의 생명공학자, AI 전문가를 영입해 비밀리에 연구를 인간 회춘과 불멸을 진행 중입니다. 칼리코가 집중적으로 연구한 하나가 벌거숭이두더지쥐입니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케냐 등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데 몸길이가 810이며 털이 거의 없습니다. 땅 속에서 남편 쥐 1~3마리를 거느린 여왕쥐를 중심으로 100여 마리가 군집해 생활합니다. (사진 보여준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모습./일리노이대 토마스 박 제공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노화 방지 연구에 쓰이는 이유는 같은 크기의 다른 쥐보다 무려 10배 이상인 32년 정도를 삽니다. 암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400년 넘게 사는 그린란드 상어, 암에 쉽게 걸리지 않는 코끼리 등도 연구 대상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간의 장기는 계속 이식될 수 있다. 오래 살수록 더 젊어지고, 심지어 불멸을 이룰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집트의 신전들, 피라미드를 보면 고대인이 얼마나 불멸의 삶을 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노화를 방지하고 수명은 늘릴 수 있겠지만 불멸과 영생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권위와 도전하는 선악과를 따먹으려는 우리 자신을 망치는 일입니다. 이런 도전과 계획은 바벨탑처럼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불멸과 영생의 길 대신에 다른 길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영생입니다. 그 삶을 오랫동안 예고해 주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그 확실성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이기에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조차 믿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2절을 읽읍시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어떤 자? 불쌍한 자? 그 정도가 아닙니다. ‘더욱불쌍한 자입니다. 이 말에는 사기를 당해도 엄청나게 사기 당한 가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가치 있게 일생을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죽음 후에 무슨 부활이 있으며 사후세계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활신앙으로 사는 우리가 부활 사기에 걸린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만 우리는 그 분들이 세상의 평화와 인권, 복지를 위해 애쓴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분들이야 말로 부활은 없다는 사기에 걸린 불쌍한 사람들로 봅니다.

 

우리는 부활의 가능성, 희망성이 아니라 부활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는 인간나무에서 앞으로 계속 부활의 열매, 부활의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증명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귀한 식물에서 몇 년 동안 열매가 없었지만 언제부터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면 그 나무는 귀한 식물을 내는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열매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별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에게 붙어있으면, 믿으면! 영접하면! 그 말씀입니다. 붙어있으면 너희에게도 부활의 열매가 열리게 된다! 죽어서도 부활하게 된다! 그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부활의 첫 열매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첫 모습이 다음에 열리는 열매의 모습 그대로이니 이걸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부활의 첫 열매는 신체 그대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굉장한 센세이션(Sensation), 굉장한 파문과 굉장한 반향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에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일반인은 물론이고 신자들 중에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수준과 이성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고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신자들 중에서도 부활을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사건을 실제가 아닌 환상 정도로 본 것입니다.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 너무도 애통하고 사모한 나머지 헛것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제자 도마도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하십니다.

바울도 이런 사람들을 겨냥합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그 후에는? 야고보, 그 후에 모든 사도들(7)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의 요점은 이런 것입니다. 부활이 환상이라고? 500명이 동시에, 그것도 대낮에 환상으로 볼 수 있겠느냐? 단순히 환상이었다면 내가 미쳤다고부활하지 않는 예수를 위해 인생의 길을 바꾸고 목숨을 걸겠느냐? 바로 그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몸 그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대로 부활하신 몸에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피가 있습니다. 그 피가 있기에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입니다. 만약 몸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몸이 무덤에 있을 것이고 빌라도 총독과 유대교권자들이 그냥 당하고만 있었겠어요?

기독교 이단 중에는 죽은 후에 몸은 완전히 사멸되고 영혼만 부활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신의 부활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몸을 아껴야 하고 건강을 챙겨야 하고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은 부활할 몸이기 때문입니다.

 

2. 부활의 첫 열매는 영체(靈體)로의 부활입니다.

부활의 첫 목격자 마리아가 너무 흥분되어 예수님을 만지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20:17),

마리아에게는 만지지 말라 하셨지만 도마에게는 손을 넣어보라 하셨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도마는 신체의 부활을 의심했기에 만져보라 하셨고 마리아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부활체, 영체이기에 금하신 것 같습니다.

