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설교가 맛있다] (성찬예식) 새로운 사랑의 방정식으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3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6. 3. 23.
반응형

새로운 사랑의 방정식으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35

 

우리는 오늘 부활주일을 앞두고 성찬예배로 모였습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며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예식을 하시면서 당신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라하셨습니다.

기억(記憶)’,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일입니다. 기념(記念) 역시도 비슷한 뜻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기는 일입니다. 굳이 나눈다면 기억은 생각속에 기념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성만찬에 대한 '기억'

성만찬에 대한 기억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희생을 간직하고 떠올리는 일입니다. 그 의미를 마음에 두고 기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2천 년 전의 그 십자가의 고난의 희생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교회공동체가 정한 순서에 따라 함께 떡을 나누면서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의 몸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희생을 대신하고자 몸을 가지셨습니다. 영이신 그 분께서 육신을 취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을 위해서 하나님께는 순종하시고 사람들을 위해서는 희생하셨지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못할 짓을 하신 것입니다. 바로 육신을 취하는 일입니다.

영이신 그 분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을 조금이라도 상상해 보세요. 능력이나 행동이나 이적이나 모든 면에서 제한을 받습니다. 성육신하실 때 만물을 창조하신 모든 능력을 그 육신 안에 두고 잠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꼭 당신의 메시아성을 알리고 싶을 때 성부 하나님께 허락을 구하고 사용하셨습니다.

그 육신은 아프시고 배고프시고 피곤하시고 외모로 판단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가시권 안에 있기에 비교의 대상이 되고 공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못할 일을 자신에게 가하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일을 어느 하나라도 행한 일이 있나요? 빌라도 총독조차도 십자가처형의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육신을 구해주기 위해 육신으로 오셨고 내 영혼을 구원하시려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심판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바울은 8절에서 이 모든 종합판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주신 후에 이어 포도주를 주시면서 받아 마시라 하십니다. 포도주는 희생의 피를 상징합니다. 불순종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입히시기 위해 짐승을 죽였고 그 피흘림으로 아담은 죄사함의 은총을 받았고 다시 소망을 품게되었습니다.

유월절의 문설주의 피도 피뿌림을 통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정결하게 여기게 되었고 죽음의 심판을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짐승의 피흘림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보여주신 대속적 죽음을 상징합니다. 바로 오늘 성찬에서 그 피흘리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은 것은 황소나 염소나 어린 양의 어떤 짐승의 피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흘려주심 때문임을 이 시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렇게 몸을 가지셨고 그 몸을 찢으셨고 그 몸 때문에 죽음을 체험하셨고 무덤에 묻히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몸을 갖지 않으셨다면 이런 고통을 왜 당하셨겠어요? 십자가에서 가시에 찔리고 창에 찔리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흘리심입니다.

 

오늘 성찬예식에 바로 이런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몸을 가지셨고 그 몸 때문에 온갖 고난과 굴욕을 겪으셨다는 것,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찌 그 사실을 잊고 살았겠습니까? 그래도 살다보니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고 삽니다. 내가 받은 모든 은혜들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다가 어떤 일을 만나면 , 그렇지기억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은 초심과 자꾸 멀어지고 오래 살다보면 둔해지는 부부처럼 주님과도 그런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성찬 앞에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합시다. , 바로 그랬지우리는 잊지도 않았지만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면서 산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시간 불러내기를 통해 그 희생을 더듬어가면서 감사와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지체들이 주님의 희생에서 멀리 떠나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러나오고 내 자신의 죄인됨을 양심과 말씀에 비추는 시간들, 그래서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가는 시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성만찬에 대한 '기념'

성만찬에 대한 기억이 생각의 부분이 많다면 기념은 그 기억된 바를 실제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한 다음에 신앙공동체는 성도들 간의 사랑의 묶임으로 성만찬을 기념을 해야 합니다. 사랑의 행동이 기념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만찬과 세족식을 하신 후에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계명이 있다는 것은 옛계명 묵은 계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옛계명은 사랑의 옛방정식입니다. 사랑의 옛방정식은

-자기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받은 동족들끼리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조건을 갖춘 사람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을 바르게 지킨 사람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쪽으로의 사랑이 깊은 것만큼 반대쪽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커야합니다. 그들이 바로 이방인이고 세리, 창기 등입니다. 그들을 증오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내 잣대의 사랑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인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내로남불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끼리끼리, 내 편끼리만 사랑하고 반대편 사람들은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옛계명의 사랑방정식은 이기주의와 민족주의와 배타주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온 세상에 여호와의 종교를 유통시켜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제사장국가 신민으로서는 완전히 반대적인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사랑에 대한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에 대한 새계명의 성격과 내용을 십자가에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로되 조건 없는 사랑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새계명의 사랑은 혈통과 관계없이 사랑하는 일이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지어 원수 사랑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전에는 어떤 사람들로 채워졌습니까? 대제사장, 레위인들, 서기관, 장로,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한 마디로 성전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들, 종교기득권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조건에 부합된 사랑, 조건에 부합된 제물, 조건에 부합된 사람들만을 인정하고 편을 들어 주고 이익을 나눠주었습니다. 성전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랑은 있지만 그런 오염된 사랑으로 자기들끼리만,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기들끼리만 사랑하고 공동이익을 취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옛계명의 방정식을 따르는 사람들을 추방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집이라는 명칭에 맞게 기도하는 사람들로 채우려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희생적 죽으심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사람들입니다. 조건 없이 품어주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조건 없이 용서해 주는 새로운 사랑의 방정식을 가진 사람들로 성전이 채워지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새사랑의 방정식으로 들어가는 입구-문입니다. 교회의 일원으로 들어왔지만 십자가의 문을 가치지 않는 사람의 사랑의 방정식은 이기적이고 타산적이고 끼리끼리 내 편 편향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교회공동체를 타락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세계명의 사랑방정식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더욱 사랑합시다!

-다시 사랑을 시작합시다!

 

우리가 성전을 이런 사랑의 방정식으로 채울 때 세상은 교회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매력적인 새사랑의 방정식에 끌리게 될 것이며 감화 감동을 받아 주님께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교회가 채워지고 성만찬이 채워질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큰 힘을 갖게 되고 큰 집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예식에 참여한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반응형