어떻든, 부활체는 이전과는 다릅니다. 시간과 공관을 초월해서 활동하십니다. 제자들과 조반을 함께 하지만(21:12, 15) 대소변이 있는 그런 몸은 아닙니다. 초기 랍비들은 만나는 천지창조 엿새째 날과 첫 안식일 사이에 만들어졌다면서 그만큼 신비한 식물이기에 만나를 먹은 사람은 천사의 힘을 얻고 배변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싸라기 같은 물질이 몸속으로 100퍼센트 흡수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사실과 관계없이, 기발하면서도 즐거운 상상력입니다.

예수님의 영체도 그런 신령한 몸이 아닐까요? 제자들과 음식을 함께 했겠지요. 그 음식들이 몸속으로 100% 흡수해 버리는 신기한 영체가 아닌가, 문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생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22: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 영체라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22:2)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천국에선 신비한 영체이지만 그 열매를 따먹겠지요? 그래서 고대 랍비들의 상상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체에 대해 확실하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신비한 영체기이에 기형아, 부상자, 장애인 피부색깔, 추남추녀이런 구분은 없을 것입니다. 서로를 알아볼 터이니 어느 정도 세상에서 살던 몸의 형체는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찬란한 빛이 몸을 가리기에 모두가 눈부시게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12:3). 그러니 우리 신체를 아껴야 하고 눈부시게 빛날 그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영체이기에 천국생활은 매일이 새로울 것입니다. 물론 매일이라는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3. 부활의 첫 열매는 죄를 벗어버린 의인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전갈을 받고 다른 제자(요한으로 보입니다.)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는 무덤 안을 확인합니다.

요한복음 20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세마포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감쌀 때 사용한 삼베입니다(27:59).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온 몸을 감싸던 세마포를 곱게 개어두고 부활하셨습니다. 세마포만 두고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에게 덮여 씌워졌던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모든 죄, 정확히 말하면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죽으시고 그걸 사망의 무덤 안에 고스란히 놓아두시고 하나님의 독생자의 신분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무덤 속에는 사탄의 권세, 계획, 도모만 놓여있습니다. 모든 권세를 동원하고 권력자의 손을 빌려 무덤 문을 굳게 잠갔지만 부활을 막지 못했습니다. 3일의 죽으심으로 죄가 철저히. 깡그리, 완전하게 청산되자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23:47) 외쳤습니다. 죄인의 처지로 처형당하는 죄수를 보고 로마 장교가 뭔가 잘못된 처형이다! 저는 의인이다! 인정한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이 백부장에게는 예수님의 의인됨을 확신하는 순간이라면 무덤에서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의인됨을 만방에 선포하고 자랑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신성모독죄로 시작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죄인이라면 자기 죄와 함께 죽고 그만이지만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옳으시다는 것, 대제사장들과 유대 교권자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만방에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36) 외칩니다.

주와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메시야, 구원자에 해당되며 초대 교회 신앙 고백의 내용이 되었습니다(10:9; 고전 12:3).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무덤에 두고 부활하심으로 의인이 되고 승천하심으로 거룩한 성자의 신분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에게 붙어있으면! 믿으면! 소속되어 있다면 죽음과 함께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얻고 의인의 신분으로 영혼은 천국으로 육신은 땅에서 잠시 수면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과 육신이 연합하여 영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가능하게 된 영생입니다.

 

결론

기독교의 브랜드는 복, 희망, 용기, 복지, 인권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서론에서 피천득 교수의 청춘예찬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나의 부활! 그 말에 가슴이 설레입니까? 부활을 들어도 덤덤합니까? 식은 가슴으로는 믿음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2026년 다시 맞이하는 부활절~ 부활의 새벽으로 나갑시다! 빈무덤에서 떠나 부활의 주님을 찾아 나섭시다! 우리 심장의 펌프질을 시작하면서 재림의 주님을 고대합시다~ 할렐루야~

 

[현역시절 절기설교가 가장 애매했습니다. 매년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부활절에 새로운 내용을 내보입니다. 앞부분, 불멸과 영생을 염원하는 과학의 도전! 이런 내용도 필요합니다. 여간하면 암송해서 설교하면 실력 있는 설교자(?)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그런 모양새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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